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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Oct 24. 2020

1. 찻잔 속의 남녀 (독후감)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사실 없는 자서전"이라 불리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에는 찻잔의 몸통에 그려진 두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가 언급된다. 일찌기 페소아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고 소위 "페소아교 신도"라고까지 불리는 사람들도 알게 되었지만 내가 페소아의 팬이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까 나를 그의 팬으로 만든 건 다름아닌 그의 이런 기발한 상상력인 셈이다.

가공의 인물들이라는 점에서는 찻잔 속 남녀나 소설 속 남녀나 다를 게 있을까마는. 실제로 컵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어쨌든 존경해야 할 사람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비꼬는 뜻으로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곤란하지 않겠나 싶다. 내 모든 걸 내줄 각오를 하지 않고 섣불리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을 사랑하지 마시기를. 뛰어난 작가의 연인 노릇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싶다. 그나저나 페소아가 구현한 상상 속 두 남녀의 대화는 의외로 꽤 현실적인 구석도 있는 데다가, 심지어는 자신들이 허구의 인물, 즉 살아 있는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까지도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는 아야기를 나누는 남녀가 그려진 찻잔이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나의 찻잔 속 남녀가 나누는 대화는 페소아의 찻잔 속 남녀가 나누는 대화 내용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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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의 하녀가 잔을 깨뜨리면서 두 남녀가 사라졌을 때 페소아는 이것을 두고 "하녀의 손을 빌린 그들의 동반자살"로 해석했다. 세상에!!!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을 어떻게 맹목적으로 찬양하지 않는 게 가능하지?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어쩔 수 없는 "페소아교 신도"가 된 계기는 다름아닌 찻잔에 새겨진 남녀의 고뇌였다는 것이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읽어보시도록.


*찻잔 표면에 그려진 남녀를 뭐라고 묘사해야 하나 싶어 잠깐 고민했다. 찻잔에 그려진? 새겨진? 찻잔 안의 남녀? 찻잔 위의 남녀? 결국 찻잔 속의 남녀라고 제목을 붙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어쨌든 그들은 깨져서 흩어지기 전까지 찻잔을 벗어날 수 없는 신세였고, 말하자면 찻잔 속에서만 살아갈 운명이었다. 하녀의 손을 빌려서라도 자살해야 했다면 찻잔에 갇힌 일상이 어지간히 지겨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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