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Dec 11. 2020

7. 불행을 상쇄하는 돈의 힘.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요즘 들어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는데, 그 중 중요한 한 가지 생각이 바로 돈의 위력이라는 것에 관해서였다. 예컨대 이런 것,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라고 하면 우리는 그에게 닥친 비극적 불행 앞에서 숙연해지는데, 잠시 후 그가 막대한 천문학적 유산을 친척으로부터 상속받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 순간 그에게 닥쳤던 불행이 돈으로 보상되는 것도 아닌데도 그의 불행이 왜 그런지 모르게 그 비극적인 아우라를 잃는다. 최근에 이런 내용의 책을 읽으며 실제로 그런 생각을 했고, 그걸 계기로 비논리적이지만 묘하게도 돈에 불행을 상쇄하는 힘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나는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지고 지금도 유명한 그 책을 읽게 된다. 다름아닌 알랭 드 보통의 <불안>말이다.

평등의 허구성은 이미 일찌감치 제기되었고

어제 저녁 가족들과 화목하게 배두드리며 삼겹살을 실컷 구워먹고 나서는, "아 맞다 A 걔는 오늘 아웃백 간다고 했는데"하고 잊었던 사실을 떠올리고는 상대적 박탈감을 삼키며 왠지 모르게 쓴 입맛을 다신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도 될 것 같다. 요컨대 인권적인 부분에서의 평등이라는 교과서적 진실 앞에서, "정말 평등을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과연 인간이 자신있게 예라고 답할 건가. 서울대를 나온 내가 서울역 앞의 노숙자와 동등하고 평등한 존재여야 하지 않냐고 물으면 과연 받아들이겠노라고 답할 것인가. 서울대를 들어가기 위해 내가 치른 희생과 개고생과 노력은 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데 하는 질문부터 나오지 않을까?

이아고가 시도한 가스라이팅의 희생자 오셀로
선정성 그득한 가십의 희생양이 된 문학작품 속 주인공들. 마담 보바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플로베르의 소설이다.

비극, 그러니까 비극으로 끝나는 문학 작품을 왜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어진다.

우리는 언제든 파멸할 수 있는 존재다. 그 사실이 우리를 삶 앞에서 겸허해지게 한다. 누가 강제로 무릎을 꿇려서가 아니라

사실 책 자체는, 우리가 어느 나이쯤 되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관과 경험으로 웬만큼 알게 되는 것"들을 "좀 있어 보이게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쨌든, 삶에는 복습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가치에 의문을 품는 사람들(누가 물어본 것도 아닌데), 특히 나 같은 사람들이라면 끊임없이 매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정신 승리" 뒤에 숨은 "추레한 자기 최면"의 본질이 뭔지 복습해야 한다. 아니까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는 게 아니다. 알지만 복습하는 거다.

바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축약된 핵심 정리를 복습하자면 이렇다.

뼈때리는 팩트 앞에서 줄을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삼시세끼 알뜰하게 잘 챙겨먹으면서도 나는 가난하다고 말할 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를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놓았다. 진심 "팔아치워질 자격이 있는 책"으로 인정해야겠다.

그러니까, 모든 불행을 이겨낸 사람의 존엄성이 그가 가진 돈의 위력 앞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형태로 훼손되는 걸 나는 몸소 느낀 바가 있다. 아무리 간접경험이라고는 해도,(그가 부자였음을 안 순간 그가 겪은 모든 불행과 고독이 순식간에 무가치하게 여겨졌다) 물론 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건 돈 그 자체이지 돈으로 환산가능한 그 어떤 유무형의 가치가 아니다. 아니 돈으로 환산이 불가능한 모든 가치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별 의미가 없다. 이 사실을 일찌감치 깨닫는 족속들 중 도덕성을 상실한 족속들은 쉽게 돈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살인을 포함한 강력범죄를 저지르거나 사기를 친다. 목적은 하나, 덜 고결한 목표도 아니고 더 고결한 목표도 아닌 "돈"이다.

뼈때리는 팩트 2 그러나 다행히 이 시대는 포스트능력주의 시대다. 요즘 같은 때는 개천에서 난 용도 도로 개천으로 들어간다더라

계급 사다리가 사실상 끊어진 시점에서 아직도 이 시대를 능력주의 사회라고 말할 건가. 인맥과 부모 빽과 낙하산이 활보하는 이 시대에? 그러니 우리는 이미 앞서 정의된 가난에 더해 수치까지 떠안을 필요는 없는 거다. 다들 열심히 살아왔다.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다.



책을 중간 넘어 읽다가 저 밑줄 친 팩트에 빡이 쳐서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지껄이고 말았다. 나를 이렇게 흥분하게 만든 단 한 가지 분노의 핵심은 1)그래도 돈 이상의 가치를 중히 여기라고 가르침 받은 세대에 속하는 내가 2) 돈 이상의 가치들이 그냥 쓰레기 취급받는 세상에서 살자니 3)그냥 울화통이 터진다는 것이다. 이런 울화통에 빡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텐데, 어차피 유명한 책이기도 하겠다 이 책 <불안> 정도는 읽고 "나 그 책 읽었다"고 자랑해서 손해 볼 거 없는 책이기는 하겠다. 자본주의 시대의 가성비를 따졌을 때 체면치레에 쓰이는 비용으로는 꽤 헐값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의견 있으신 분?

매거진의 이전글 6. 온전한 나로 보낸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