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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8. 2021

JAZZ 99 -8

재즈 나인티나인

8. 




  그것이 바로 인타이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는 내 생각보다 훨씬 나이가 적었다. 차라리 어렸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똑똑히 마주보았을 때, 그의 목소리에 비해 외모는 솔직히 실망스러웠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인타이가 추남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내가 은연중에 머릿속으로 상상했던 그 모습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달랐던 것이다. 

  본래는 스포츠로 짧게 깎았을 법한 머리는 이발이 필요할 정도로 제법 자라 있었다. 머리를 자르면 가파른 뒤통수가 드러날 터였다. 피부 역시 본래는 깨끗했을 법한데 뺨 주위의 넓은 모공이 두드러지는 데다 햇빛과 바람에 거칠어진 것처럼 보였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타고난 생김새가 멀끔한 사람이 일이년쯤 노가다를 하면 저런 식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은 그런 풍모였다. 눈은 작은 편이었으나 눈매가 부리부리했고 입술은 전체적인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게 두터웠는데 그 때문인지 고집이 있어 보이고 심지어는 거만해 보이는 인상마저 풍겼다. 평균 정도의 중량감을 주는 코 아래로 슬쩍 보이는 콧구멍이 다소 넓어 보였다. 요컨대 선량하거나 소탈해 보이는 느낌의 청년은 아니었다. 

  “내가 오토바이에 치인 것 같은데, 댁이 날 이리로 데리고 왔나요?”

  그는 담배를 문 채로 히죽 웃고는 입을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오토바이에 치였으면, 그렇게 일어설 수나 있었겠어요? 자전거였어요. 하기야 전속력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자전거와 박았으니 실신할 법도 하지만.”

  “어쨌든 고마워요.”

  진심으로 고맙다기보다는 꼭 해야 할 말 같아서 했는데, 그는 그다지 동요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병원에 데려가야 했는데, 돈이 없거든요. 그건 그렇고, 배가 고픈데 라면이 몇 개나 남았는지 모르겠네.”

  그는 ‘영차’ 소리까지 내며 일어섰다. 꽤나 피곤한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 듯싶었다. 나는 한동안 멀거니 앉아 그가 문 바깥의 싱크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 라면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꽤 널찍한 찻쟁반 위에 담은 라면 냄비를 가지고 들어왔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저절로 침이 넘어갔다. 

  그가 수저를 내밀었다.

  나는 라면을 먹을 때, 항상 국물부터 한 숟갈을 떠먹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요리이든 간에 국물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려서부터 미각을 그렇게 들여서 그런지, 스스로도 잘 알면서도 늘 음식의 간을 싱겁게 맞추는 버릇이 들어 있었다. 짜게 하는 것보다 맛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싱겁게 먹었던 것이다. 라면을 끓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라면이 간신히 잠길 만큼 물을 부어 진한 국물을 만드는 주위 사람들과 달리 나는 라면이 완전히 잠기고도 남을 만큼 흥건하게 물을 부어 국물을 끓이곤 했다. 그리고는 그 국물을 다 먹었다. 라면을 남길지언정 국물을 남기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그런데 그가 끓인 라면은, 말하자면 라면 요리에 있어서의 절대적인 황금비율을 그대로 맞춰 조리한 라면이었다. 국물을 입에 떠 넣은 순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스프와 물의 비율을 정확하게 맞추어 더 이상 불가능할 만큼 맛있게 끓여진 국물이었다. 지금까지 그토록 정확한 농도와 맛으로 요리된 국물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면발 역시 너무 꼬들꼬들하거나 퍼지지 않은, 정확함의 정점 그대로의 쫄깃한 면발이었다. 나는 정신없이 라면을 먹어댔다. 냄비는 순식간에 비었다. 순식간에 라면을 해치운 내 식욕에 대해 어이없었을 법도 하건만 그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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