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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Aug 03. 2019

말하는 고양이와 불행한 남자 2

3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 있던 찰나에, 느닷없이 찾아온 회사 후배가 막무가내로 떠맡기고 간 고양이와의 동거가 시작된 지도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녀석에게 붙여진 호빵이라는 이름은 맹세코 내가 지어 준 이름이 아니다. 하지만 녀석의 둥글넙적한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어울리는 이름을 상상할 수도 없다. 

녀석은 사람의 말을 할 때 입을 움직이는 법이 없다. 어쩌면, 내게 사람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는 녀석의 말을 알아듣는 건 나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분명히 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비록 맛있는 사료를 줄 때와 자신의 비위에 맞지 않는 것들이 있을 때 이외에는 거의 말을 하는 법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과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공포영화의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극단적인 선택에 성공해서, 귀신이 된 상태에서 승천하지 못하고 이 곳에서 고양이의 혼령과 함께 눌러앉아 버린 게 아닌가 라는 상상을 해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더러워진 몸이 찌뿌둥해지며 방귀와 트림이 나오고 배설물이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걸로 봐서는, 결코 나는 죽은 게 아니다. 

“이 사료 마음에 안 들어.”

“답답하니까 창문 좀 열어 봐. 바람 좀 들어오게.”

“담배 좀 작작 피워. 냄새가 아주 지독하다구.”

“더럽게도 재미없어 정말. 채널 좀 바꿔.”

이런 식의 아주 단순한 요구들만을 이따금 제시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는 해도, 고양이건 뭐건 내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해오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처음에 들었던 공포감은 잠시였을 뿐 그럭저럭 평온한(나의 내면 또한 평온한) 며칠이 흘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마침내 화창한 어느 월요일의 아침에 기지개를 켜고 아침을 먹고 난 녀석은 지금까지와는 결이 사뭇 다른 질문을 해 왔다. 

“대체 왜 죽으려는 거야?”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젓가락으로 집었던 김치를 떨어뜨릴 뻔했다. 그러고보니, 녀석을 두고 죽을 수가 없고 죽을 수가 없자니 밥은 먹어야겠어서 억지로 밥솥에 밥을 하고 녀석의 사료를 사는 김에 같이 산 포장김치를 막 뜯은 참이었다. 그렇다. 녀석을 두고는 마음 편히 죽을 수도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 녀석은, 대체 내가 죽을 생각이었던 걸 어떻게 안 걸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글쎄. 뭐 말로 설명하긴 힘들지만, 어쨌든 난 알 수 있어.”

“독심술이라도 부린다는 거야 뭐야.”

“그렇다고 해 둘까? 아무튼, 지금은 곤란해. 그 계획 자체야 내가 말릴 권한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당분간은 보류해 줘.”

“대체 왜? 너 때문에?”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네가 내 집사인 이상, 당장 네가 죽으면 내 생명도 위태로운

건 맞잖아?”

“이런 이기적인 고양이를 봤나.”

“사람이 더 이기적이지. 아무튼, 지금 네가 죽으면 여러 모로 곤란해. 사실, 나 부탁을 받은 것도 있고 해서.”

“부탁?”

“널 지켜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있었거든. 그 사람의 부탁을 받고 여기까지 온 거야. 네가 그것도 모르고 날 죽일 작정으로 이틀씩이나 가둬놓고 굶길 때는, 그 부탁을 들어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4

도대체 나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호빵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어쩐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우선, 호빵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날 지켜 달라는 부탁 따위를, 사람도 아닌 고양이에게 해올 사람이 내 주변에 누가 있단 말인가. 이 요물이 말 같지도 않은 거짓말을 꾸며내서 둘러대고 있다 한들 확인할 길은 없는 것이다. 애써 확인할 가치도 없다. 

내게 녀석을 맡긴 전 직장 후배 커플의 부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당분간은 나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말아달라는 녀석의 부탁을 두고, 들어줄지 말지를 망설이느라 또 며칠을 부질없이 허비해야 했다. 

사실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직장을 그만둔 이상, 내게는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으니까. 딱히 뭔가를 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세상에 미련을 두게 할 만한 소일거리가 있다면 자살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이상은 해야 할 몇 가지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그런 일들을 하며 차곡차곡 빈 시간을 채워나갔다. 간단한 청소, 호빵의 사료 그릇을 씻고 화장실용 모래를 바꾸기 등등. 그러면서 틈나는 대로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한편으로는 녀석이 아플 때를 대비해 근처에 있는 동물병원의 위치와 전화번호까지 외워두었다. 

그러고 보니, 내 생활의 상당 부분에 준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호빵에게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바로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가 나의 자살을 온몸으로 막는 방식이었다.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게 어슴푸레 빠져든 잠에서 어느 순간 문득 깨어났을 때 나를 온몸으로 짓누르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호빵이었다. 녀석은 내가 애써 만들어준 녀석의 잠자리를 거부하고 꼭 내 배와 가슴 사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몸을 둥글게 만 상태로 자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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