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lsavina Dec 15. 2021

24. 자원봉사, 라는 명분 아래

칼마녀의 테마에세이

아파트 단지에서 도서관 책을 정리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지인의 말을 들으며 내심 걱정을 한 이유는 그 지인이 그리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인데.

도서관 일이라는 게 보기보다 중노동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나마 도와주시는 다른 자원봉사자 분들이 계시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어떤 의문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상점에 진열된 공산품 하나를 거저 가져가는 걸 용납하지 않고 악을 써가며 도둑이라고 소리소리 질러댄다. 하지만, 그들은 정작 사람의 노동력을 날로 먹으려 드는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도둑놈 취급을 하지 않는다.

자원봉사, 명분은 좋다.

하지만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행해지는 일들 가운데, 순수한 선의와 의지에 의해 행해지는 자원봉사가 그렇게 많을까?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들은 그들로부터 자원봉사를 부탁한 주체에 의해 부탁을 받고 자원봉사를 하는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 그 주체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얼마라도 정당한 댓가를 주고 일을 시키는 게 맞다. "자원봉사자"들의 일이 정말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원봉사"인지 아니면 "자원봉사라는 명분으로 포장한 합법적인 노동착취"인지 궁금해진다. 그 두 가지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쉬울 것 같지만 쉽지 않은 문제다.


적어도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 관한 예산에 로서의 공임비 정도는 포함되어 있어야 하지 않나. 책이야 기증받을  있다지만 노동력까지 기증을 받자 하면..... 노동의 강도를 아는 나로서는 그냥 착잡할 뿐이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해내기에는 터무니없는 강도의 노동이다. 아무리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하다 못해 관리비 감면의 혜택 정도는 주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세상만사 공짜라는 건 없다.

상징적 보상 따위는 단호하게 거부하고 싶다.

재능기부니 자원봉사니 하는 말로 노동착취를 아름답게 포장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23. 타인의 흔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