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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Aug 07. 2020

단편)김치볶음밥과 에그 베네딕트

상실을 공유했던 사람들


 김치볶음밥과 에그 베네딕트        




둥글납작하게 썬 잉글리쉬 머핀 혹은 바게뜨 위에 데친 시금치와 베이컨을 얹는다. 그 위에 살짝 익힌 수란을 조심스럽게 올린다. 노른자가 금세라도 터질 듯 아슬아슬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하는 그 수란을 만드는 게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다. 어디 그뿐이랴. 에그 베네딕트에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는 그 홀랜다이즈 소스만 해도 달걀노른자와 버터를 몇 번이나 풀어서 녹이기를 반복해야 한다. 일단 만든 후에는 쉽게 상하고 보관이 어려워 가급적 빨리 먹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레시피가 그러하니, 이래저래 집에서는 만들어 먹기가 고되고 귀찮은 메뉴이다. 그렇다고 해서 혼자 근사한 브런치 카페에 가서 에그 베네딕트를 주문할 정도로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도 못된다. 이래저래 누군가를 꼬드겨 같이 먹으러 갈 사람을 찾아내는 도리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토록이나 절실하게 에그 베네딕트를 갈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가 찾아낸 상대는 함께 브런치 메뉴를 즐기며 한가하게 담소를 나누기에는 너무나도 불편한 상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다름아닌 나의 시누이였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의 전 시누이’이다. 그녀로 봐서는 내가 ‘전 올케’가 되는 셈이다.

아이가 없이 이혼한 나와, 아이 하나를 낳고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해야 했던 나의 전 시누이는 똑같이 남편의 부재라는 멍에 아닌 멍에를 걸머지고 있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사회가 분명히 씌워 둔 그 멍에, 그러나 정작 본인들은 이미 길이 들 대로 들어버린 탓에 종종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그 멍에 말이다. 나보다 두 살 아래였던 그녀는 (남편과 내가 동갑내기 고등학교 동창이었음을 상기하면 자연스러운 터울이다) 내가 전남편과 결혼하던 그 무렵만 해도 무척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당연히 시누이 노릇을 한다는 것은 있을래야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드러내지 못했던 나의 본성을 일찌감치 파악했던 유일무이한 사람이기도 했다.

“언니 참 차가운 사람이네.”

남편과 합의 이혼한 사실이 주변에 알려졌을 때, 어느 누구도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던 가운데, 뜻밖에도 그녀만이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게 했던 것이다. 아마도 내 전남편인 그녀의 오빠가,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속으로는 상당히 내게 미련이 많았던 점을 빗대어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히 나와 정반대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쨌든,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생각해보니, 선정이가 남편을 잃은 지도 꽤 오랜 세월이 흘렀구나 싶었다. 무작정 전화를 걸어 에그 베네딕트가 먹고 싶다고 졸랐을 때, 그녀는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화를 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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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간이 짜네.”

이미 노른자가 터져버린 수란을 뒤적여 얌전히 깔려 있던 시금치를 포크로 찍어먹은 내 면상이 찌그러지는 것을 본 선정은 쓴웃음을 지었다.

“언니, 많이 변했네요.”

시금치가 짜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 뭐 그런 식으로 나오나 싶었지만 나는 조용히 먹고 싶었던 에그 베네딕트를 해치우는 데 바빴던지라 선뜻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어떤 의미로 변했다는 걸까, 하고 머릿속으로만 떠올리고 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잠시 후 뜬금없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나 최근에, 어떤 남자를 알게 됐는데.”

어라라?

일이 재미있게 돌아간다? 라는 생각을 황급히 머릿속에서 지운 후, 내 본연의 목적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는 이미 내 입맛에 맞지 않게 만들어진 에그 베네딕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커피를 향해 손을 뻗으며 선정의 표정을 살폈다. 묘하게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다. 연애중인 여자의 설레임 따위는 찾을래야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어떤 남자?”

“언니, 많이 변했어요.”

“그래. 칭찬은 아닌 것 같다.”

“오빠랑 같이 살 때보다는 덜 차가워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좋은 쪽으로 변했다는 뜻이에요. ”

“그러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지만 애써 숨길 여유도 없었다. 어쩌자고 오늘의 에그 베네딕트는 이다지도 맛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니 홀랜다이즈 소스 특유의 풍미가 커피와 어우러지면서 기분 좋은 풍미가 입 안을 감쌌다. 덕분에 한결 느긋하게 선정을 대할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역시, 아무리 전 시누이라고는 하지만 편안한 상대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예의바른 존재였고, 그래서 묘하게도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같지 않은 불편함을 안겨주는 존재였다.

“꽤 괜찮은 사람이에요. 잘생겼고, 집안도 좋고 돈도 많아요. 나한테도 친절하고요. ”

“잘됐네.”

어쩐지 불안하다 싶었지만, 일단은 그렇게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이어지는 선정의 고백은 그렇게 훈훈한 내용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그 사람, 유부남이에요. 가정이 있어요.”

그러면 그렇지. 세상만사 그렇게 호락호락한 로맨스가 어디 있을라고.

“정리해.”

“그 남자를 정리하라는 말이죠?”

“그러면 누굴 정리하라는 거겠어? 험한 꼴 보지 말고 일찍 미련 버려.”

“내 생각도 그래요. 그래서 그렇게 말했더니, 정리는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알아서 하게 내버려뒀어요. 그랬더니 대뜸 그 부인이 날 찾아왔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별다른 말은 안했어요. 그냥 궁금했대요. 어차피 자기도 이혼할 작정이었던지라 별로 억울하거나 화나는 건 없지만, 그 인간의 취향이 궁금했었다나 어쨌다나요. 처음부터 연애로 한 결혼은 아니었나 봐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응.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했거든요?”

“뭐?”

“근데 언니, 이거 맛있어요?”

선정은 탐탁치 않다는 표정으로 접시에 놓인 자기 몫의 에그 베네딕트를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자기가 고른 메뉴는 아니었기에 강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먹기 싫으면 놔둬. 내가 먹을게. 그보다, 하던 얘기 계속해 봐. 뭐가 문젠데?”

“그게.....”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채근을 하고 말았는데, 어물거리는 선정의 표정에서 뭔가 보아서는 안 될 것이 스쳐 지나갔다, 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심각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짓는 그 특유의 기색 말이다.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이 나이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포착하지 못했을 그 고통의 징후, 찰나의 순간을 스쳐가는 절규.

그날 나는 그 짜디짠 시금치를 곁들인 두 개의 에그 베네딕트를 꾸역꾸역 혼자서 다 먹었고, 다소 쓰긴 해도 과히 나쁘지 않았던 커피로 입가심을 하며 묘하게 쓰려오는 속을 달랬다.

그로부터 한달쯤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선정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내가 해 준 김치볶음밥을 먹고 싶다는 전화였다. 재료는 집에 다 준비해 놓을 테니 와서 만들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속으로 조금은 의아해했다. 내가 그녀의 ‘전 올케’가 아닌 그냥 ‘올케’였던 시절,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을 그녀가 먹었던 기억이 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떠올려봐도 선정이한테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준 기억은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한번쯤 그녀의 집에 가서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해서 나쁠 것도 없었다. 어차피 그녀로부터 미처 다 듣지 못한 그 불행한 에피소드의 후반전이 궁금하기도 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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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시작했던 결혼생활은 터무니없이 짧았었다. 두 살 어렸던 선정이는 그 당시 내 집이기도 했던 오빠 집을 꽤나 자주 드나들었지만 그녀의 오빠나 나나 그걸 전혀 문제삼지 않았다. 대학생이었던 그녀의 학교에서 그녀의 집이었던 본가보다 우리 집 쪽이 훨씬 가까웠던 탓이 컸다. 말수가 적고 얌전했던 성격이었던 그녀와 내가 사이나쁜 올케 시누이지간이 되었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셈이다.

내가 이혼할 무렵 졸업해서 갓 회사를 다니던 직장인이었던 그녀는, 내가 이혼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둘러 결혼했다고 들었다. 그녀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이기도 했던 사람을 알고 지냈기에, 전 시댁 식구들의 소식이 모두 끊어진 후에도 선정의 소식만큼은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이혼한 지 삼사 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선정이의 지인이 문자로 뜬금없는 뉴스를 전해 왔다. 이제 갓 돌을 넘긴 딸과 아내를 세상에 남겨 둔 채, 선정이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했다. 터무니없게도 ‘전형적인’ 음주운전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였다. 늘 그렇듯, 가해자는 살았지만 피해자였던 선정이의 남편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사실마저 터무니없이 전형적이었다.

발인 직전 빈소를 찾았다. 볼이 쑥 들어가고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선정이는 직장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나와 눈인사를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헤어졌던 전남편을 헤어진 후 처음으로 다시 만났다. 너무나도 침통했던 상황에서 맞대면이었던 탓일까. ‘와줘서 고맙다’는 말 한 마디를 겨우겨우 힘겹게 뱉자마자 황망히 그 자리를 떠 버린 그를 서운하게 여길 겨를조차 없었다.

서로가 미워져서 이혼했던 건 아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렸었다. 그저 좋은 친구로만 남는 편이 나았다는 사실을 서로가 일찍 깨달을 정도의 지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고 생각한다. 돈 문제, 각자 못다 마친 진로 문제,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의 괴리 등등은 전혀 중요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내 딴에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되는 액수의 부조금을 건넸다. 그래서였을까. 이따금, 아주 이따금이기는 했지만, 선정이는 내가 걸어오는 전화를 피하지 않고 받았다. 그래봐야 거의 반년에 한 번, 크리스마스나 휴일 등에 만나서 밥이나 먹고 차나 마시다 오는 정도의 교류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껄끄러운 사이임이 분명한 사람인 나를 그녀가 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고맙기까지 했던 이유는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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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평수 스물 다섯 평 남직한 임대아파트는 예상 외로 깔끔하고 아늑했다. 층수가 높은데다 동남향이라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여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남자의 흔적이 없는 집, 이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느 집 현관에서나 한 켤레쯤은 나뒹굴 법한, 우악스럽게 크고 꼬질꼬질한 운동화나 남성용 정장 구두 따위는 없다. 세탁소에서 쓰는 비닐을 곱게 둘러쓰고 일회용 옷걸이에 걸려 대룽거리는 남성용 와이셔츠 또한 이 집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화초도 런닝머신도 재떨이도 닌텐도 스위치도 이 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싱크대에 놓인 그릇들은 단촐하고 깔끔하다.

선정이의 딸아이는 지금쯤 학교에 가 있을까. 아니면 유치원? 빈소에서 얼핏 본, 누군지 모를 여자의 품에(선정의 시가 쪽 식구 중 하나였을 법한) 안겨 있던 꼬맹이를 힘겹게 기억 너머 저편에서부터 이쪽으로 소환해온다. 아마 이제쯤은 일고여덟 살,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먹었으려나.

자그마한 패브릭 소파와 더불어 제법 큼직한 티테이블이 거실 구석에 자리잡고 있었다. 아마도 식탁 겸용으로 쓰는 티테이블인 모양이었다. TV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TV가 보이지 않고 대신 무지(MUJI)에서 사온 걸로 추정되는 벽걸이로 된 CD플레이어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TV를 왜 들이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되돌아온 선정이의 대답은 의외로 간결명료했다.

“돈 아깝잖아요. 매달 나가는 유선방송 시청료 말이에요. 이것저것 결합이다 뭐다 해서 할인 혜택 많다지만, 그건 가족이 많은 사람들 얘기고......”

냉장고에서 신김치를 꺼내 썰고, 밥솥에서 식은 밥을 덜어내는 동안 선정이는 심플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베이지색 벽걸이CD 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빌리 홀리데이가 부르는 <Your Mother's Son in Law>가 거실을 가득 메웠다. 재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곡만큼은 기억하고 있었던 이유는 언젠가 커피숍에서 들었던 이래로 그 바삭거리는 과자같은 경쾌함에 섞여드는 나른함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가 재즈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언니는 재즈 싫어해요?”

“싫어하는 건 아니고, 그냥 잘 모르는 거지.”

“전 요즘 자주 듣죠.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건 없지만, 듣다 보면 귀찮은 잡생각을 좀 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건 없지만, 이라는 말이 귓가에 오래 남았다. 아마도 맞는 말이어서 그랬던 걸까. 그 말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훨씬 선명하게 내 귓가에 남아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랫동안, 선명하게.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는 건 없지만, 어쨌든 재즈는 옳다, 는 결론을 내린 건, 훨씬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내린 결론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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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 통조림 없어? 야채참치나 고추참치 같은 거.”

“없어요. 그냥 참치 통조림이라면 하나 있긴 해요.”

“아냐. 그냥 햄 남은 거 쓸게. 유통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네.”

“계란 후라이는 내가 만들어 올릴 테니까, 그냥 밥만 김치하고 볶으면 돼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부엌에 붙어서서 이런 저런 재료들을 꺼내고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버터도 있긴 하지만, 그냥 식용유 쓰는 게 낫겠죠?”

“버터, 포장 뜯은 거야?”

“아니, 새 거예요.”

“그럼 그냥 두고 식용유 쓰자. 근데 잠깐만, 지금 나오는 곡은 대체 뭐야?”

“아아.”

김치볶음밥 따위를 만들며 듣기에는 터무니없이 아름다운 멜로디에 나는 그만 칼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말았다. 선정이는 웃으며 벽걸이 CD 플레이어 쪽으로 다가간 후 소파 위에 굴러다니던 CD 케이스를 집어들어 흔들어 보였다.

“이거예요. 펫 메서니(Pet Metheny). 아이스파이어(Icefire) .”

“나, 이거 좀 듣고 나서 만들면 안 될까?”

“그냥 내가 만들게요. 어차피 고추참치가 없어서, 오리지날 언니표 김치볶음밥은 못 만드니까. 내가 만드는 걸로 할게요.”

제목 그대로 차가운 불 같은 얼음에 냉화상을 입을 것만 같은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순식간에 음악에 취해 버린 내 앞에 놓여 있던 도마와 칼을 성큼 빼앗은 후, 선정이는 능숙한 솜씨로 볶음밥에 넣을 신김치를 잘게 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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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정말 김치볶음밥 해달라고 날 부른 게 맞아?”

나도 모르게 부엌을 떠나 펫 메서니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소파에 주저앉은 후, 늘 하던 버릇대로 얼음을 둥둥 띄워놓은 드립커피에 손을 가져가며 내가 물었다.

“나한테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주려고 부른 게 아니고?”

“정확히 말하면, 둘 다죠. 옛날에 언니가 고추참치랑 계란 풀어서 볶아준 그 볶음밥, 생각 안 나요? 나 그거 생각나서 불렀던 건데, 불러놓고 나니 고추참치 통조림 사놓는 걸 깜박했네요.”

“내가 그런 걸 너한테 만들어 줬었단 말이야?”

“오빠 먹으라고 만들어서는 셋이서 나눠먹었었죠. 그때만 해도......”

선정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아마 그때만 해도 자신의 오빠, 내 전남편과 나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 않았었다는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이리라.

선정이가 만들어 내놓은 김치볶음밥은 훌륭하고 깔끔했다. 마늘과 햄과 신김치를 썰어 볶은 김치 볶음밥에 계란 후라이를 얹은 모양새가 훌륭했다. 나라면 여기에 풋고추를 넣었겠지만, 선정이 만든 김치 볶음밥이 맛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해서 일말의 아쉬움 따위는 눈곱만큼도 남지 않았다.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는 동안, 선정은 드디어 지난번에 못다 한 나머지 고백을 할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했다. 빈 접시를 싱크대에 가져다 두고 두 잔째의 드립커피를 마시는 동안 나는 작지만 아담한 그녀의 아파트 안에 아이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의 당혹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나도 모르게 현관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나를 본 선정은 마침내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이 무엇인지를 눈치챘다.

“아이는, 시댁에서 데려갔어요.”

“언제?”

그 성격에 절대 아이와 떨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좀 의외였다.

“작년에요. ”

“네가 보낸 거야? 아니면 그쪽에서 데려간 거야?”

“그쪽에서 데려갔어요.”

“왜 갑자기?”

“저한테 남자가 있는 걸 알았거든요. 그 쪽에서.”

“하지만.....아직 정식으로 재혼하기로 결정한 것도 아니잖아?”

“그게.....그 남자가 아니에요?”

“무슨 소리야? 그 남자가 아니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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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히게도, 선정은 두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그러하다.

처음에는 어이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설명을 들으면서 분노는 차츰 수그러들었다. 게다가 그건 어디까지나 선정이 개인의 문제였고, 본질적으로 내가 화를 내거나 할 이유가 없는 문제였다.

남편과 사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한 남자를 알게 되었다.

착한 남자라고 생각했고, 쉽게 친해졌지만 늘 그렇듯 쉽게 시작한 관계는 예상치 못한 파장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남자는 착하기는 했지만 너무나고 무능하고 연약했다. 게다가 우습게도, 무능하고 연약한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까지 있어서 화가 나면 며칠씩 연락을 끊기도 하고 선정에게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잠자리에서 내키지 않는 요구를 해 오는 통에 싸운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매번 지는 쪽은 선정 쪽이었다.

결국 지친 나머지 이별을 결심했지만, 막상 헤어지기로 마음먹고 나니 후환이 두려웠다. 아무리 순한 양 같은 남자라도 이별을 통보받고 나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주위로부터 보고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남자의 성격상 순순히 헤어져 줄 리도 만무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남자가 하던 일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안 만난 거야?”

“전혀 안 만난 건 아니지만. 거의 끊어졌다고 봐야겠죠.”

“네 시댁에서는, 네가 그 남자를 만나는 걸 어떻게 알았는데?”

“애를 데리고 시댁에 갔었는데,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실수로 그만 들켰죠.”

“아니라고 잡아뗐어야지.”

“잡아뗐지만, 워낙 눈치들이 빠르니까요. ”

하기야, 생각해보면 젊디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읜 생과부가 딸 하나만 보고 언제까지 수절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따지고 보면 오히려 그녀의 시댁 쪽이 그녀를 배려해서 내린 조치인 셈이기도 했다. 게다가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다시 아이를 데려올 수도 있다.

“주말에는 여기 데려와서 같이 있다가, 평일에만 시댁에 보내요. 그쪽이 유치원하고 훨씬 가까우니까요.”

“그래, 잘된 거네. 너로 봐서는. 그런데.”

“그런데요?”

“네 말만 들어봐서는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원래 알던 놈하고는 끊어졌고, 새로 알게 된 놈은 너 때문에 기꺼이 자기 가정을 정리하겠다고 했다며? 그러면 정확하게 문제될 건 하나도 없는 거잖아.”

“진짜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녀답지 않게 코웃음을 치며 그렇게 되물어 오는 선정의 표정에서, 나는 확실히 변한 쪽은 내가 아닌 그녀 쪽이라는 걸 확연하게 깨닫고 있었다. 먼 옛날 젊은 부부와 함께했던 그 풋풋하고 숫기없던 여학생이 언제까지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걸까.

“나이도 어린 게 남자를 둘이나 꼬시다니 재주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죠? 그런 거죠?”

“음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따지고 보면 겨우 두 살 차이다. 내 경우는 워낙 눈도 콧대도 높다보니 타협할 줄을 몰라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지만, 선정을 비난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 물론 부럽다거나 질투가 난다거나 하는 것과도 거리가 먼 감정이다.

그러나 역시, 선정이 고민하는 게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나로서도 추측할 길이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선정이 베란다로 가 닫았던 커튼을 조심스럽게 걷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가 오빠랑 이혼하기 직전에 했던 말, 기억 못하죠?”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데.”

“개하고 남자는 못 키우겠다, 고 했던 말.”

네 오빠 성격에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가, 정말 거짓말처럼 그 말을 하던 그 날이 퍼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랬다. 분명히, 선정이가 듣는 앞에서 나는 겁도 없이 그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나의 전남편이자 그녀의 친오빠인 그 존재가 없었다.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거다.

“기억나.”

그렇게 힘없이 대답하고, 나는 접시에 조금 남은 김치볶음밥을 내려다보았다. 그 무엇을 먹어도 위장이 채워지지 않을 것처럼 깊은 허기가 서럽게도 몰려들었다. 어느 새 펫 메서니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멜로디도 사라졌다. 뭔가 다른 걸 듣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듣고 싶은 곡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 사라졌는지도 모를 그 곡을 다시 틀어달라고 청할 마음도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느끼는 이 허기는,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음악 따위로 달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허기가 아니었다.

“김치볶음밥, 남았니?”

“조금요.”

“다 주라. 나 갑자기, 배가 더 고파졌어.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

접시에 남은 김치볶음밥을 싹싹 긁어 먹으며 나는 내 나름의 변명을 덧붙였다.

“그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지껄인 거야. 절대로 진심이었다고는 생각하지 말아 줬......”

“그 말이 맞을지도 몰라요.”

“뭐?”

“남자하고 애완동물을 못 키우는 족속들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에요.”

“아......”

어이가 없어 잠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면서, 언니가 했던 말을 잊었던 적이 없어요. 그리고 생각하면 할수록 그 말이 맞구나 싶었고요. 신랑 잡아먹은 년이라고 뒤로 쑤군대는 소리 들으면서, 혼자 수절과부로 살아본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기합리화 할수록 그 말이 정답이다 싶더라고요.”

“저기, 그러니까 내 말은 있잖아. 남자하고 개가 싫다는 뜻이 아니라.”

“그러니까요. 남자를 싫어하는 건 아니죠. 개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남은 김치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내 앞에 내려놓은 후, 선정은 단호하고도 확고한 어조로 이렇게 덧붙였다.

“어르고 달래며 예뻐해주는 거랑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건 분명히 다른 문제니까요.”

“사실 난.......”

어느 새 기름기로 더부룩해진 속에 커피를 들이부으며 나는 맥없이 대답했다.

“고양이도 못 키워.”

“뭐가 됐든 마찬가지죠.”

“그리고, 난 아직도 정확하게 네가 뭘 고민하는지 잘 몰라.”

슬쩍 걷힌 커튼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우울증 환자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런 따스하고 밝은 햇살 말이다. 그러나 결코 어느 누구에게도 풍성하게 허용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여리고 불안한 겨울날의 햇살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선정은 한숨을 내쉬며 나와 마주앉은 후, 내 앞에 놓인 김치볶음밥이 담긴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새로 만난 그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이지만 어쩐지 마음이 안 놓여요.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남자라서 더 그런가 봐요. 더구나 나 때문에 이혼까지 한다니, 졸지에 가정파괴범이 되어 버리고 만 셈이니까.”

“그리고, 살다 보면 또 예상치 못한 복병이 숨어있을 수 있지.”

“그날 언니가 에그 베네딕트 먹으면서 짜다고 투덜거렸잖아요. 그때 속으로 그 생각 하고 있었어요.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워도 막상 먹어 보면 짠, 그런 에그 베네딕트 같은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고.”

“원래 에그 베네딕트는 맛있잖아. 별미로 먹는 고급 브런치 메뉴지. 늘 먹을 수 있는 건 아니야.”

“맞아요. 매일 먹으면 질리겠죠.”

“그 사람이 에그 베네딕트면, 원래 만나던 사람은 이 김치볶음밥쯤 되려나?”

“아마도요.”

선정은 잠시 나의 비유법이 맞는지를 속으로 고민해보는 눈치였다.

“익숙해진 사람이라는 점에서는 확실히 그렇겠죠. 게다가 함께한 세월 동안, 웃기게도 의리라는 게 생겨버려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쉽게 외면할 수는 없지. 언젠가는 분명히 생각날 거고.”

“하지만 김치볶음밥하고는 달라서, 생각난다고 매번 해 먹을 수는 없어요.”

“가끔 만나는 거야 어때? 한 집에서 같이 살지만 않으면 되지 뭐.”

“언니, 나 그러려고 그 사람 만났던 건 아니잖아요.”

큰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훈계하는 여선생마냥 타이르는 어조로 쓴웃음을 지으며 선정이 대답했다. 그렇구나.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의 반려자에 대해서, 바로 그 부분에 대해서, 선정은 고민하고 있었던 거다. 이미 한번 남편을 여의고, 그 일을 계기로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말이다. 뼈아픈 상실을 경험한 덕분으로 그녀는 신중해졌고, 반려자에 대한 소중함을 가슴 깊이 깨닫게 되었다.

나는 어떤가.

상실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선정과 나는 같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그녀와 나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심약해진 선정과는 반대로 나는 더욱 완고해졌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는 관대해졌지만, 정작 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만큼은 조금도 관대해질 줄을 몰랐다.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였다가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분노를 안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조금쯤은 내려놓고 싶었지만 내려놓는 방법도 몰랐다. 이렇게 가슴 깊은 곳에서 서럽게 차오르는 허기를 김치볶음밥으로 달래는 것 말고는, 당장 내가 내 분노를 내려놓을 만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마땅치 않다.

“언니, 내 거 좀 더 먹을래요? 난 식욕이 없어서.”

“그럴까? 너, 이제껏 몰랐는데 김치볶음밥을 나보다 더 맛있게 만드는 것 같아.”

“하지만 언니가 옛날에 해 줬던 그 맛은 못 내겠더라고요.”

“미안해. 내가 오늘 만들어줬어야 했는데. 그만 그 빌어먹을 멋진 음악 듣느라고.”

“펫 메서니 말이죠?”

“응, 그 작자 연주 듣느라고.”

“그럴 만해요. 에그 베네딕트가 이런 쪽으로 센스가 있어서, 이것저것 추천해 주곤 해요. 그 중에 하나였는데, 이 앨범 수록곡이 참 괜찮더라고요.”

집에 갈 때 그 앨범 타이틀을 알아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선정이의 접시에 있던 김치볶음밥을 접시째로 내 쪽으로 들고 와 버렸다. 그러면서, 내게는 에그 베네딕트에 비유할 만한 연인 따위는 없다는 쓰디쓴 현실을 새삼스럽게 체감했다.

“김치볶음밥 쪽은, 뭐 이렇다 할 취미 같은 거 없었어?”

“아아, 김치볶음밥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선정이가 입을 가리고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미드요.”

“미드?”

“미국 드라마요. 범죄수사물 CSI 같은 거. 그런 걸 엄청 좋아했어요. 새벽까지 그걸 보느라 잠도 안 잘 정도로요.”

그 옆에는 당연히 네가 누워 있었겠지, 라고 묻고 싶었지만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 새벽까지 그 곁에 있지 않았다면, 김치볶음밥이 미국 드라마 매니아라는 사실 따위를 알았을 리 없으니까.

그러니까 나의 전 시누이는, 미드를 좋아하는 김치볶음밥에 대한 미련과, 펫 메스니 같은 음악가를 알려 주는 새로운 연인 에그 베네딕트에 대한 죄책감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우적대는 셈이었다. 어쩌면 이 채울 길 없는 허기의 실체는, 질투일까. 두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 예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전 시누이에 대한 질투?

머릿속으로 밀려드는 혼란을 애써 떨쳐내며 나는 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집어들었다. 다행히도, 선정이가 리모컨을 들어 멎었던 CD 플레이어를 다시 재생시켰다. 요리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다 된 요리를 먹기에도 터무니없이 훌륭한 곡이었다. 덕분에 머릿속을 잠식했던 혼란이 저만치 밀려나갔다.

“너, 이 앨범 이름 휴대폰 문자로 좀 찍어 줘. 나도 사야겠다.”

“지금 바로 보낼게요. 그보다도, 천천히 먹어요. 그렇게 허겁지겁 먹다가 체하겠어요. 지금 소화제도 다 떨어지고 없는데. ”

“너무 맛있어서 그래.”

“언니 못 본 새 살이 엄청 쪘다고 생각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요. 오빠가 보면 꽤나 정떨어져 하겠네.”

“네 오빠가 아직도 나한테 미련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언니는요? 언니는 미련 없어요?”

“털끝만큼도 없어. 신경쓰지 마.”

“하긴. 살아있는 거라고는 화초 하나도 변변히 못 키워내던 사람이니까.”

“너, 네 애인들한테도 나한테 하는 것처럼 직설어법으로 말하니?”

“언니도 참. 그러면 애인들한테 쓰는 말투가 따로 있을까 봐요? 기분 나빴다면 미안해요.”

“아니 기분 나쁜 건 아니고.”

사실, 예상 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소화제는 없어도 콜라는 있겠지?”

“있어요. 잠깐만요.”

일어서서 부엌으로 향하는 선정이의 나긋한 몸놀림을 보며 나는 내가 갖지 못한 <어떤 것>에 대한 뼈저린 결핍감을 새삼스럽게 되씹고 또 되씹었다.  

.

여기까지가 선정과 내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의 추억이다.

-김치볶음밥이 내 현실이고, 에그 베네딕트가 내 이상이라면, 이상 때문에 현실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선정이 뭐라고 대답했는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사실은, 내가 정말 그날 저런 질문을 했었는지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급히 먹어대느라 쳇기가 돌던 명치 끝을 손으로 내내 두들겨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질문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선정이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온 사람은 전남편이었다. 알려야 할 것 같아서 전한다며, 그녀의 부고를 짧은 문자 몇 줄로 정리해 알려왔다. 빈소가 어딘지를 물으려다 그만두고 말았다. 물어본다 한들 알려줄 리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뜬눈으로 이틀을 꼬박 새웠다.

.

.

그 후로, 김치볶음밥과 에그 베네딕트를 못 먹게 된 게 아니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대답은 아니다, 이다. 선정이가 그렇게 떠나고 난 이후에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내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찾아 먹는다. 체중이 얼마가 불든 신경쓰지 않고 말이다.

혼자 단골 브런치 카페를 찾아가 2인분의 에그 베네딕트를 보기좋게 해치운다.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은 날에는, 근처에서 파는 식당을 찾아가거나 집에서 내 식대로 볶은 달걀과 고추참치를 풀어 볶은 김치 볶음밥을 프라이팬 그득히 만들어 먹는다. 선정이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그 볶음밥을 결국 해 주지 못했다는 쓰라림을 뒤로 한 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선정이가 음독자살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짧은 유서와 그간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새로 사귄 연인의 가정을 파탄내는 데 일조했다는 그 사실이 그녀에게 적지 않은 죄책감으로 작용했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역시나 나를 포함한 주변의 우려대로, 유부남 에그 베네딕트는 보기에만 그럴싸한 시한폭탄이었다. 사업 관계로 수억에 달하는 액수의 빚을 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게 죽을 건 없었잖아, 라고 외치는 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어차피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오늘도 태연하게 에그 베네딕트를 떠올리며 잘게 다진 신김치를 볶아 김치볶음밥을 만들 궁리를 한다.

하지만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동안, 절대로 빌리 홀리데이나  펫 메스니를 듣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랬다가는 영락없이 그날의 그 만찬, 나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게 만드는 그날의 그 만찬이 다시금 내 앞에 펼쳐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리 넓지 않았던 내 세계의 반경이, 한 사람의 부재로 인해 태평양의 면적에 준하는 공간을 잃고 말았다는 뼈아픈 사실을 애써 되새길 필요는 없다. 허기진 뱃속에  채워넣어야 할 것은 눈물도 회한도 아니다.

김치볶음밥과 에그 베네딕트.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실체없는 그리움으로 허기진 나의 뱃속을 채워줄 유일한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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