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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Aug 10. 2018

악령

외마디 소설 혹은 의식의 흐름

악령



첼리스트 쟈클린느 듀프레는 병들어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아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제발 좀 와 달라고 밤새도록 호소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몰차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자면, 남이 나라 음악가가 외롭든 말았든 내 책임은 아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고독에 대해서는 책임감이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전가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책임에 대해서는 입을 닫는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단 한 사람의 인간도 예외없이 직면해야 하는, 음식이나 잠이나 성관계와 마찬가지로 절대적인 벽이다. 벽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쩐지 망설여지는데, 차라리 문이라고 해 두자. 

이 문은, 문지기를 앞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니요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열 수 있는 문이다. 그런데도 누구 한 사람 이 문을 열려는 사람이 없다. 문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거의 정확히 직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의 책임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만 설명해도 충분할 터이다. 그러니 이제는 고독 그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자. 

나는, 아니 우리는, 고독과 정면으로 대응할 수 없다. 때때로 매우 용감한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고독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고 알려져 있다. 굳이 신화를 언급해야 한다면, 고독은 메두사의 머리이고 극소수의 인간들만이 페르세우스의 방패를 가졌다. 그래서 고독이 내미는 몇 가지 카드들만 손에 쥐고 입맛을 다시며 패를 가릴 수 밖에 없다. 지극히 무표정하게 말이다. 

그 결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작은 내 전화기를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나와 천재 첼리스트 사이에 존재하는 결정적인 간극은 천재성의 유무가 아니다. 용감성의 유무이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 용기를 가졌고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 

그게 아니면 아직은 그녀보다 견딜 만한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아직은 닥치는 대로 전화를 걸어 제발 좀 와달라고 호소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는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굳이 내 목소리를 듣기 원하지 않는 이상, 내게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라도 좋다.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섞이고 말을 좀 더듬고, 말문이 막히면 한참 동안 침묵으로 일관해도 괜찮다. 어쨌든 인간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문제는, 그렇게 순수하게 자기 목소리를 들려줄 인간이 내 곁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내게 순수한 목소리를 들려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감정이라는 게 섞여 있지 않은가. 약간은 희석되고 약간은 장애물에 방해받은 감정. 

형식적인 반가움, 형식적인 인사, 형식적인 듣기 좋은 위로, 형식적인 분노 등등을 담은 목소리는, 미안하지만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상대가 아무리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라 해도, 이 형식이라는 놈은 내가 마음을 닫아걸고 있는 이상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들의 목소리를 과감하게 뿌리친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날이 찾아온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한계가 있다. 벽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럴 때는 전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부를 뒤지는 것이다. 대개는 붉은 줄을 그어 지워버린 바로 그 번호에 가서 손가락이 멈춰 버린다. 대개의 경우 그립다는 감정은 가슴 속 스폰지에 흡수되어 있다가 비틀어 짜면 나오게 마련이다. 그 그리움이 여덟 내지는 아홉 개의 번호로 압축되어 버리는 순간이 불시에 찾아온다.

왜 꼭 그 숫자이어야만 하고, 왜 꼭 그 번호의 조합이어야만 하고, 왜 꼭 그 목소리이어야만 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단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한순간이나마 분명히 해야 할 말이 떠올랐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숫자를 헤아리며 엎드린 자세로 누워서 손톱을 씹는 동안 한순간이나마 고독의 눈이 내 옆을 약간 비껴선다. 그리고 불시에 나는 나도 잊고 있었던 어떤 문장을 기억해낸다. 오래 전 별 뜻 없이 일기장에 휘갈겼던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귓속에 남겨진 자기 목소리를 회수해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그도 그의 일기장에 별 뜻 없이 그 문장을 휘갈겼다는 것이다. 


<흐느적거리는 자유, 19번째의 자유>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랑했던 그 문장들을 잃었다. 그리고 오늘 이렇게 최종 확인을 마치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렸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우노라면, 고독이 베갯잇 속으로 스며들고, 내 손가락은 허공에 뜬 수화기를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가 정해진 번호를 손가락으로 누른다. 

그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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