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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Sep 23. 2021

21. 소설가의 눈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어쩌다 보니 생활전선에서 아주 미세한 글씨와 숫자를 확인해야 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문제는 막상 안경을 끼고 보니 글자가 잘 안 보여서 맨눈으로 봐야 했고 오히려 맨눈으로 보는 게 더 잘 보이는 것.

혹시 도수가 안 맞거나 시력이 더 나빠진 건가 해서 괜히 안경을 바꾸러 가 본 것이다.

소설가의 눈 2세트. 디자인은 다르지만 도수는 똑같다.

처음에는 당연히 안경을 낀 상태로 작은 글씨를 더 잘 보이게 해 달라고 했지만 막상 시력검사를 하신 안경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보통은 근시면 근시 원시면 원시 하나만 오시는 편인데 선생님의 경우는 특이하게 한쪽은 근시가 오고 한쪽은 원시가 와서요. 맨눈으로 보시는 게 더 잘 보이는 게 이상하실 게 없어요."

이어지는 설명에 따르면, 무리하게 근시인 쪽에 촛점을 맞춰 렌즈를 제작하면 양쪽의 균형이 깨지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완전히 반대인(왼쪽 근시 오른쪽 원시)양 눈의 밸런스를 맞춰놓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거였다. 일단은 수긍하고, 도수는 유지하되 오래 쓴 테만 바꾸는 선에서 합의를 보았다.


그러니까 나라는 사람의 눈은 한쪽 눈은 가까운 위치를 전담하고 다른 눈으로는 먼 위치를 전담한다는 거다.  즉, 그 말은 이런 뜻이기도 하다. 한쪽 눈으로는 미시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다른 한쪽으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계를 본다는 뜻.


맙소사, 이건 진짜 소설가의 눈이구나.

소설을 오래 쓰는 동안 진짜 소설가의 눈이 되어버렸네.

암, 양쪽의 균형을 맞추는 거 중요하지.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고 어느 쪽으로도 치우칠 수 없으며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되고, 다만 최대한 정직하게 바라보는 데만 최선을 다해야 하는 눈. 때로는 한없이 가까이, 때로는 한없이 멀리 볼 줄 알아야 하는, 진짜 소설가의 눈.


내 눈, 멋있게 늙었구나.

앞으로도 소중히 간수해야지. 생의 마지막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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