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 11
선글러스 남자는 아주 간단히 한두 마디만 던졌을 뿐이었지만, 강윤은 금세 그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일어났다. 그는 고개를 돌려 민효를 쳐다보았다.
“그거 내가 너한테 주지 않았어? 네가 달라고 해서.”
“그랬지. 그런데 그걸.........”
강인에게 줬다는 말은 하면 안 돼. 그녀는 약간 뻔뻔스러워져야 했다. 물론 그 다음에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렸어요. 잃어버렸어. 미안해. 정말 죄송하게 되었어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아가씨.”
선글러스 남자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민효는 놀라 하마터면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릴 뻔했다. 선글러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강윤 군이 그 주사위를 아가씨께 줬단 말이지요. 좋습니다. 당장 돌려받는 건 힘들겠군요.”
“그 말씀은......언제고 다시 돌려받으러 오시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어느새 아이를 안은 채 영문 모르고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은하가 불쑥 끼어들었다.
“예. 아무래도 다시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가씨는 그걸 잃어버렸다고 했지만, 아마 곧 다시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주사위는 자기가 있어야 할 사람의 손에 반드시 돌아오거든요.”
“이상한 말씀을 하시네요.”
“예. 본의 아니게 폐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가씨. 커피 감사했습니다. 염치없지만 두 분께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올 때까지, 당분간만, 저 아이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그 후에 일어난 일들을 자세히 설명한다는 것은 매우 골치아픈 일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말하면, 대소동이라고까지 표현할 필요는 없겠지만 약간의 분란이 있었다. 우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이를 어떻게 느닷없이 맡을 수 있냐는 민효의 항의가 있었고, 곧이어 아이의 정체와 아이를 맡기는 의도를 명확하게 설명해 달라는 진호의 요구가 뒤따랐다. 마지막으로 은하가 당신이 누군지 밝히지 않으면 경찰서에 신고하겠다고 극단적인 협박을 했는데, 이 협박에 대해서는 강윤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난 죽어가는 사람한테서 그 주사위를 받았어. 이건 내 문제야. 그 사람, 죽었습니까?”
“예. 죽었습니다. ”
강윤의 얼굴에 싸늘한 미소가 스쳤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진호도 심각해졌다. 구태여 자초지종을 들을 필요가 없다 해도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죽은 게 그 주사위와 관련이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 아이에게는 그 주사위가 꼭 필요합니다. 그게 제가 저 아이를 댁에 맡기는 이유입니다. 더 이상 묻지 말아 주십시오.”
“잠깐만요. 그 주사위를 돌려드리면........”
“그 아이도 오래 살지 못할 아이입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와서 데려갈 겁니다. ”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아이를 안은 은하에게 집중된 가운데 은하는 거북한 표정으로 아이를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표정은 연민의 표정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귀여운 애가 죽다니...... 무슨 병이라도?”
선글러스 남자는 대답 대신 양복 안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두툼한 지폐 다발을 꺼냈다.
“만일 돈이 필요하시다면, 이 돈을 쓰십시오. 이 애를 맡아 계시는 동안은 충분히 쓰실 수 있을 겁니다. ”
“잠깐만요. 아무리 그래도 죽을지도 모를 애를 맡는다는 건.......”
현관으로 향하던 선글러스 남자는 돌아서서 강윤을 조용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주사위 담당자가 길에서 죽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 강윤 군께서 했던 생각들......기억하고 계시지요? 어떻습니까? (강윤은 고개를 끄덕인다) 길에서 죽어가는 주사위 담당자 같은 사람은 요즘 같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강윤 군이 가졌던 그런 마음으로 그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강윤 군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이 아이를 맡아 달라고 부탁드리는 겁니다. 굳이 무슨 증명서 따위를 쓰지 않는다 해도, 죽은 그를 생각했던 그 신뢰, 당신이 사람을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말입니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 대목에서 강윤이 고개를 끄덕였는지의 여부는 우리들 각자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