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3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3



강인은 사흘째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민효는 강인이 그 자신의 분신처럼 아꼈던 자신의 소속 밴드 디 아이 셀(di cell)의 신보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이 빼돌렸던 노래 ‘희’가 강인에게로 되돌아갔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강윤이 그걸 되돌려 준 것이다. 그 때문에 민효가 강윤을 원망했을까? 천만에 말씀. 자신의 행동을 내심 후회하고 있던 그녀는 현명한 강윤의 판단에 일말의 고마움마저 느꼈다. 그러나 문제의 그 노래, 기쁨이라는 이름의 음악이 든 데모 테이프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음악에 대한 적개심만은 좀처럼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호기심에 못 이겨 그 음악을 카세트 플레이어에 넣고 볼륨을 높인 순간 드라이아이스가 휘발되듯 그녀의 가슴 속에서 꾸물거리며 피어오른 적의였다. 강인이 아닌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강인만을 위한 음악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이런 소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강인이 더 이상 어떤 소리에도 반응하지 않기를, 그의 목소리로 노래하지 않기를 바랬다. 좁혀질 수 없는 그와 나 사이의 간극이 여기 있다. 이제 와서 깨달았지만, 그 간극을 좁힌다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전화벨이 울렸고 무심히 수화기를 집어든 민효는 TV에서 고개를 돌려 지신을 쳐다보는 다 나이디를 마주 바라보며 대답했다.

“여보세요.”

“민효 씨? 나예요. 이용환이에요.”

“오랫만이네요. 웬일이죠?”

“지금 집에 있는 거 맞죠? ”

“집 전화를 받았다면 당연히 집에 있는 거겠죠. 그런데 왜요?”

“내가 지금 그리로 가도 되겠어요?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할 말이라고요?”

“네. 어떤 물건을 빌려야겠는데, 지금 여기서 말하기가 곤란해요. 금방 갈 테니 집에서 기다려 줄 수 있어요?”

“그럼 그렇게 해요.”

전화를 끊고 나니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효는 대부분의 강인의 친구들을 잘 알지 못했고 꼭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적어도 K클럽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민효를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민효가 그들의 독특하고 편향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포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용환은 특별한 존재였다. 민효는 그가 자신을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가 자신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접근하지 않는 이유는 강인 때문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황당해하는 까닭은 따로 있었다. 그녀는 며칠째 계속되는 강인의 부재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용환에게라도 전화를 걸어 강인과 같이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야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가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용환은 정말로 10분도 채 못되어 도착했다. 게다가 집에 그녀와 조그만 어린아이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에도 그다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소파에 앉아 불안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무릎에 대고 두들기는 그에게 민효는 머그컵에 담긴 커피를 내밀었다. 그러나 그가 커피는 거들떠도 보지 않고 계속 입술을 깨문 채 탁자를 뚫어져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담뱃갑을 내밀었다. 그제서야 그는 담뱃갑을 받아들고 담배를 한 개피 꺼냈고 민효는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었다. 이 모든 일련의 동작은 시종일관 무언극의 한 장면처럼 진행되었는데 이는 어색한 분위기 탓이 아니라 오히려 이심전심으로 서로를 잘 파악해 버린 사람들 사이에서만 가능한 행동이었다.

“두 가지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강인에 대해서고, 두 번째는......민효 씨, 혹시 최근에 인터넷 검색해 본 적 있어요?”

“일단 첫 번째에 대해서만 얘기하죠. 두 번째 토픽은 말 그대로 두 번째로 듣도록 하고요.”

용환은 팔짱을 낀 민효의 무표정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 싸늘해 보이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속을 썩이는 남편에 대한 험담을 듣는 아내에게서나 보일 듯한 체념이 눈빛 가득히 담겨있을 뿐이었다.

“인이가 지금 우리 집에 있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짐작은 했어요. 늘 그랬잖아요. 그래서 전화로 물어 보려고 했는데......”

“두 사람, 싸웠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민효의 의식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거짓말들이 탄로났을 때 강인이 보인 분노, 그건 어떤 의미에서는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 그 이후로 한 번도 제대로 얼굴을 마주 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강인이 그걸 다른 사람도 아닌 눈 앞의 동료에게 구구절절 털어놓고 ‘그러니까 나 집에 안 들어갈래’라고 뻗대는 그런 계집애같은 좀스러운 행동을 한다는 건가? 다른 사람도 아닌 강인이? 한참만에 그녀는 대답했다.

“인이가 그러던가요? 우리가 싸웠다고?”

“그런 건 아니고......인이, 녀석. 집에 도통 들어가려 하질 않았어요. 새 앨범이 나오고 K클럽의 라이브를 재개할 때까지는 우리 집에 있어야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요. 혹시라도, 혹시라도 그 녀석이 그러는 이유가, 그 녀석 목소리하고 관계가 있는게 아닌가 해서요. 나 혼자 한 추측이지만, 혹시 민효 씨가 그걸 알고 인이에게 안 좋은 말이라도 했다면....”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인이 목소리가 어쨌다는 거예요?”

용환은 담배 끄트머리에 길게 이어붙은 담뱃재를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민효는 용환의 의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냈다. 그는 민효가 몰랐던 문제를 그녀에게 알리는 것을 곤혹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 녀석.......목이 심상치 않아요. 목소리가 이상해졌다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노래를 부르다가 자주 음이 제멋대로 꺾이거나 중단되고.......처음에는 그저 그 녀석이 나태해진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성대에 이상이 생겼나 봐요. ”

이상이 생겼다? 강인의 성대에? 그의 발성기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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