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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은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사람들은 온통 강인에 대해 떠들어댔고, 그라이아이 멤버들 역시 강인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맹장 수술을 받은 칠득이는 입원실에서 M대학 공연에 대한 얘기를 진승욱으로부터 전해 듣고 쓴웃음을 지었다. 유명 메이저 레코드사 직원으로부터 계약 요청도 받았지만 거절했다. dice el이라는 이름의 주가 역시 확실하게 올랐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강인은 씁쓸한 표정을 못내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진호와 헌수 그리고 용환이는 칠득이가 맹장염 때문에 같이 무대 서지 못함으로서 정면 대결을 펼치지 못한 데 대한 애석함 혹은 분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들의 추측은 정확했지만, 강인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 강인은 민효에게 화를 냈다.
“왜 대기실로 안 오고 그냥 집으로 간 거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
“어머, 오라는 말 안했잖아.”
“오라는 말 안해도 찾아올 줄 알았지 이 멍청아. 됐으니까 저리 가. 다시는 공연 때 오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오지 말라구.”
강인이 단단히 화가 난 것은 분명했지만 민효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그녀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꺼내 강인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팬레터.”
종이를 펴서 훑어보던 강인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이게 뭐야?”
“말했잖아. 팬레터야.”
“이게 무슨 팬레터야? 이건 ‘애도’ 뒷부분 영어 가사잖아. 이걸 해석했어?”
“내가 한 게 아니라 영시 책에 실려 있던 거야.”
“이게 영시라고? ”
강인은 ‘애도’를 그렇게 수없이 부르면서도 영어로 된 짧은 나레이션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간주 중간에 나오는 나레이션이라 빼먹어도 무방한 나레이션이었다. 그 나레이션은 뜻밖에도 영국의 오래된 시였다.
그로부터 두 주일 후 칠득이가 퇴원했다. 강인은 칠득이에게 ‘The sick rose'에 대해 이야기했다. 칠득이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말 안했어요?”
“첫번째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게 시라는 걸 모른다고 문제될 일이 없기 때문이야. ”
칠득이는 홀쪽해진 얼굴로 히죽 웃어 보였다.
“어때, 승리자님? 무대에 서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애창곡을 부른 기분이?”
사실 강인은 칠득이의 빈정거림은 질색이었다. 그러나 이 질문은 비록 비아냥거리는 투이긴 하지만 대답을 요구하고 한 질문이었다. 강인은 그제서야 생각한 것을 털어놓을 기회가 생겼다.
“이상해. ”
“이상하다고?”
“내가 무대에서 그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모르겠어. 워낙 정신이 없었거든. 아마 형 없이 불러야 한다는 데 화가 나서 그랬겠지. 그건 정당한 게임이 아니었어.”
“알아.”
“이상한 건 그 뒤부터야. 처음에는 한시라도 빨리 형하고 같이 ‘애도’를 불러서 확실하게 끝장을 봐야겠다고 이를 갈았어. 그런데 그게 아니야. 그러고 싶지가 않아. 뭔가 허전하고, 이젠 다 끝났다는 기분이 들고.......사실은, 그 교향곡 ‘애도’가 더 이상 아름답게 느껴지지가 않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강인은 팔에 얼굴을 묻었다. 칠득이는 차분하게 강인의 대답을 음미하며 그의 등을 쓸어 주었다.
“그 시를 너한테 알려준 사람은 민효지?”
“응.”
“그 애 보고 싶은데, 볼 수 있을까?”
dice el과 그라이아이, 모내기 밴드와 칼국수 밴드 등 친하게 지내는 그룹들이 V클럽 맞은편 지하 바에 모였을 때 강인은 민효를 불렀다. 그녀는 M대학 축제 때 대기실에 들르지 않았다고 강인이 화를 낸 것도 있고 해서 싫든 좋든 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 강윤이 나오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민효가 강윤과 함께 지하 바로 들어섰을 때 일동은 강윤을 환대하느라 잠깐이지만 민효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 덕에 그녀는 열 명도 넘는 남자들의 짓궂은 농담과 장난을 피할 수 있었다. 민효와 같은 탁자에 앉은 칠득이는 그녀를 유심히 살폈다. 남의 시선에 민감한 민효는 거북한 나머지 눈 앞에 놓인 맥주컵만 으스러져라 움켜쥐고 있었다.
“THE SICK ROSE........좋아해?”
오랜 침묵을 깨고 칠득이가 말을 건넸다.
“네, 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말이야. 네가 그걸 강인에게 알려줬지? 그 시 좋아하냐구.”
“한 구절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민효가 대답했다.
“어떤 구절?”
“그의 어두운 감춰진 사랑이.......”
“마지막 구절? 그럴 줄 알았지. 여하간 여자들은 감상적인 걸 너무 좋아해.”
칠득이는 피우던 담배를 재떨이에 내던지고 민효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하지만 말이야......생각해 보면 또 심오한 의미가 있을 수도 있지. 이를테면 연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시든 장미를 그녀의 시신에 뿌린다던가 하는......밤에 날아 다니는 벌레는 뭘 의미할까.......폭풍우는?”
“사람이에요.”
칠득이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민효를 쳐다보았다.
“사람?”
“콘서트를 보러 온 관객요. 폭풍우 속에서 아우성치는 벌레들이에요. 떼지어 있으니까 보이지 않고 팔을 흔들면서 아우성치는 거죠. ”
칠득이가 별안간 소리 높이 웃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대단한데. 그럼 폭풍우는 음악이고 우린 장미겠군. 그럼 진홍빛 잠자리는?”
“그건......장미가 폭풍우 속에서 벌레들에게 강간당하면서 느끼는 오르가즘이에요.”
“말 되는군. 그럼 그의 어두운 감춰진 사랑은 뭐야?”
“그게......”
민효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건 모르겠어요.”
때마침 술이 한 바퀴 돌았기 때문에 이 대화는 여기서 끊어졌다. 곧이어 화제는 쥬이의 사망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쥬이가 ‘애도’를 녹음하고 있었다는 게 진짜야?”
“모르겠어. 소문에는 그래.”
“그럼 쥬이도 ‘애도’ 때문에 죽은 걸까? ”
때마침 다른 탁자에 있던 진호가 칠득이에게로 건너왔다. 그들은 그들대로 칠득이의 이번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형, 이번에 ‘애도’ 때문에 죽을 고비를 넘긴 거 아니냐고 저 녀석들이 떠드는데요.”
“그럴지도 모르지.”
“젠장 그런 얘기 하지 마. 무섭잖아.”
“왜 네가 무서워하냐? 무서워할 놈은 여기 있는데.”
진호가 손으로 강인의 어깨를 툭 때리자 모두 일제히 웃었다.
“내가 이 ‘애도’의 마수에 걸린 새 인물과 인터뷰를 했는데 말이야.”
칠득이가 강인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애도’에 싫증이 났다는군. 어찌 생각하시나 제군들?”
대답할 말이 없어서인지 칠득이의 말을 듣고 놀라서인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이 때 민효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반시’라는 거 아시는 분 있어요?”
모두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칠득이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반지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아니, ‘반시’ 말이에요. 영국 민간 설화에 나오는 요정이에요. 집안에 죽을 사람이 생기면 통곡 소리로 죽음을 예고해 준대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기 때문에 민효는 망설이며 말을 이었다.
“모든 언어에는 힘이 있어요. 뜻이 담겨 있으니까 힘이 있죠. 어쩌면 음악이라는 게, 그러니 까 리듬과 가락의 조화가 언어의 숨겨진 힘을 발휘하도록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반시’가 죽음을 미리 애도하는 것처럼. ‘애도’ 교향곡이라는 그 노래도 사실은 죽음을 부르는 게 아니라 죽음을 미리 예견하는 건지도 모르죠. ”
갑자기 강인이 술잔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민효는 놀라 말을 그쳤다. 칠득이가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저 녀석이 널 왜 사랑하는지 좀 알 것 같군.”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니야.”
강윤은 화가 난 얼굴로 칠득이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칠득이 형은 예외였어. 아직도 안 죽고 이렇게 건장하게 살아있잖아.”
“예외는 없어. 내일 죽든 50년 후에 죽든 안 죽는 사람은 없다구.”
“그럼 강인은 어떨까?”
“강인은 안 죽어요.”
민효가 자신있게 대답했다.
“어째서?”
“바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