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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Oct 06. 2016

Sylvia Plath, Mrs Oven (3/4)

실비아 플라스 나의 오븐 여사 3/4


실비아 플라스, 미세스 오븐 (3/4)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어머니의 고생이지 아버지의 고생이 아니었다. 그 이유만으로,

나는 미워할 이유가 없는 아버지를 미워했다. 사실은 어머니가 나로 하여금 자꾸 아버지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래야 할 이유가, 어머니의 증오를 물려받을 이유가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것인가? 이미 내 부모는 서로 부부

가 아닌 원수지간이 되어 버렸는데,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편을 들라는데 어쩌란 말인가? 아

빠가 아니면 엄마, 엄마가 아니면 아빠. 그렇다면 나는 내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 대신

보고 들은 것을 택하겠다는 데 왜 나를 비난한단 말인가? Herr God, Herr lucifer, Beware.

Beware...... Herr 'moral people'. beware. beware........


그래서 아버지가 자신을 자학하는 모습을 내 앞에 펼쳐 보일 때마다 나는 내가 피해자라고

느꼈고, 아버지는 가해자라고 느꼈고, 그래서 아빠를 증오했다.

그리고 어쩌면, 아주 어쩌면, 실비아는 다리를 절단당하는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다

리를 잘리고 죽어가는 건 나라고, 그래서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만큼 증오한다고 생각했는지

도 모른다. 여기에서 실비아가 쓴 마지막 시인 DADDY의 한 구절.


Daddy, I have had to kill you

You died before I had time―

아빠, 전 당신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당신은 그래볼 사이도 없이 돌아가셨어요.


Sylvia Plath -DADDY



어느 날 술을 마시러 나갔다가 밤 늦게 혼자 돌아오신 아버지가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짐승

처럼 우셨을 때, 냉담하게 아버지를 달래다가 문득 치솟아오른 증오가 있었다. 그의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내가 아닌데 왜 내게 이러느냐고 묻고 싶었던 마음. 물론 그 질문은

어머니께는 수십 번 수천 번을 던지고 또 던졌던 질문이었지만. 아버지께는 원망이고 뭐고

도통 던질 기회가 없었으니까.


In stuck in a barb wire snare.

Ich, ich, ich, ich,

I could hardly speak.

혀가 철조망 덫에 달라붙어 버렸어요.

전, 전, 전, 전,

전 거의 말할 수가 없었어요.

Sylvia Plath -DADDY


그러나 나는 실비아가 아니고, 내 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대신 살아서 엄마와 나를 어떻게든

―설령 그게 갚으면 되는 돈일 뿐이었다 해도―돌보았고, 무엇보다는 나는 그의 딸이므로,

아버지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슴아파할 뿐이다. 그리고 가슴아파하는 마

음은 누구에게든 한 푼어치의 도움도 안 되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 애비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하신다면, 그렇게 해 드리지. 얼마든지.

그러면 이 대목에서 실비아는?


Daddy, daddy, you bastard, I'm through. 아빠, 아빠, 이 개자식, 난 끝났어.


Sylvia Plath -DADDY


웬일인지 I'm through가 늘어난 카셋트 테이프처럼 길게 울린다. 늘어난 카셋트 테이프에

DADDY를 녹음해서 건전지가 거의 다 닳아버린 라디오에 넣으면 이런 소리가 나올 것이

다. 아아아아이이이이이 에에에에에에에엠 쓰로오오오오오오오오오우우우우우우우우. 외마

디 한숨이 길게 으르렁거리며 이어지다가 끊긴다.



끝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어처구니없는 자학이다.

뭔가를 해결해 준다는 생각은 어쩌면 그저 어리석기만 한 생각일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구경하는 것, 침묵하는 것, 그리고 약간은 추측해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실비아가 남몰래 어떤 기구하고 곡절많은 사연을 거쳤든, 그리고 결국 끝에 가서

는 요리기구에 머리를 넣어 아침밥 대신 자기 목숨이나 요리했든 말았든 그건 그녀의 책임

이다.

설령 그녀가 옆에 있었다 해도 나는 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항상 그랬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약간의 경멸이 섞인 흥미 이상의 것을 보내지 않을 것이고. 이렇게 끈질기게 당신

을 갈궈대는 이유는 집착성이 아닌 습관성이니까. 삶의 대부분이 습관으로 채워져 있듯, 미

세스 오븐에 대한 상상 역시 내게는 이제 아주 오래된 습관 그 자체가 되어 버렸으니까.

그러나 실비아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 역시 그녀가 미세스 오븐이 되어버린 이유로서는 너무

나 미약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발상을 바꾸어서; 그러면 그녀가 죽던 무렵은 어떠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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