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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은 투덜거리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젠장 안 와도 될 걸 괜히 왔잖아.”
그러나 이런 불평은 화가 나서 괜히 잡는 트집에 불과했다. 왜 자신이 화가 났는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사실 화가 날 이유가 없었다. 강인의 ‘애도’는 명백하게 성공했고, 아마 병원에 실려간 칠득이도 내일쯤은 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온통 그 얘기만 하고 있었으나, dice el의 공연이 끝난 지금 사람들은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노래 원래 칠득이가 부르는 거 아냐?”
“아니긴요, 맞아요. 내가 K클럽에서 들었다니까요.”
“그런데 아까 그 노래 부른 그 친구 대단하던데. 강인이라고 했나? 칠득이보다 훨씬 멋있던데. 그 노래 부를 때 나 거의 울 뻔했다구. 제목이 뭐였더라. 좀 특이했는데.”
이제 ‘애도’는 더 이상 베일에 가리워져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칠득이가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한 지금 그 책임은 전적으로 강인에게 있다. 어차피 ‘애도’에 저주가 내렸느니 어쩌니 하는 말은 형제가 다 안 믿었지만, 과연 강인이 칠득이와의 내기에서 이대로 승리했는지 어떤지는 두고봐야 할 노릇. 그러나 강윤은 강인의 ‘애도’를 듣기 위해 공연장에 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민효를 찾고 있었다.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드넓은 공연장에서 핸드폰도 없이 사람 하나를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를 강윤이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미련한 짓을 약간은 즐기면서까지 하고 있었다. 이윽고 밤이 이슥해지고 야외 무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흩어지고 몇몇 사람들만이 드문드문 황량한 노천 강당을 거닐게 되자 그는 공연장을 떠났다.
노천강당에서 도서관을 지나는 길에 나무와 잔디로 장식된 화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주위로 몇 개의 크고 윗부분이 평평한 고인돌같은 바위를 놓아 벤치를 대신하고 있었다. 생각 없이 그 중 하나에 걸터 앉은 강윤은 담배를 피워불었다. 라이터를 주머니에 넣으며 그는 생각했다. 강인에게 갔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알아서 끝까지 다 보고 집에 잘 갔거나. 어쨌든 어린애는 아니니까. 민효에 대해 어린애가 아니라는 말을 그 자신에게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해야 하는 이유는 그녀가 스무 살이 넘었음에도 아직 어린애인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가냘픈 그림자가 강윤 쪽으로 오르막길을 따라 걸어올라왔다. 그가 앉아 있는 곳은나지막한 오르막길과 역시 나지막한 내리막길 사이의 평탄한 길이었으므로 그림자가 꼭대기를 다 올라왔을 때에야 그것이 여자의 그림자임을 알 수 있었다. 언뜻 보니 다리를 저는 것 같았다. 단발 머리에 할랑한 후드 티. 단이 넓고 얇은 여름용 청바지. 강윤은 놀라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는 민효였다.
“강윤?”
그녀는 최대한 빨리 걸어 강윤에게 다가가려 했으나 그 전에 강윤이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래? 다리 다친 거야?”
“아니야. 웃지 마. 글쎄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허우적대다가 돌 의자에 무릎을 박았지 뭐야. 아마 멍 들었을 거야. 지금은 어두워서 안 보이지만.......”
돌 의자에 무릎을 박았을 때 그녀는 그야말로 ‘눈 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아팠다. 똑바로 걷고 싶었으나 무릎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은데다가 무릎을 펴자니 가뜩이나 오래 서 있던 다리가 쑤셔서 어쩔 수 없이 절게 되었다. 강윤은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녀가 다리를 절고 있는 모습을 본 순간 화가 더럭 났지만, 곧이어 쳐드는 안쓰러움이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많이 아파?”
민효는 뭔가 미심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한 듯 한 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별로. 그런데 웬일이야? 너도 강인 보러 왔었어?”
“짜식. 혹시라도 쫄아서 노래도 못 부르고 기절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기우였어. 하긴 무대 좀 커졌다고 그 놈이 쫄 이유가 없지만. ”
강윤은 민효의 오른쪽 다리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많이 아프면 업어 줄게.”
민효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웃었다.
“어머, 웬일이야. 아프냐고 묻질 않나, 업어 주겠다질 않나......칠칠치 못하다고 화내지나 않으면 다행인 줄 알았는데. 나 꽤 무겁다구?”
“농담 아니야.”
“나도 농담 아니야. 사실은 아까부터 저 길 올라오면서 생각한 건데........”
민효는 지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리 절면서 걸으니까 의외로 편하더라. 꼭 원래부터 절음발이였던 것처럼......”
강윤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기 때문에 민효는 겸연쩍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비록 밤이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지만 화가 났다는 것 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민효는 아픈 것을 참고 오른쪽 다리를 쭉 펴 보였다.
두 사람은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후 강윤이 입을 열었다.
“강인 노래 듣다가 갑자기 생각난 건데......너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한 3년쯤 전인가.......우리 고등학생일 때, 학교 갔다 오는 길에 길거리에 나란히 앉아서 울었던 거 혹시 기억해?”
“너하고 내가? ”
“그래. 여름이었는데, 무지하게 더워서 길 가다가 아이스크림 사먹었잖아. 내가 중학교 때 좋아했던 여선생님이 돌아가셔서 그 얘기를 하면서 울었더니 너도 울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걸음을 멈추었다. 민효는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잘 알수 없었으나 강윤은 뭔가를 기대하는 시선을 그녀의 눈에 내리꽂았다.
“그게 너였어?”
“무슨 소리야? 그게 너였냐니?”
“어?......아, 아니야. 그래, 기억나.”
민효는 다시 발을 절기 시작했다. 그 무더운 여름날, 내 옆에 앉아서 울었던 애가 강인이 아니었나? 그녀는 차근차근 기억을 되새기려고 애를 썼다. 아닌게아니라 강인이었다는 확실한 장담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옆에 앉았던 그 애가 누구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는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고는 해도, 불과 3년 전 일인데......
인간의 기억이라는 게 이렇게 믿을 게 못 되는구나. 하다못해 나 자신의 기억까지도. 기억력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자부했던 나 자신의 기억까지도. 강윤도 그 때의 기억을 갖고 있으니 적어도 둘 중 하나는 틀린 기억을 갖고 있는 셈이다. 강윤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때 네가 뭐라고 그랬는지도 기억나?”
민효는 잠자코 있었다. 무슨 말을 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나거니와 강윤의 보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기억을 듣고 싶었다.
“애도한다고 했어.”
갑자기 혈관 구석구석에서 싸늘한 기운이 돋는 것을 민효는 느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어 걸음 앞으로 나가서 강윤에게로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고 섰다.
“진짜야? 내가 그런 말을 했어? ‘애도한다’고?”
“그래, 아직 목소리도 생생한 걸. ‘나는 얼굴도 모르는 선생님이지만 진심으로 애도해.’라고 했어. 그리고 이런 말을 했지. ‘하지만 정말로 슬픈 건 죽음이 아니라 남은 사람들의 고통이야’라고.”
민효로서는 생소한 말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억지로 기억을 더듬고 싶지 않았다. 이제서야 민효는 자신이 왜 강윤과 똑같은 기억을 비슷한 시점에 떠올렸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무의식 속에는 ‘애도’라는 말이, 그 때의 기억이 매장된 채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상되고 왜곡된 기억. 멀리 버스 정류장의 흐릿한 불빛이 보였다. 민효는 다리를 절룩거리며 뛰었다.
“뭐하는 거야? 뛰지 마!”
그녀는 몇 걸음 뛰지도 못하고 강윤에게 붙들렸다.
“너 정말 나한테 업히고 싶어?”
“왜 자꾸 그래? 못 걷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잖아!”
얼어붙은 강윤의 얼굴을 뒤로 하고 민효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강윤은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자기 쪽으로 돌려 꽉 끌어안았다. 민효는 강윤의 갑작스런 행동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 자신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너무 꽉 끌어안겨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건 네가 아니야. 강인이었어. 내 기억은 틀리지 않아.”
있는 힘을 다해 강윤의 팔을 뿌리치며 민효가 소리쳤다. 순간 강윤의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험악하게 변했기 때문에 민효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그와 강인이 공유하고 있는 잔인하고 난폭한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그런 표정은 이내 사라졌다. 강윤은 가볍고 쓸쓸한 미소를 띠었다.
“네 말이 맞아. 그 얘기는 강인이 내게 해 준 얘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