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아마도 아니 분명히, 죽은 애들을 대신해 그 일을 도맡아 했어야 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일이 잘못하면 죽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해놓지 않을 바엔 차라리 일 못한다고 내쫓았으면 최소한 죽지는 않았을 애들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할 땐 이런저런 변명거리도 많겠다만 "아는 어른"의 비겁한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인 결과가 "모르는 아이들"의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에서, 구명보트 탄 어른이 보트에 매달린 애를 밀쳐 바닷속으로 내던진 거다. 딱 그거다. 일단 내가 살아야 되니까.
자꾸 목숨값이라는 표현을 각종 기사에서 남발하는데, 몹시 기분이 엿같다. 그게 왜 목숨값인가, 그 돈으로 사람을 살려낼 수 있어야 목숨값 아닌가. 굳이 배상금에 다른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면피금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한다. 죽은 아이들을 방패삼아 화를 면하고 피한 댓가로 당연히 내놓아야 하는 돈이고, 말 그대로 면피, 낯짝 들고 다닐 염치를 상실하지 않은 인간이라는 증거로 내놓아야 할 돈이다.
목숨값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발칙하게 사람 목숨에 가격이라니.
죽은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며 갔을지가 궁금하다. 낳아준 부모를 원망했을까. 아니면 그래도 낳아줘서 감사하다고 생각했을까. 어느 쪽인지는 나로서도 알 길이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라 안 망하게 하려고 애 많이 낳는 시대는 "분명히 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