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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Jul 05. 2021

JAZZ 99 -7

재즈 나인티나인

7.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내 눈에 띄인 것은 내 방의 얼룩덜룩한 쥐오줌 자국과 똑같은 종류의 자국으로 얼룩진 낡은 벽지가 발린 천장이었다. 그 천장 한가운데 짧은 막대 모양의 형광등 하나가 갓을 입히지 않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을 켜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낮인 모양이었다. 

  허리 아래가 견딜 수 없을 만큼 얼얼하고 아팠다. 게다가 왼쪽 눈 밑이 극심한 통증으로 지끈거렸다. 정신을 차린 후에도 나는 아픔 때문에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만, 어느 작고 지저분한 방의 얄팍한 깔개 위에 내 몸이 두터운 겨울용 모포 하나를 덮은 채 누워 있음을 깨달았을 따름이었다. 

  한참을 누워 있노라니 허리의 통증이 다소 가셨다. 그러나 여전히 일어나기가 힘들었으므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내가 누워 있는 방의 모양새를 살펴보았다. 살풍경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만한 그 방에 있는 가구라고는 낡은 비키니 옷장과 몇 겹의 신문지 위에 놓인 기름때 묻은 버너, 푸른색 전기밥솥이 전부였다. 고개를 약간 들어 아래를 보니 내 발치에 식탁용 의자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의자의 등받이 위에 지저분한 남자의 옷가지 몇 개가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다. 

  이 방은 남자의 방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낡고 비루하고 지저분하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무엇보다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요소였지만, 어찌된 셈인지 그 반대로 그때까지 불안에 잠겨 있던 나를 안정시켰다. 나는 내가 무엇인가에 부딪쳐 쓰러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 누군가에 구조된 결과 내가 낯선 곳에 누워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길에 쓰러져 있는 여자를 구한 사람이라면,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리라. 나는 조용히 누워 나를 구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누워 있었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월남치마를 잘라 만든 듯한 조악한 천으로 만들어진 커튼이 달린 작은 창이 눈에 띄었다. 시계가 보이지 않아 몇 시인지 알 수 없었으나 날이 저물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빛이 일몰을 앞두고 마지막 발광(發狂)을 하고 있었다. 

  차츰 방 안의 모든 것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가 들어왔다. 그는 방으로 들어선 후에도 뭔가를 망설이는 듯 불도 켜지 않고 한동안을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뭔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럴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을 먼저 깨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차츰 아랫도리가 묵지근해지면서 방광이 차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일 수 있을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지만 이대로 오줌을 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몸을 왼쪽으로 약간 틀었다. 그러자 그는 놀란 듯 약간 물러서며 어둠 속에서 입을 열었다. 

  “깨어 있었군요.”

  지금까지 태어나서 그런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남자의 부드러운 저음이었지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은 음색을 지니고 있었다. 언젠가 어린 시절 집에서 딱 한 번 손수 끓여 먹었던 수프를 생각나게 했다. 부드럽고 따끈하고 고소하게 입 속을 휘감던 수프의 맛을 그의 목소리에서 느끼게 될 줄이야. 

  그러나 그러한 목소리로 만들어낸 문장을 발음하는 그의 발음과 억양은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그것은 틀림없이 외국인 출신이거나 혹은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의 발음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어느 외국어의 악센트가 그의 가냘프고 어눌한 발음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일까? 영어? 아니다. 일어? 아닌 듯하다. 더 이상은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떠듬거리며 나의 급한 용건을 전달했다.

  “저,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요…….”

  그제야 그는 일어나더니 불을 켰다. 전자기가 작동될 때 나는 미세한 굉음이 귀에 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음울한 형광등 빛이 눈 위로 내리쬐기 시작했다. 눈부심 때문에 잠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마침내 내가 허리와 다리의 통증을 참으며 일어나 앉자 그가 말했다. 

  “일어설 수 있겠어요? 화장실은 밖에 나가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있어요. 공동화장실이라 조금 지저분할지도 몰라요.”

  나는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며 힘겹게 그를 지나쳐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문을 열자 바깥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더럽고 작은 싱크대가 있는 그야말로 코딱지만 한 부엌이었다. 바닥에는 비닐 장판이 깔려 있었다. 싱크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었다.

  화장실이 얼마나 지저분했는지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는 없으리라. 볼일을 보고 돌아온 나는 싱크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러고 나니 안으로 들어가기가 다소 망설여졌지만, 그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나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내가 누워 있던 요 아래에 살짝 발을 집어넣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좀 더 누워 있을래요?”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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