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savina의 인형이야기
소다를 위해 돌프리마켓에서 사온 글립제 가발은 완벽한 내 취향저격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바로 소다와 가을이 어느 쪽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한술 더 떠서, 가발을 씌우는 것 자체도 몹시 힘들었다. 낑낑대면서 결국 가을이에게 씌우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모헤어 가발은 다루기가 힘들고 손으로 여러번 매만져줘야 원하는 스타일이 나온다. 바로 이와 같은 과정의 번거로움 때문에, 가을이를 끝으로 구체관절을 들이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구체관절을 치장하는 데 필요한 그 번거로운 작업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스컬피를 손으로 조물딱조물딱 비벼 아이홀에 안구를 고정시키는 작업, 실리콘 헤드캡을 씌우고 가발을 이마에 대고 꽉 잡은 후 뒤통수를 잡아당겨 씌우는 작업. 헤드분리와 개인샵에 메이크업 의뢰하기. 암실 보관하기 등등.
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고 있는 일에 넌더리를 내고, 내일은 꼭 탈출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우리는어느 새 길들여져 가고 익숙해져 간다. 그러다 마침내 저항하는 법을 잊거나 혹은 포기하거나.
구체관절인형을 능숙하게 다루게 된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살면서 어느 새 습득해버린 구태의연함에 익숙해지는 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뜨거운 커피와도 같아서, 무신경하게 마시다가 자칫하면 영혼을 데이는 수가 있다.
다행히 글립제 가발은 이제 제법 손때를 타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가을이의 머리카락이 되었다.
저런 보헤미안적 자유분방이 가득한 헤어스타일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역시, 당분간 구체관절인형의 증식은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관리가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이럴 때면 꼭 삶이 익숙함에 지배당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