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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7. 2018

어느 성범죄자의 고백

2012-2013

어느 성범죄자의 고백





나는 성범죄자이다. 상습적인 강간범이다. 아니, 전과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내 전공인 성범죄에 관한 한 나는 프로다. 나는 마땅히 사회의 지탄을 받아야 하는 인간 쓰레기이다. 그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맹세코 그 어린애를 죽이기 전까지는, 단 한 명의 여성도 죽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물론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나 역시 내 말을 믿어달라고 경찰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씨알이나 먹히겠는가. 

그들은, 즉 경찰은, 내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잡히지 않고 버텼는지에 대해 놀라는 눈치다. 내가 그리 주도면밀하지 못했음에도, 나를 잡느라 허비한 시간과 그들이 그들 스스로 증명한 그들의 무능함과 무성의함에 그들 스스로도 조금은 의기소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서 나와 한 배를 탄 자들의 눈빛을 본다. 왜냐하면, 소수의 여경이나 여형사들을 제외하고는 그들도 남자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얘기를 하려는 이유는, 내가 몇 명이나 강간했으며 몇 명이나 죽였는지, 내 행각이 얼마나 엽기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는 그들이 내가 성범죄자가 되기까지 걸어온 행로에 대해서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무관심은 오히려 내가 허심탄회하게 내 속내를 털어놓을 용기를 주었다. 사실 털어놓을 속내라는 건 별로 없다. 단지, 나는 성범죄자의 행로라는 건 이런 거였다, 라는 식으로 흔하디흔한, 잘못 굴러버린 인생살이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는 것 뿐이다.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남자로 태어났다. 아니, 평범하지는 않았다. 평범 이하였다고 해야겠다. 내가 자란 가정도, 나 자신도 말이다. 내 부모는 가난했고 나는 삼남매의 맏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도 비정상적으로 키가 작고 마른 나는 학교 공부에 관한 한 머리가 나쁜 편이었다. 부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기 일쑤였다. 

마침내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어머니가 막내 여동생만 데리고 집을 나간 것이다. 아버지는 둘이 남은 형제를 어떻게 건사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사실 자식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도박과 여자를 좋아했다. 참으로 희한한 것은 술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미남이었고, 그래서인지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편이었다. 반대로 나와 동생은 작은 키에 마르고 구부정한, 어디를 봐도 그저 ‘찌질하다’는 표현 말고는 딱히 마땅히 주워붙일 형용사가 없는 그런 놈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쩌면 친아버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다. 실제적으로 재판과 처형만 남은 이 시점까지 이르도록 한 번도 그런 의심을 안 해봤다니. 

거두절미하고, 내가 찌질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솔직히 중학생 시절까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집단 따돌림이 있었고, 학교 일진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내게 가하는 위해에 대해서는 별로 괴로워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고통에는 비교적 무감각했던 나는, 맞는 것이라든가, 심부름, 따돌림 등의 일상적인 괴로움에 비교적 현명하게 대처해 나갔다. 나는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뜯기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어찌 생각하면 부의 재분배에 관한 문제에서 그들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더 합리적이기도 했다. 최소한 가지지 않은 자에게서 빼앗으려고 하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았으니까. 마른수건을 쥐어짜려 들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여자. 여자라면 얘기가 조금 다르다. 여자는 돈이 아니다. 날 때부터 하나씩, 둘씩 옆구리에 붙여가지고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여자가 돈과 같은 점이 있다면, 없이는 못 산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천적으로 돈도 물려주지 못한 나의 부친은, 지금 생각하면 확 걷어차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그 훤칠한 체격과 잘생긴 얼굴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그 덕에 남자치고도 꽤나 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 나는 여자 문제로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들은 내게 있어서 말 그대로, 천사였다. 그리고 그들은 내게 있어 곧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갔다. 어찌 된 셈인지 또래의 다른 남자들이 흔히 관심을 갖게 되는 술, 담배, 농구, 그 모든 것들에 관해서 나의 모든 신경과 촉각은 죽어 있는 상태 그대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그런 것들에 무관심했다. 오로지 포르노만이 예외였다. 그리고 내 또래의 여고생들이 입었던 에이라인의 체크무늬 치마와 그들의 윤나는 머리카락만이 예외였다.

그러나 부의 재분배와는 달리, 여자의 재분배 문제는 복잡하고도 불공정했다. 키가 크고 코가 크며 잘생긴 녀석들과, 머리가 좋고 센스가 있는, 그 외에도 어떤 식으로든 남의 이목을 끄는 매력을 지닌 녀석들은 너나 할것없이 손쉽게 ‘여친’을 만들었다. 이것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법이 일부일처제를 원칙적으로 정해 놓은 세상에서, 한 녀석이 여러 계집을 독차지하는 것을 목격해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므로, 꼭 일대일로 모든 것을 평등하게 나누자라는 식의 논리에 집착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그러나 억울했다. 어째서 내게는 단 하나도 주어지지 않는 그 아름답고 부드러운 존재가 몇몇 선택된 존재들에게는 구름떼같이 모여들었단 말인가? 그들은 입시와 농구와 담배 등등 여자 말고도 이런저런 신경 쓸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던 탓에 그토록 여자들에게 불성실하게 무성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은 그 모든 것을 허용하고 그들을 사랑했는데, 여자라는 존재에게 충성을 다 바치며 올인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나를 여자들은 피해 다녔다. 나의 모습에서 열정이 아닌 광기를 본 거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키도 조금은 커졌고 찌질하던 생김새도 어느 정도는 순화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찌된 셈인지 여자들은 이상하리만치 나를 피해 다녔다. 

그러나 그녀들을 관찰하면서, 그리고 그녀들이 넋을 놓고 정신을 파는 내 급우들과 주위의 동급생들을 관찰하면서 나는 부의 재분배 문제와 마찬가지로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계급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돈이든, 외모이든, 머리든, 센스이든 간에, 여자들을 매혹시키는 요소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여자를 홀리는 능력을 타고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녀들을 소유할 수 없었다. 거듭 얘기하지만 그녀들은 갈비뼈도 천부인권도 아니어서, 절대로 태어난 순간에 남자 옆에 하나씩 달라붙어 나오는 존재가 아니었다. ‘짚신도 제 짝이 있다’느니 ‘젓가락도 두 짝인데 하물며 사람이 짝없으랴’라는 허황한 옛말을 곱씹으면, 격언이나 속담에도 함정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약육강식은 먹이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의자왕이 삼천궁녀를 거느리고 사는 것을 침흘리며 바라본다 한들 그녀들이 자진해서 내 앞에 떨어질 리 있겠는가? 설령 내가 절벽 아래 호랑이라 해도 말이다. 억울하면 의자왕이 되어야 할 일이었다. 

한 번도 그 여리고 예쁜 존재들을 팔에 품어보지 못하고, 어찌어찌 고등학교 졸업장은 따 놓은 상태에서, 전문대를 가야 하나 이대로 사회로 나가야 하나를 두고 조금은 심각한 고민을 하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 당한 혹독한 고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적어도 여자 문제를 제외하면, 그 어떤 고통도 그럭저럭 감수할 있을 정도였다는 것만 말해 둔다. 그러나, 여자, 여자의 그림자조차 구경하지 못하는 세계에 보낸 이 년은, 이십 년과 맞먹는 세월이었다. 그 어떤 고통보다도 이것만큼 나를 피멍들이지는 못했다. 

거듭 얘기하지만, 내게는 다른 관심사가 없었다. 그 어떤 관심사도 없었다. 체질이 약골이었던지라 스포츠 따위는 잘 하지도 못했고, 따라서 재미도 없었다. 그러나 군대에서의 행군이나 축구 시합 따위를 거부하지는 않았다. 물론 거부할 수도 없었지만. 그러나 게임이니 농구니 하는, 남자들이 흔히 하게 마련인 그런 것들에게서 나는 내 고통의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내 고통이라는 것은, 내 상관이나 부하들을 면회하기 위해 종종 찾아오는 여자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 전체를 비틀어짜는 것 같은 질투와 악의였다. 

사람은 자기 운명에 대한 예감을 본능적으로 알아채는 능력을 타고난 것일까. 여자의 소유와 재분배에 관해 혼자 연구하는 동안, 나는 다른 친구들이 그리도 쉽게 가지는 그 ‘여자친구’라는 존재를 내가 가지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예 여자와는 인연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자연히 동정남이었다. 그 사실은 내게 강박관념으로 다가왔다. 강박관념은 편집증으로 이어졌다. 나는 군대의 동기들, 상사들, 부하들로부터 ‘비정상적으로 여자에게 집착하는 또라이 같은 미친 놈’으로 규정되었다. ‘또라이 같은 미친 놈’은 상당히 일반적인, 적어도 놀라울 게 없는 표현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겉으로 보여지는 내 집착의 크기에 가리워진 진정한 빙산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셈이다. 

전역을 앞두고 있을 때, 동생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교통사고였다고 했다. 머리가 멍했다. 슬프다거나 괴로웠다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머리가 멍했다. 정신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게 있어서 가족은 이미 애틋한 그리움과는 거리가 멀어져도 한참 멀어져버린 존재였다. 그러나 당황했던 것은, 그래 당황했던 것만큼은 기억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말년휴가를 나오던 날, 쉽사리 집으로 발을 옮기지 못하는 내게 함께 휴가를 나온 한 군대 동기가 연락을 해 왔다. 

얼떨결에 녀석과, 녀석이 옆구리에 둘러 찬 녀석의 여친과 함께 사주카페란 곳을 가게 되었다. 녀석들의 궁합을 보면서 내 ‘애정운’도 같이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그의 제의에 처음에는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굳이 따라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무거워진 마음을 똥보따리처럼 끌어안고 나는 사주카페의 운영자, 내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점바치 앞에 앉았다. 동기와 그의 여친은 먼저 보라는 내 제안을 묵살하고 한사코 나부터 먼저 보라는 것이었다. 물론 복채는 그가 반을 내 주는 조건이었다.

점바치는 내 사주를 받아적고는 한참 내 관상을 살피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이런 말 하면 화내겠지만, 자네, 전생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는가?”

“예?”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나는 곧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어떻게 압니까?”

“화내지 말게. 자네는 전생에 내시였어. 궁중의 내관 말이네.”

망연자실한 내 등 뒤에서 그와 그의 여친의 킬킬대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친구는 사귀고 싶은데, 이상하게 일이 뜻대로 안 되지?”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나를 쳐다보며 차분히 얘기했다. 그의 차분한 어조가 오히려 내 속에서 불을 지피고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한 채. 

“자네는 전생에 내시였어. 그것도 원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강제로 끌려가서 그렇게 된 거야. 평생 여자 맛을 모르고 가슴을 치며 살았어. 그 전생의 한과 업이 그대로 현생에까지 이어져 내려왔어. 그래서 여자만 보면 정신 줄을 놓는데 정작 여자가 따르질 않는 거야.”

“그러면, 전혀 방법이 없는 겁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묻고 말았다. 중요한 건 전생이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의 인생, 지금의 젊음, 그리고 여자였다. 점장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 팔자가 그런 걸 어쩌나?”

“그러면 전생에 내시였으니까 현생에서는 머리깎고 절에라도 들어가라는 거군요.”

“그렇게까지야, 할 필요 있겠어. 다만……”

그는 눈짓으로 내 뒤에 있던 내 군대 동기 커플을 쫓았다. 그들이 눈치를 채고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가 내게 속삭였다. 

“방법은 많잖아. 돈으로 살 수도 있고, 안 되면 강제로 할 수도 있는 거고……”

“강제로요? 강제로 여자를…….”

“물론 그러면 안 되지. 하지만, 지금 일러두지 않으면 나중에 원망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만, 그게 자네 업이야. 그러니 누구도 원망 말게. 내가 부적 하나 써 주지. 자네를 지켜 줄 거야.”

너무나도 어이없는 얘기들이었기에, 허무맹랑하기 이를 데 없는 얘기들이었기에, 그가 써 주는 부적을 말없이 받아들고 그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일껏 점바치한테 돈 주고 얻은 점괘가 그렇게 절망적이라는 사실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했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주 카페를 나온 지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점바치한테 받은 부적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그날 밤을 길에서 별만 쳐다보며 보냈다. 물론 소주 한 병을 사 들고. 

그 점바치가 내 인생을 굴러떨어지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은 단 하나, 그가 내 전생을 언급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생이란 걸 어차피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그 많고많은 전생 가운데 하필이면 내시였다니, 아니, 전생에 아주 징그럽고 하찮은 짐승이고 벌레였다 한들 내시였다는 말보다는 덜 절망적이고 덜 굴욕적이었을 것이다. ‘내시’라는 두 글자의 단어는 트라우마가 되어 머릿속에 말뚝처럼 박혀 빠질 줄을 몰랐다. 그것은 전생이 아니라, 내 현실의 반영이었다. 

동생의 장례식에는 가지 않았다. 삼우제에도 가지 않았다. 죽은 녀석을 애도하기에는 내 상황이 그리 괜찮지 못했다. 사실 따라 죽고 싶은 심정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부대에 복귀하기 하루 전날, 왜 오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전화를 묵살하고 일찍 복귀를 서둘렀다. 그리고는 부대로 들어가기 전에 부대 근처에 있던 단란주점을 찾아갔다. 

길바닥에서 보내는 동안 돈은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런데다가 막상 단란주점 입구를 앞에 두고 보니 선뜻 들어가기도 내키지 않아 그냥 그대로 한참을 망연히 서 있다가 발길을 돌렸다. 꽤나 너른 골목길을 느린 걸음으로 걸어나오는데 옆으로 난 자그마한 골목에서 웬 난데없는 아가씨가 튀어나왔다. 몸집이 자그마하고 맵시가 그럴듯한 아가씨였다.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하고 종종걸음으로 내 앞을 걸어갔다. 어쩐지 그 일을 하는 누나들이 아닌 보통의 여염집 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해가 저물 무렵이라 석양이 짙게 깔려 있었고 주위는 한적하고 괴괴했다. 

문득, 아가씨의 왼손에 들려 있는 것이 수건에 덮여 있는 목욕바구니임을 깨닫고, 곧 시선을 위로 올려 아가씨의 머리가 젖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이성을 잃었다. 나는 정신없이 그녀의 등을 덮쳐 입을 막고 그녀가 앞서 걸어나왔던 그 골목으로 다시 그녀를 끌고 들어갔다. 그게 내가 저지른 첫 번째 범죄였다. 땀에 살짝 젖은, 촉촉하고 따뜻한 몸을 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광분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일단 한 번 시작된 폭력과 강간충동은 좀처럼 제어가 힘들었다. 아니, 제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그 충동은 끓어오르는 활화산 그 자체였다. 화산의 분출을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었겠는가. 

돈으로, 외모로, 내가 갖지 못한 그 어떤 것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기보다, 폭력 쪽이 쉽다는 것을 알고 나자 나는 더 이상 신사적으로 행동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고등학교 때 가졌던 여자에 대한 환상도, 그녀들에 대한 경외심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남은 것은 단 한 가지 사실뿐이었다. 필요할 때 폭력으로 가지면 된다는 것. 

그리고 나의 범죄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가 깨달은 진리에 대한 확신은 점차 굳어져갔다.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대신 남해안의 조선소에서 일하며 돈을 벌었다. 돈이 여자를 꼬이는 수단임을 잘 알면서도 나는 그 수단을 사용하려 들지 않았다. 돈이 아깝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재미가 없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내 볼일을 해결하는 데서 쾌감과 동시에, 내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고 있지 않은, 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과 신념마저 느꼈다. 마치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라도 된 느낌이었다. 

사실 강간으로 동정을 잃고 난 후 나는 한동안 무거운 마음과 우울증 때문에 방황해야 했다. 그 사실을 잊기 위해 항상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다녔고,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는 허탈감과 죄책감, 아니 그걸 죄책감이라고 표현하지는 않겠다. 어떤 불쾌감이라고 해 두자. 그런 것 때문에 일을 저지르기 전부터 더 우울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었다. 나는 왜 내가 이런 식으로 여자를 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보려 했다. 불평등한 현실 때문에? 돈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제 체제가 적용되고, 약육강식이 적용되고, 없으면 없는 대로 견뎌야 하는, 결코 ‘가질’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성에 대한 깨달음 때문에? 언젠가 읽었던 아베 코보의 <모래의 여자>에서 본 한 대목이 내가 깨달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 있었다. <부도수표>, <가짜 어음>, 그래. 언제든지 가질 수 있는 것들인 것처럼 큰소리를 빵빵 쳐대지만, 실제로 현실은 어떤가. 마땅히 거부당할 이유가 없음에도 거부당하기 때문에 강제로 취하고, 또 마땅히 거부당해야만 비로소 황홀경에 빠지는 이 모순을 누가 해결해줄 것이냔 말이다! 

사실 나의 범죄는, 시작된 이래로 일이년간 그리 빈도수가 높지 않았다. 아마 그래서 그토록 오래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이 기간을 거치면서 아주 중요한 어떤 사실을 깨달았는데, 그 사실은 내게 나쁘지 않게 작용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냥 즐겁게, 신나게만은 하지 않았다. 그날은 운이 나빴다. 그날 얻어걸린 여자는 좀 나이가 든 여자였는데, 이상하리만치 격렬하게 저항했다. 나이가 좀 어린 여자들에 비해 나이가 좀 든 경우는 그리 심하게 반항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팔뚝을 깨물리고 나자 화가 나서 얼굴과 머리를 좀 때렸더니 피를 심하게 흘려댔다. 그렇다고 해서 내 볼일을 못 본 건 아니지만, 여자를 두고 자리를 뜨자니 피가 좀 마음에 걸렸다.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단지 정신을 잃었을 뿐이었다. 그 여자가 걱정이 되어서 마음에 걸린 게 아니다. 경찰이, 검거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녀를 두고 그 자리를 뜨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도대체 경찰은 뭘 하고 있는 걸까. 혹시 내 뒤를 쫓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그토록 수도 없이 강간과 폭력을 되풀이하는 동안, 나는 꿈에서라도 경찰의 그림자 따위는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신고하지 못한다는 말을, 억울하고 분해도 그저 삭히고 만다는 말을, 전에는 흘려듣기만 했던 그 말을 홀연히 떠올린 다음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사는 세상은 내게만 억울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 세상은 내게 당한 여자들의 편이 아니었다. 약자의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점은 내게는 아주 중요했다. 나는 분명 나쁜 놈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호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어떤 본능에 대한 보전의지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면 여자들은 뭐지? 단지 여자들이 나 같은 놈에게 짓밟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 뿐이란 말인가? 그들에게는 보전해야 할 본능이 없단 말인가? 감히 내 주제에, 여자의 입장 따위를 헤아릴 여지는 없었기에 생각은 그쯤에서 접어야 했지만, 일단 내가 당면한 현실은 양심적으로 행동할 주제도 못 되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분명히 말해 두고 싶은 것은, 어쨌든 나는 여자들을 사랑했다는 것이다. 강간이 내 방식이었을지언정, 그들을 증오하지 않았다. 미워하지 않았다. 내게 그토록 달콤한 쾌락을 선사하는 그들을 미워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들이 더 이상 구름 속을 떠다니는 그런 존재는 아니지만, 나는 사람을 사랑하지 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나는 여자들을 적으로 삼고 싶지 않았고, 그들에게 원한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나는 여자들이 미워서 폭력을 휘두르고 그녀들의 옷을 벗긴 게 아니다. 단지,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다른 방법을 찾았을 때는 이미 내가 터득한 방법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고. 

걸레쪼가리 같은 인생에서, 행운은 내 편이 아니었다. 보통 행운을 ‘행운의 여신’으로 일컫는 걸 감안하면, 행운도 여자인지라 자진해서 내게 다가오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 내게 유일하게 따랐던 행운이 있다면,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범하고도 그렇게 오랫동안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는 행운이었을 거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거의 오 년을 그런 식으로 보냈으니까. 

조선소에서 해고된 후(이유는 근무 태만이었지만 그것은 핑계였다. 윗선에서 아랫사람을 자르겠다는데 핑계 말고 더 뭐가 필요한가)일용직을 전전하면서 여자에게 쓸 돈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다가 성매매특별법이란 놈은 몇 푼 돈을 손에 쥐고도 그 짓을 하는 게 여의치 않도록 만들어 놓아 어쩌다 만나는 같은 신세인 주위 동료들의 원성은 이를 데가 없었다. 있는 놈들은……외국에 나가서 속 편하게 놀다 들어오고……없는 놈들은……여자들 달거리 기간 확인하듯 달력 보고 경찰 단속기간 확인해가며 안마방 드나들고……친구 하나는 꼭 술에 취하기만 하면 그런 식으로 빈정거렸다. 

어느 날, 술에 취해 본의 아니게 같은 공사판에서 일을 하던 친구의 집에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결혼을 했고, 비록 반지하 셋방이었을지언정 지붕 있는 방과 그 방을 함께 쓰는 아내가 있었다. 그날, 나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진심으로 깨달았다.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문전을 들어서는 순간 풍겨오는 따뜻한 음식 냄새, 긴 머리를 뒤로 묶고 내가 점유한 공간을 이리 왔다 저리 왔다 하면서 돌아다니는 치마 입은 여자. 밥을 먹는 동안 곁에서 참새처럼 조잘대는, 이런 저런 얘기들을 웃음 섞어 지껄이는 가늘고 높은 목소리. 그런 것들은 강간으로 성욕을 채우는 동안 내게 당하는 여자들에게서 내가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었다. 

나도 그런 것들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전생에 내시였다는 점바치의 말을 굳이 새삼스럽게 떠올리지 않아도, 나의 직감은 내 인생이 그러한 따뜻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이미 애진작에 알아 꿰차고 있었다. 그날 내게 얻어걸린 여자는 재수없게도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었다. 벌벌 떠는 입술과 눈에 눈물이 그렁한 얼굴을 보니 잠깐 그냥 놓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들킬 염려가 없는 한, 내 사전에 그냥 놓아보내 주는 법은 없었다. 어쩐지 이젠 이 짓도 시들해, 라고 돌아오면서 나는 속으로 잠깐 생각했다. 

잠재의식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죄책감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내 모든 충동과 범죄의 시발점이었던 억울함, 성의 계급화와 불평등에 대한 반감, 얼토당토 않은 내 운명에 대한 분노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놈은, 우리가 욕망이라고 부르는 그 놈은 내 사정을 봐주지 않고 찾아오게 되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섹스는 습관이 될 수 있어도 성욕은 습관이 될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내가 오랫동안 고수해온 나만의 방식이 이제는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친구의 아내와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난 그날 이후로 나를 괴롭히는 어떤 우울한 마음이 나로 하여금 이제는 그 짓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법 유효해서, 거의 한 달 동안이나 하지 않고 버티고 있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편해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짓을 저지르던 때보다 더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나의 내부에서 솟아나는 결락에 대한 견딜 수 없는 허무함이 나를 몸부림치게 했다. 쓰러진 여자 위에서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고 지퍼를 여미는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나도 내 친구처럼, 여자가 해 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밥을 먹는 동안 반찬삼아 조근조근 이런저런 잡담을 하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 놈은 어김없이 예정대로 찾아왔다. 

처음에는, 잘 아는 안마방을 찾아가서 해결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하고 나서 이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삼십 초도 걸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내 파트너가 되어주는 언니에게 내 것을 빨아보라고 했다. 물론 팁을 좀 더 주는 조건으로. 그 언니는 성실하게 그 놈을 빨아주었지만 언니가 아니라 문제는 내게 있었던 것이다. 

다음에는, 절대로 이대로 참고 넘어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예감은 어김없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지금까지의 자신감 넘치던 삶이 아닌,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멈추고 싶었다. 이 지겹고도 한심한 짓거리를 그만두고 싶었다.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면서, 무감각해진 채 습관처럼 반복한 이 범죄를 그만두고 싶었다. 

물론 경찰에 자수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수했다가는, 내 모든 범죄들의 총량이 까발려지는 날에는, 평생을 교도소에서 썩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다. 아무리 이 나라가 남자들의 편이고, 그 놈 편이고 내 편이라도 말이다. 아무리 내가 저지르는 짓거리에는 그래도 이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관대하다 해도, 불운이라는 건 존재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재수없으면 죽는 거다. 내게 걸려들었던 그녀들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도 나는 그녀들을 죽이지 않았다. 그거 하나만큼은 맹세코 사실이다. 

그러는 동안, 거듭되는 내 범죄에 내가 무감각해지는 동안, 희생양을 고르는 나의 신경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갔다. 어찌 된 셈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점점 내게 당하는 여자들의 나이가 어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어 놓은 그 여자 이후로는 무의식중에 나 자신 손쉬운 상대를 고르고 있었던 거다. 나이가 어리면 일단 힘도 약하고, 반항도 그리 드세지 않고, 무엇보다 여린 몸은, 포근하다……물론 미성년자를 건드렸다가 잘못 걸렸을 경우의 위험부담이란, 상상만 해도 몸이 오싹하지만, 나는 내가 이 짓을 시작한 후로 내가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었다. 이 나라는, 다른 그 어떤 범죄보다, 성범죄에 관대하다. 

그러나 파멸은 예고없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예고없이 찾아온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다. 

그날, 나는 취해 있지 않았다. 검찰과 변호사에게는 술에 취해 있었노라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술에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날 그 여자애를 건드린 것은, 내가 행했던 약 사오십여 건의 강간 중(본의 아닌 미수도 세 건 가량 포함될 것이다)거의 유일하게 그놈 때문이 아니라고, 미친 내 본능 때문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 마지막 범죄였다. 만약 그 놈 때문에 저지른 범죄였다면, 나는 그 애를 죽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오랫동안 그 애를 눈여겨봐왔다. 대체로 적당한 시간대에 적당한 장소에서 즉흥적으로 상대를 골라 해치우던 나는, 오랜 연륜으로 인해 한 두 명 정도는 미리 봐뒀다가 해치우는 센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그 애를 눈여겨 본 것은 내 희생양으로 고를 목적이 아니었다. 

그 애는, 말하자면, 내 이상형이었다. 그렇게 많은 여자들을 짓밟으면서도 단 한 사람에게서도 찾아내지 못한, 사랑을 불러일으킨 애였다. 얼굴이 동그랗고 눈꼬리가 중국집에서 간혹 보는 중세 동양화 속의 중국미녀처럼 길고 가늘게 뻗은 반달 모양이었다. 옅은 주근깨가 살짝 난 하얀 피부가 어쩐지 이국적이었다. 그 아이를 눈여겨보면서 나는, 만약 내가 결혼을 할 수 있다면 저 아이와 결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분명 그 아이와 나는 십 여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날 것이 뻔했지만 말이다. 

그 아이의 등교길을 파악하고, 전에는 하지 않던 짓을 시작했다.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옷을 서너 벌씩 갈아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어쨌든 그 아이에게만큼은 초라한 ‘찌질남’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고, 또 하나는 내가 그 아이를 뒤쫓아 다니는 것을 그 아이 본인이나 그 아이의 주위 사람에게 눈치채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얼마간 그 아이를 주시하면서 나는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혼자 있을 때가 많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릴 때도 그다지 밝게 소리 높여 웃거나 적극적으로 수다를 떠는 것은 드물었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그 아이의 얼굴은 수심이 드리워져 있었다.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으리라 짐작하면서 나는 점점 그 아이에게 집착해 갔다. 할 수만 있다면 사진이라도 구했을 것이다. 

그 아이를 미행하기 시작한 지 두 달이나 되었을까, 어느 날, 그 아이는 평소에 늘 다니던 정류장 쪽으로 난 큰 길 대신 반대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 길은 상수도시설을 둘러싼 철책에 면해 있었고, 산을 향해 올라가는 오르막길이라 그 아이 또래의 여학생들이 잘 지나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지름길인지라 간혹 떼를 지어 언덕을 넘어가는 일은 있어도 그날처럼 그렇게 혼자 하교길에 그 길을 지나다니는 여학생은 드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아이를 쫓아가면서, 나는 그만 눌러쓰고 있던 야구모자의 챙을 들고 말았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아이를 좀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를 쫓아갔을까, 그리 오래는 쫓지 않았을 것이다. 갑자기 그 아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나와 그 아이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온 몸을 꿰뚫는 오싹함과, 사정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황홀감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애는 별반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을 줄기차게 쫓아온 내 존재를 다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그 애는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다시 뒷모습을 내게 보이며 걷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르는 길인지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로부터 거리를 좀 두고 떨어져서 걸었다. 길은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내리막길 도중에 등산로로 이어지는 좁은 비탈길과 맞닥뜨리는 지점이 있음을 익히 알고 있던 나는, 그 길 즈음에 이르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다행히 그 때는 확실히 행운의 여신이 내 편이었다. 그 아이는 찍소리 내지 못하고 내게 이끌려 등산로 쪽으로 끌려갔다. 드디어 사람들에게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등산로를 따라 올라온 나는 어김없이 내가 지난 오 년간 해 온 그 짓을 그 아이에게 그대로 했다.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어느 때보다 추접스럽게. 

소리를 못 지르게 하려고 입과 코를 한데 틀어막고, 목도 좀 누르고 있긴 했지만, 설마 하니 그 때문에 질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과실치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니 과실치사가 아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강간이야 분명하지만, 결코 결코 살인은 의도한 바가 아니다. 내가 왜 작정하고 그 애를 죽였겠느냐 말이다. 얼마나 어렵게 만난 아이인데, 얼마나 어렵게 만난 내 이상형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끝내지 않고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았더라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손에 넣고 싶었던, 내 각시로 삼고 싶었던 아이인데. 

그날 밤, 나는 소주 두 병 반을 마셨고, 날이 무딘 과도로 손목을 그었고, 여관 주인의 신고로 병원에 옮겨졌다. 검거 자체는 거의 필연적이었다. 이 정도쯤 해서 나를 못 잡으면 그건 경찰이 경찰이 아닌 거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지만, 그 아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경찰도 그 아이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는지 내게 그 아이에 관해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 전에 벌어진, 내가 한 짓이 아닌, 대구에서 벌어진 어떤 연쇄 강간치사 사건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나는 경찰을 상대로 머리싸움을 하거나 거짓말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기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왜냐하면, 다른 여자가 아닌, 그 아이를, 그 어렵게 만난 내 연분을 그렇게 어이없이, 허무하게 내 손으로 놓아 보냈다는 사실에 얼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얼빠진 오년 차 강간범에게 두뇌싸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예상했던 대로, 나와 내가 저지른 사건들은 매스컴의 엄청난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붙잡히기 전, 내가 잠시 택시기사로 일아면서 현역으로 뛰던 시절, 대전의 기사식당에서 내 옆에 앉아 모 대기업의 전환사채 관련 뉴스를 보던 누군가가 혀를 차며 했던 말을 나는 기억한다. 저러다 말지. 두 달이나 가면 긴 거지. 결국 잠잠해지고 말 걸, 저렇게 떠들면 뭐 해. 나를 변호했던 국선 변호사의 말은, 내게 전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은 현실에 대해 더 날카롭게 정곡을 찔렀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가재는 게 편이라고, 판사도 남자들이거든. 강간이 범죄라는 걸 인정할 수 없는 거야. 기준이 애매하기도 하겠지만, 자기들이 생각해도 그랬다간 그건 남자들에 대한 선전포고거든. 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맞받아쳤다. 남성성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내가 죄인이 아니라면 소리내어 맞받아쳤겠지만, 나는 어쨌든 죄인이고, 그리고, 변호사가 내게 한 말이 아닌지라 말대답할 자격이 없고, 변호사 역시 아무리 변호인이라 한들 내가 좋아서 변호를 하는 게 아닐 텐데 괜히 말대답했다가 독박 쓸 일 없고. 뭐 그런 것이다. 

나는, 법과 정의의 심판을 받기 위해 법정에 서야 하는, 그리고 그 전에 정의와 양심의 이름으로 사람들이 던질 돌앞에 서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지를 두고 좀 고심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솔직하게 얘기하는 쪽을 택했다. 붙잡혀서 오히려 후련하지만, 지난날 내 행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이코패스 전문가가 온다 한들 내가 할 말은 한 가지뿐이다. 죄책감은 없다. 있는 것은, 사회와 마찬가지로 성의 세계에도 적용되는 불평등한 계급 체계에 대한 반발 정도일까. 아,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바로 나와 같은 파렴치한에게도 감히 변론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하고 싶었던 말이다. 나 역시 억울하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내 마지막 범죄, 나를 여기서 끝내게 만든 이 범죄에 대해서만큼은 억울하다는 사실이다. 내가 그 아이를 어떤 다른 방법으로 가질 수 있었단 말인가? 

또 한 가지, 억울한 것은, 이제 와서, 검찰에 송치된 이제 와서, 내가 전생에 내시였다는 점바치의 말이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어쩌면 전생이라는 것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나는 전생에 내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자기합리화라는 비난 앞에서는 입을 다물겠지만, 전생에 카사노바가 아니라, 삼천 궁녀를 농락한 의자왕이 아니라, 내시였다는 기막힌 점괘 앞에서 남자라면 어느 누군들 억울하지 않겠는가. 약오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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