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오카야마

다카마쓰 여행기 1 - 오카야마

by Um sinal

일본어로 아메 온나 라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비 여자. 비를 부르는 여자라는 뜻이다. 딱히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한국은 분명 날씨가 좋았는데. 아침 첫 비행기를 타느라 면세품만 간신히 찾고 눈썹이 휘몰아치게 뛰어 간신히 앉은 비행기에서 헤드뱅잉하듯 자고 일어나보니 창밖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공항은 정말 작고 작았고, 특유의 각진 건물들은 여기가 일본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다카마쓰는 운항을 그리 많이 하는 지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에어서울을 타고도 30만원이 넘는 삯을 내야 했다. 잠시 가성비가 떠올랐지만 20년이 넘는 일본 여행사에 처음 와 보는 도시라는 데에 의미를 두기로 하고 내렸다. 역시 우동의 도시답게 온 사방이 우동이었다.

다카마쓰는 지도상 너무 끝자락에 있는 곳이고 관광지라고 하기엔 엄청나게 유명한 도시가 아니라서 대부분 오카야마에 숙소를 잡는 것 같았다. 오카야마와 다카마쓰로 인아웃을 다르게 예약하려다 비행기값에 식겁한 나는 그냥 일본 내에서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다행히 간단한 일본어가 가능하고 철도 시스템엔 익숙했기 때문에 한국의 어느 지방에 여행 가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카마쓰 공항에서 다카마쓰 역까지는 1,000엔이면 공항 리무진을 타고 이동 가능하다. 어차피 이동할 거 몰아치자 싶어 첫날 오카야마로 바로 이동하기로 하고 한국에서 미리 결제한 간사이 와이드 패스를 찾았다. 돌이켜보면 본전의 두 배는 뽑은 것 같다. 일본.. 패스.. 최고..


마린라이너를 타고 오카야마에 도착했지만 너무 일찍 비행기를 탔기 때문에 아직도 체크인 시간이 되지 않은 점.. 일본 여행을 갈 때는 토요코인을 주로 이용한다. 일단 로컬이라 그 어느 족굼한 도시에 가도 한 곳은 있다! 그리고 체인이라 어딜 가도 비슷한 컨디션의 방에서 묵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콩알만한 화장실과 콩알만한 방이 전부지만 같은 가구 같은 전등 같은 화장실이 낯선 곳에서는 의외의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싸다.

토요코인 회원은 3시에 체크인이 가능하지만 2시 30분에 도착해도 자비는 없다. 로비에 짐을 맡겨두고 가까운 성으로 향했다. 어지간한 도시에 가면 다 성이 있다. 내가 성이 있는 곳을 찾아 가는 건지 성이 나를 찾아오는 건지 그냥 온 천지에 성인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다. 성으로 가는 길, 한국에는 가로수길에 뽐내듯 있는 카페 키츠네가 길 한쪽에 얌전히 자그맣게 있길래 한 번 들러봤다. (사실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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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메종 키츠네라는 브랜드를 좋아해서 옷을 좀 많이 가지고 있는 편인데, 저 조그만 커피의 조그만 양은 상상을 초월했다.. 가격이 저렴하긴 했지만 종이컵에 맥심 타 먹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안에 귀여운 아이템들이 많아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클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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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성은 왜 저렇게 시커멓게 생겼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강을 건너 건너 도착. 날이 워낙 흐리니 사진이 죄다 뿌옇게 나왔다. 아직까지는 필름 카메라 무게가 그리 느껴지지 않는 체력이라 신나게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이 별로 없는 걸 보니 딱히 찍을만한 그림이 없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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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야마 성 안에 코난에 나왔던 파르페집이 있다고 들었지만 내가 잘못 찾아온 것인지 없어진 것인지 이상한 파르페만 있어서 비 온 뒤라 추워서 덜덜 떠는 와중에도 괜히 한 번 먹고 나왔다. 나름 모양은 예뻤다. 하트 모양의 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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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성도 아니고 외국 성 그게 다 그거지.. 솔직히 성 있고 주위에 물 있고.. 나무로 되서 발 시렵고 신발 신고 들어가는 곳은 박물관 만들어놨지만 못 읽고 다 그런 거 아닌가. 해서 나는 파르페를 먹고 다시 내려왔다. 엄마가 함께 왔다면 오카야마 성의 과거를 캤겠지만 나는 그렇게 학구적인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도망을 왔기 때문에 목적에 충실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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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왔다리 갔다리 하는 와중에 할 일도 없고 유메지 미술관은 문을 닫아서 바로 앞에 있는 카페에 들러 보았다. 굉장히 앤티크한 인테리어에 조용하고 따스한 공간이었다. 잠깐 몸을 녹이고 다시 숙소로 가는 길에는 작은 카페가 많이 있었는데 다들 너무 귀여워서 마음 같아서는 다 들어가서 커피 한 잔씩 마시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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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불명의 갑옷 가게도 있었다.


아이들은 원래 귀엽지만 일본 애들은 특유의 순박함이 있다. 비 오는 날 똑같은 가방을 매고 색색의 우산을 들고 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었는데 수상한 사람으로 오해받을까봐 조금 긴장하긴 했다. 내가 정처없이 사진이나 찍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저 친구들은 50미터 뒤에서부터 알아차릴 수 있도록 떠들며 뛰어와서 나를 지나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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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고 나니 하루 일정이라는 게 아침 일찍 시작해서 오후 일찍 끝난다. 해가 지면 숙소에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씻고 그것이 알고싶다 나 사건반장같은 살인 사건을 보는 것이 나의 여행 루틴이다.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해서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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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울 푸드와도 같은 사이제리야의 도리아와 메론 소다. 십수년 전에 처음으로 일로 일본에 갔을 때 같이 일하던 일본 친구가 밥을 먹자고 사이제리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학생들이 잔뜩 있어서 뭐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김밥천국 비슷한 체인쯤 되는 것 같다. 메론 소다는 사이다에 메론 시럽을 넣은 것인데 원래 탄산이라는 걸 잘 먹지 않는데도 일본에 가면 꼭 마시게 된다. 돈키호테에 파는 메론 시럽을 한국에 사 와서 만들어봤지만 도통 그 맛은 안 나고 꼭 일본에서 먹어야 맛이 있다. 그러니 어쩌나 일본에 가서 먹을 수밖에. 일본에 가면 이렇게 한 끼는 꼭 먹는데 이렇게 먹으면 550~600엔 정도. 돈 없는 학생들과 여행자들에게는 혜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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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나의 토요코인. 오카야마 역에서 길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곳이었는데 비가 와서 체감상 꽤 멀었다. 귀여운 기린 택시가 다니는 곳. 패밀리마트에 들러 내일 먹을 간단한 유부초밥이나 에그 샌드위치를 사면 첫 날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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