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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lsavina Nov 03. 2021

23.  타인의 흔적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작년에 현타가 와서 책을 대거 처분했는데 그 가운데 실수로!!! 처분해선 안 될 책 두 권을 처분하고 말았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었다.

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그렇다 "읽기"가 아니라 "보기". reading 아니고 looking.


한숨이 나오지만 별 수 없이 다시 중고로 구한 이 책. 몇 장을 들추다 보니 전 주인이 친 밑줄들이 마구마구 나타난다. 타인의 흔적.

순간, 내가 처분한 책에 남겨뒀던 내 흔적들이 생각났다. 뒤져보니 사진도 남아 있다. 이것이 사진의 미덕이구나. 니 흔적 내 흔적 할것없이 모두모두 기록하고 증거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러나 흔적의 양상은 확연히 다르고 남겨놓은 페이지 또한 보시다시피 확연히 다르다.

왼쪽은 내가 갖고 있던 책에 남겨뒀던 내 낙서. 오른쪽은 새로 구한 책. 티없이 깨끗한 페이지.


그러나 다른 페이지에 남겨진 낯선 타인의 흔적


어쩌면 나의 흔적이 새겨진 책이 중고서점을 거쳐 낯선 누군가의 손에 들어가 있으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진다. 흔적을 사고파는 사람들. 타인의 흔적을 사기 위해 자신의 흔적을 파는 사람들. 서로의 흔적을 교환하는 사람들. 미지의 상대와의 연결고리를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재미없다 싶다가도 재미있는 게 세상이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도 있겠고.



*하지만 제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아닌 이상  소설로 쓴다 한들 뭐 그리 대단한 설득력있는 이야기가 나오겠나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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