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7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7



강윤이 집에 들어왔을 때 그는 민효가 불을 꺼놓아 캄캄한 암흑 소굴을 만들어놓는 것에 대해 화를 냈다. 그것은 들어오는 사람이 발을 헛디디지 않도록 하는 배려를 일체 무시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어둠 속을 더듬어 벽에 붙은 스위치를 눌러 형광등을 켜는 수고를 하고 난 다음에야 그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민효를 찾았다.

참, 웃기는군.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저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나 식당에도 거실에도, 심지어는 그녀가 즐겨 쓰는 부엌 옆의 조그마한 골방에도 보이지 앉자 그는 조금 불안해졌다. 결국 그는 좀처럼 하지 않던 짓을 시도했는데, 그 짓이란 바로 민효를 소리쳐 부르는 짓이었다.

“김민효, 너 어디 있어?”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그는 그녀가 화장실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화장실 문을 살짝 돌려보았다. 문은 쉽게 열렸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적어도 1층에는 없다는 셈이 된다. 강윤은 조바심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저녁 무렵만 되면 2층의 불을 모두 끄고 1층에 내려와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아니면 부엌 옆 골방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녀의 습성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가 응당 거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보이지 않는 것에 그가 놀란 것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더구나 내게 오라고 전화까지 걸어 놓고! 어디가 아픈 걸까? 그렇다면 골치 아프지. 2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벽에 붙은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불을 켠 순간 그는 놀라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 뻔했다. 그가 누른 스위치는 바로 보라색 꽃무늬 소파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가 팔을 뻗어 스위치를 누르는 동안 잠시 굽혀야 했던 왼쪽 무릎을 올려둔 소파의 쿠션 바로 옆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불이 켜진 순간 그는 자신의 바로 옆에서 측면으로 얼핏 비친 그녀의 모습에 귀신이라도 본 듯한 놀라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고함을 치며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왜 여기서 불도 안 켜고 앉아 있어 사람 놀라게?”

그러나 정작 그를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는데, 다름아닌 그의 고함소리에 대한 민효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자주 입지 않는 라운드넥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가슴이 깊이 파인 하늘색의 블라우스는 한번도 내색하지 못했지만 강윤이 은근히 좋아했던 옷이었다. 그 옷은 그녀를 무척 예쁘게 보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강윤의 고함소리를 듣고도 놀라기는커녕 생긋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어깨에 각기 한쪽 손을 얹은 상태가 되었다.

“놀라게 하고 싶었으니까 그렇지.”

그녀는 강윤의 가슴에 얼굴을 살짝 묻었다. 이것이야말로 강윤을 충분히 실신하게 만들 수 있는 행동이었다. 강윤은 속으로 무엇인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바는 아니지만, 아니 원했던 바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것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내가 강인이라면 또 모를까. 날 일부러 놀래키려고 2층에서, 불을 끄고, 그것도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왜 불렀어? ”

한참 만에 강윤이 입을 열었다.

“와서 술이라도 같이 마시려고. 마침 이모님께서 갖다주신 돼지고기가 있어서, 큰맘먹고 김치찌개 좀 끓였거든.”

점점 해괴한 노릇이라고 생각하며 강윤은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지금 같이 술 마시자고 날 불렀다고? 일부러.”

아닌게아니라 해괴한 노릇임에 틀림없었다. 첫째로 김민효가 자신의 술 상대를 고른다는 발상 자체가 비상식적인 일이었고, 둘째로 그녀가 고른 상대가 다름아닌 강윤이라는 사실은 무모하다 못해 미쳤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그녀의 태도에 일부러 짜증을 가장하긴 했어도(게다가 오늘따라 그는 무척 피곤했으니까), 작금의 상황은 결코 강윤에게 있어 기분나쁜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민효는 오히려 슬픈 표정마저 짓고 있지 않은가. 마치 주인에게 야단맞은 강아지처럼 말이다. 강인에게라면 모를까, 내게 이런 표정을 지어줄 여자가 절대 아니다. 그러나 민효의 슬픈 표정은 현실이었고 뒤어어 떠오른 그녀의 미소 또한 현실이었다.

“화내지 마. 네가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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