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6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6



강윤이 나간 이래로 민효가 강윤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어 버렸고, 그 때문에 강윤은 거의 민효로부터의 전화를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만큼 W 마트에서 펫트병이 가득 든 종이 박스를 나르던 강윤이 자신의 휴대폰에 뜬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놀랐음은 당연한 일이다.

“무슨 일 있어?”

“아니. 일이 있긴 했는데, 나한테만 일어난 일이야. 남한테 문제될 일은 아냐.”

“무슨 뜻이야?”

“지금 바빠?”

“바빠. 일하고 있을 시간이라는 거 몰랐어?”

“끝나고 집에 좀 와.”

민효가 이런 식의 위압적인 투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정체불명의 경계심이 구름처럼 솟구치는 것을 참으며 강윤은 일단 알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한편 수화기를 내려놓은 민효는 저절로 가슴을 쥐어뜯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소파, 2층에 있는, 거실이라기에는 너무 좁고 복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넓은, 강인의 방과 민효의 방과 지금은 비어 버린 강윤의 방으로 둘러싸여 로비 구실을 어정쩡한 공간, 베란다와 세 개의 방으로 통하는 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비어 있는 벽에 보랏빛 꽃무늬로 장식된 소파가 있다. 용환에게 주사위를 넘겼을 때. 그는 그 기억을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그건 내 기억이 아니다. 단언컨대 그건 내 기억이 아니다.

오래 전에 그 소파 옆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고, 그 탁자 위에는 전화기가 올려져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2층에 있는 사람이 1층까지 뛰어내려가는 수고를 하지 않도록 설치해 놓은 전화였다. 민효는 그 전화기 특유의 벨소리가 너무나도 듣기 싫었던 나머지 어느 날 전화 코드를 잡아 뽑아버렸고, 그 후 강태규 박사는 전화기는 물론이고 탁자를 아예 없앤 후 벽에 최신식 벽걸이 전화를 부착했다. 새로 설치된 전화는 민효의 귀에 그리 거슬리지 않는 벨소리였기에 그녀는 이 새로운 조치에 그런대로 만족했다. 그런데, 그깟 기억쯤 용환에게 옮겨간 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도 가슴이 미친 듯이 날뛴단 말인가! 아니다. 용환이 본 건 그런 기억이 아니다. 설령 그 주사위가 잠재된 기억까지 뽑아내는 능력을 지녔다 해도 그런 대수롭쟎은 기억이 용환에게 복사되었을 리 없다. 적어도, 나 이외에 저 소파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강인이 아니면 강윤 뿐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나하고도 뭔가 연관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내가 기억을 해 내야 하는데, 나는 기억할 수 없다. 내게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을 텐데, 나는 그걸 기억할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에게 치명타가 될 어떤 중대한 기억을 상실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무작정 강윤에게 와 달라는 전화를 한 후 수화기를 내려놓은 지 한참 만에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나자 갑자기 자신의 행동이 참을 수 없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왜 나는 강윤을 부른 거지? 내게서 지워진 어떤 기억, 저 2층에 있는 보라색 꽃무늬 소파와 관련된 기억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다 한들, 그걸 이제 와서 확인해서 어쩌자고? 맙소사, 하느님! 민효는 자꾸만 가빠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심장병에 걸린 사람이 강윤이 아니고 저였나요? 어쩌자고 자꾸만 숨쉬기가 힘들어지는 거지?

당장 2층에 올라가서, 평소에도 늘 오며가며 지나쳤던 그 애물단지 소파를 치우고 그 자리에 혈흔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어쩐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바로 그 때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주저앉은(사실은 점점 가슴이 심하게 두근거리는 탓이었지만)민효의 어깨를 붙잡는 자그마한 손이 있었다. 민효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에 조그마한 손을 올린 다 나이디를 발견했다.

“아, 나이디. 이리 온. 착한 우리 아기.”

민효는 나이디를 끌어안았지만, 점점 혼미해져 오는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점점 심하게 고동치는 가슴과는 거리가 멀었다. 수면제를 먹은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잠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이 과연 잠들고 있는지조차도 아리송했다. 강윤이 오면, 내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저 소파와 관련된 어떤 사건에 대해 뭔가 내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그녀는 다 나이디를 안은 채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에게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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