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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5. 2021

20. 음악의 매력(JAZZ 99 일부 발췌)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많은 사람들이 음악의 매력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저마다 자신이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를 거창하게 늘어놓곤 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음악이 갖는 가장 묘한 매력은 어떤 음악이든 한 시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단 하나의 곡이라 해도 그 곡이 한 시대, 길고 짧음이 중요하지 않은 어떤 시대를 고스란히 담을 수 있다. 단 하루를 담을 수도 있고, 일 년을 담을 수도 있으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을 담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음악이 시대를 담을 뿐 아니라 나아가서 시대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림이나 소설이 그러하듯, 음악은 시작과 끝을 가진, 게다가 혀끝으로 느낄 수 있는 맛을 지닌 지난 시대의 어떤 시간들로 변모하기도 한다. 

 내 경우에는 이렇다. 중학교 때 그렇게도 즐겨 들었으나 그 이후로는 전혀 듣지 않았던 머라이어 캐리의 팝송들을 대학 졸업 후 우연히 들었을 때, 그 음악을 들으며 읽었던 번역판 <제인 에어>의 표지와 책 속의 구절들, 그리고 그 당시 어머니께서 자주 해주셨던 감자 수제비의 향긋한 내음마저 그 음악 속에서 되살아나 과거를 한순간이나마 현재로 돌려놓곤 했다. 어느 비 오는 날 새벽녘에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들었던 스팅의 <잉글리시 맨 인 뉴욕>을 들을 때면 그날의 질척한 습기와 승객들의 몸이 만들어내는 훈훈한 열기가 되살아났으며, 대학시절 친구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더 보이 이즈 마인>을 오랜 시간 후 다시 들었을 때 나는 어느 새 그 나이로 되돌아가 그 친구들과 함께 영어 시험 문제에 열중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가장 쉬운 문제를 틀리고 시험을 엉망으로 치고 말았을 때의 그 속상함마저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애인을 사귀었을 무렵 지겹게도 들었던 <필 미 인>은 또 어땠던가. 앞도 뒤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그 때의 그 맹목적인 설렘, 충만한 마음들이 그대로 되살아났다가는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나에게는 나의 역사를 대표하는 곡들이 한 시대마다 하나씩, 혹은 두셋씩 그 시대가 머물렀던 자리를 꿰차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계양동에서 인타이와 함께 했던 시대를 꿰차고 있는 것은 과연 어떤 음악이었을까. 누가 불렀던 어떤 음악이었을까. 그게 생각나지 않는다. 인타이와 함께 했던 시대에는 음악이 없다.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인타이로 인해 마음이 상했을 때 가끔 들었던 제프 버클리의 <이터널 라이프>가 간혹 그때의 그 아픔을 되살려주곤 한다. 그러나 내가 되살리고픈 것은 아픔이나 착잡함의 편린이 아니다. 인타이와 함께 했던 시절, 재즈 99을 바라보며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던 그 시절을 그대로 되살려주는 음악은 없다. 나는 그 시절을 담을 음악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그 시절은, 나에게는 영영 잃어버린 시절로 남고 말았다.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이 흐른 후의 시점으로 서둘러 나아가 지금을 회상해 보면,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인타이도, 그에 대한 사랑도, 또 그에 대한 경멸조차도 아니다. 내가 간직하고 있는 것은 그저 향수다. 그 시절에 대한 향수, 그 시절의 고즈넉한 외로움, 불에 타들어갈 듯이 타올랐던 그 저녁노을 같은 쓸쓸함에 대한 향수 말이다. 가끔 그 쓸쓸함이 전해주던 밤거리의 재즈 99의 네온사인과, 그 네온사인이 나에게 전했던 뻐근하고 몽환적인 통증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 시절을, 그 통증을 녹음한 음악이 없었다.         

  흔히 ‘시대를 풍미한다’는 표현을 쓰지만, 음악은 한 시대를 풍미(風靡)하지 않는다. 음악은 한 시대가 가졌던 고유의 풍미(豐味)를 되살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재즈 99의 시대의 풍미를 살려주는 음악만은 나의 모든 시대, 나의 모든 역사를 가로지르는 철로의 마디에서 빠져 있다. 마치 잃어버린 몇 개의 조각을 빼고 맞춘 낡은 직소 퍼즐의 구멍 난 그림처럼 말이다. 



*이번 에세이는 중편연재 소설 JAZZ 99의 NO.15 파트를 통으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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