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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Oct 18. 2021

22. 목숨값이 아니다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한국일보에 실린 특성화고 출신 청년들의 사망을 다룬 칼럼
면피라는 단어는 한자를 이렇게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한자의 쓰임이 다르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죽은 애들을 대신해 그 일을 도맡아 했어야 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해놓지 않을 바엔 차라리 일 못한다고 내쫓았으면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애들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땐 이런저런 변명거리도 많겠다만 "아는 어른"의 비겁한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가 "모르는 아이들"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구명보트 탄 어른이 보트에 매달린 애를 밀쳐 바닷속으로 내던진 거다. 딱 그거다. 일단 내가 살아야 되니까.


자꾸 목숨값이라는 표현을 각종 기사에서 남발하는데, 몹시 기분이 엿같다. 그게  목숨값인가,  돈으로 사람을 살려낼  있어야 목숨값 아닌가. 굳이 배상금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면피금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 죽은 아이들을  방패삼아 화를 면하고 피한 댓가로 당연히 내놓아야 하는 돈이고,  그대로 면피, 낯짝 들고 다닐 염치를 상실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증거로 내놓아야  돈이다.

목숨값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발칙하게 사람 목숨에 가격이라니.


죽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갔을지가 궁금하다. 낳아준 부모를 원망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쪽인지는 나로서도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라 안 망하게 하려고 애 많이 낳는 시대는 "분명히 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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