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17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 17



그러나, 무미건조하지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그 독특한 목소리에서 균열의 조짐을 느낀 민효는 놀라 무대 쪽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사람들의 팔이 만들어낸 숲에 가리워져 무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무대가 잘 보이는 앞으로 나가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대신 그녀는 눈을 감고 자신의 귀로 들어오는 목소리가 어떤 이상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강인의 목소리에는 그것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목소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힘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그 신비스러운 마력의 실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그 이유는 본래 강인의 목소리가 가늘고 약한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조금만 목을 혹사하면 그는 금세 목이 쉬었다. 몇 번이나 피를 토할 정도 혹독한 노력 끝에 그는 지금의 목소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음악에 고스란히 쏟아부었고,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사랑의 애절함 역시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의 목소리를 보다 더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의 노래 자체가 하나의 괴물이나 다름없다고 농담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것은 평온한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 놓는 송곳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목소리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들려 달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강하게 청중의 고막을 끌어당기는 목소리는 이해할 수 없이 흐트러지며 그 마력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탁해졌고 전처럼 마음을 파고들지 못했다. 그 대신 다른 것이 섞여들고 있었다. 무엇인가 불순한 것.

민효는 눈을 감은 채 강인의 목소리를 쫓았다. 정말로 그녀는 실체가 없는 거대하고 사악한 존재가 자신을 주시한다고 느꼈다. 강인의 목소리는 기묘하게 조금씩 변형되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뜬 순간, 아지랑이처럼 대기 속을 진동하던 목소리는 뚝 끊어졌다. 간주는 여전히 계속되는 참이었다.

그녀는 강인의 얼굴을 보았다. 무엇인가에 홀린 듯 눈을 크게 뜬 채 벽을 응시하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이상하게도 자신으로부터 먼 곳에 서 있는 강인의 얼굴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느껴졌다. 강인의 얼굴이 자신이 선 방향을 향하고 있었으므로 처음에는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민효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강인은 그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토해낸 숨결로 오염된 벽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그 숨결에 가려진 채 벽에 기대어 있는 어떤 무형의 존재를 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얼마 안 가서 디아이 셀 멤버 전원이 연주를 멈추었다. 관객들은 저마다 쳐들었던 팔을 내렸다. 웅성거리던 소리도 점차 멈추었다. 누군가가 사람들의 입을 하나하나 스카치테이프로 봉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조용해질 수는 없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강인을 제외한 다른 맴버들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지 잘 보이는 위치에서 베이스기타를 잡고 선 용환이의 얼굴이 보일 뿐이었는데 표정을 거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곡은 ‘희’입니다.”

다시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음악을 이런 식으로 끝내 버리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러나 아무도 화를 내거나 나가려고는 하지 않았다. 야유도 없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이 ‘필경 이유가 있을 것’ 이라고 생각했음에 분명했다.

반대로 민효는 나가고 싶어졌지만 왼손의 집게손가락을 귀에 넣은 채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는 ‘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기쁨을 의미하는 한자이고, 장유경이 강인과 한데 엉켜 뒹굴었을 때의 황홀한 느낌이고, 그 여자가 낳은 음악이고, 내가 망가뜨리려 했지만 결코 망가뜨리지 못한 카세트 테이프이기도 하다. 또 그 여자와 강인 두 사람의 방향으로 각각 갈라진 내 패배의식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또 강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떠안긴 어떤 심정적인 압력 때문에 찌그러진 분노의 응어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음악을 듣지 말아야 해.

그러나 강인의 상처입고 변질된 목소리가 커지고 높아질수록 그녀의 청신경은 그의 목소리를 더욱 강하게 압착시켜 받아들였다. 가슴을 쥐어짜는 고통이 그녀를 엄습했다. 아, 나는 정말로 이해하지 못했어. 음악이 눈물을 부른다는 사실을. 마찬가지로 인이를 이해하지 못했어. 조금이라도, 네 목소리가 향하는 방향을 잊은 채 네 목소리에 몰두했어야 했어. 내 생각이 조각나며 끊어지듯, 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고통들도 자꾸만 끊어졌다가 이어져서는 나를, 나를 아프게 해. 민효는 터져나오는 비명을 참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감싼 블라우스의 앞섶을 쥐어뜯었다. 제발, 제발 멈춰 줘. 그러나 강인의 목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우악스럽게 이어졌다.



어둠 속에서 나타나 나에게 다가오는 얼굴이 있어.

밤마다 소리없이 떠오르고 사라지는 문장들이 나를 괴롭혀.


제 손으로 숨을 끊은 짐승의 허파처럼 너를 사랑해

찢겨져나간 날개를 찾아 헤매는 새처럼 너를 사랑해.


민효는 핏발이 선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 목소리는 나를 위한 목소리가 아니지? 맙소사! 그때와 똑같아. 그때 내가 실신했던 이유.......그게 다시 반복될 줄이야. 그녀는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말았다. 인아, 강인! 그 노래를 부르지 마! 그 노래를 계속하지 마!


제 방향을 잊어버린 고장난 나침반처럼 너를 사랑해.


강인의 목소리는 45도로 기울어진 비탈길을 시속 300km의 속도로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맹렬하게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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