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스Ⅱ-19

기억을 복사하는 주사위

by Kalsavina

#19



팽팽하게 늘어난 고무줄이 탄력의 극한에 다다른 어느 순간 끊어지듯 강인의 목소리가 그렇게 끊어졌을 때, 민효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끔찍했던 그 다음 순간을 목격하기 전에 그녀는 강윤의 팔에 이끌려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말하자면 그녀는 노래를 멈춘 강인의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강인은 입을 벌린 채, 끊어진 자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계속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성대를 있는 힘껏 경련시키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자리잡은 불길한 안개를 응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끊어졌지만 그의 노래는 이어지고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다물어진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가느다란 물줄기처럼 흘러나와 턱을 타고 떨어졌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입을 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끊어진 순간 모든 사람들이 모든 소리를 일시에 멈추어 버린 것이었다.

정적이 전류처럼 찌릿하게 모든 사람들의 뇌와 혈관을 타고 흘렀다.

드럼을 치고 있던 헌수와 베이스를 연주하던 용환은 그들의 포지션 때문에 피가 흐르는 강인의 모습을 미처 빨리 파악하지 못했다. 그러나 강인의 바로 곁에서 연주하던 진호는 강인의 입을 적신 피를 보자마자 기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기타를 목과 어깨에 걸치고 있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 기타는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을 터였다.

“인아! 너, 괜찮아?”

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전류와도 같은 정적에서 벗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헌수는 스틱을 내던졌고 용환은 재빨리 강인의 어깨를 잡아끌어 자신에게로 그의 얼굴을 돌렸다. 피를 본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잠시 후 강인은 용환과 헌수의 팔에 이끌려 출연자 대기실로 돌아왔다. 헌수의 커다란 덩치와 단단한 근육이 강인을 부축할 때 쓰이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병원에 가자.”

웃통을 훌러덩 벗어던진 강인에게 티셔츠를 내밀며 용환이 말했다.

“괜찮아. 병원에 갈 필요없어.”

나직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강인이 말했다.

“지금 피를 그렇게 철철 흘리고도 괜찮단 말이야? 자식아, 땡깡을 부려도 때를 봐가며 부리라구!”

“진짜야. 병원에 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병원의 그 냄새만 생각해도 속이 울렁거려. 없던 병도 생길 것 같아. ”

강인은 서둘러 티셔츠를 걸쳤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강인이 대답하려고 입을 막 벌린 순간 또 한 모금이 피가 그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진호가 휴지를 한 움큼 뜯어 들고 그를 막아섰으나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손등으로 피를 닦았다.

“집으로 돌아가겠어.”

“집에? 그렇다면 민효를 찾아 봐. 같이 들어가.”

“무슨 소리야?”

“민효가 내게 말했어. 오늘 공연, 보러 오겠다고. 아마 와 있을 거야. 찾아보는 게 좋지 않겠어?”

“그렇다면 집에 아무도 없을지도 모르겠군?”

그러자 뜻밖에도 헌수가 입을 열었다.

“실은 아까 전에.........민효가 아닌가 싶은 여자를 봤어. 아주 얼핏 봐서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민효 같았어. 아니, 분명히 민효였을 거야. 왜냐하면......나중에 그 여자가 나가는 걸 얼핏 봤는데......강윤하고 같이 나가는 것 같았어.”

“강윤?”

일시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헌수를 향했다.

“그러면 강윤도 여기에 왔다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인아, 너 정말로 집에 갈 거야?”

“달리 갈 곳이 어딨어?”

강인의 눈에 어린 미칠 듯한 분노를 언뜻 포착한 용환이 잽싸게 제의했다.

“일단 우리 집으로 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용환의 제의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강인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명백한 패배자로 전락한 강인과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그의 추종자들은 모두 K클럽을 빠져나갔다.

작가의 이전글다이스Ⅱ-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