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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 하루 Oct 27. 2020

검은 건 글씨, 하얀 건 종이

2020년 10월 27일의 일기

 많은 사람들이 새해 목표로 삼는 것이 있다. 바로 독서. 나 역시 서점으로 가 내게 주는 선물로 책을 선택하고 뿌듯해한다. 1년 동안 틈틈이 책 선물도 받곤 하는데, 그렇게 지금까지 쌓인 책이 5년 동안 25권이 넘는다. 그럼 그 책들을 다 읽었느냐? 부끄럽지만 25권이 넘는 책 중에서 제대로 다 읽었다고 한 책은 1권도 채 되지 않는다. 


 늘 독서에의 마음을 다잡는 새해는 주로 겨울방학이니 집에 있으며 남는 시간에 꽤나 열심히 책을 읽곤 한다(그래 봤자 하루에 1시간도 채 안되지만). 그런데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2월 말이 되고 슬슬 새 학기 준비를 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10장 내외로 읽어진 거의 새것과 다름없는 책들은 어느새 책장이라는 감옥으로 수감된다.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으로서는 책장이 감옥이라는 것에 의아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번 책장에 꽂힌 책을 두 번 다시 꺼내지 않는 나 같은 사람들은 책들을 종신형에 처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다 가끔 먼지를 털어내야 할 때 잠깐 가석방시켰다가 다시 원위치로 되돌려놓는다. 어쩌다 나 같은 사람을 만나 훌륭한 작가의 멋진 내용이 담긴 책들이 저런 취급을 받는지...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여 '한 번 읽어볼까..?' 하는 순간 휴대전화에서 유튜브 알림이 울린다. 유튜브 보며 깔깔거리느라 책에 대한 생각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항상 책을 많이 읽으라고 말씀하셨다. 아니 지금도 시간이 되면 꾸준히 책을 읽으라고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하신다. 나도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은 건 당연히 알고 있다. 견문이 넓어지고, 시사상식이 풍부해지며, 말이나 글을 표현하는 것이 풍부해지는 등... 그러나 어릴 적부터 관심이 있던 분야의 도서만 집중적으로 2-30번씩 읽었던 나였기에, 다른 분야의 서적에 흥미를 가지고 집중해서 읽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학창 시절 문학을 배울 때도 교과서에 등장한 새로운 소설들의 전문을 찾아 읽는 것이 아니라 딱 교과서에 나온 수준만 아는 그런 정도였다. 그냥 문맥만 파악하고 추측하며 내용을 파악해나갔다. 그래도 뭐 성적은 잘 나왔기에 특별히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괜찮은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얇고 넓은 지식을 유지하며 우리 초등학생들과 함께 하하 호호하며 잘 지내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올해 들어 위와 같은 생각들이 바뀌기 시작했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남들의 글을 읽으며 나의 글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한 초등학교 최고학년이라는 6학년 학생들의 어휘 수준과 글쓰기 수준을 보며 독서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어휘의 의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는 학생들은 가뭄에 콩 나듯 적었다. 이런 상황에 놀라 정신 차리고 보니 과거 내 앞에서 책 읽으라 잔소리를 하셨던 부모님과 선생님의 모습으로 나 역시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모습을 돌아보면 솔직히 양심 없는 행동이긴 하다.


 단위학교 교사인 내가 이렇게 느낄 정도면 이미 교육계 전반에 독서에 대한 걱정스러운 분위기가 팽배했을 것이다. 이에 따라 교육청 및 학교에서도 활자 매체(책)의 위기를 맞이하여 독서교육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예산 지원도 늘어났다. 책 축제, 독서 관련 연구학교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부단히 도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며 노후된 도서관은 리모델링 통해 인스타그램 유명 카페보다도 더 멋지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학생들은 책 관련 활동으로 맛있는 간식을 받을 수 있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기구들이 넘치는 도서관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된 학교도서관의 모습 1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된 학교도서관의 모습 2

 그런데 그런 노력이 도서관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으로 책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것일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겉으로 보기에 번지르르한 도서관이 중요할까 아니면 학생들의 흥미와 수준에 맞는 도서를 갖추고 내실 있는 독서교육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까? 예쁜 도서관을 만들어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면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내가 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의 부모님과 친해지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리모델링을 통해 변화된 학교도서관의 모습 3


 이처럼 독서를 독려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들도 뚜렷하게 가시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 어렸을 적에는 본격적으로 영상 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기 전이었기에 위와 같이 책 축제 등의 활동을 하면 그나마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취미가 독서가 된 학생들이 많았고,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소개하는 시간에 취미가 독서인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태어나 인지능력을 습득하는 즈음에서부터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접한 사람들은 그 속의 영상에 눈길을 뺏겨 곁을 도무지 다른 것들에게 넘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활자 및 관련된 매체를 보고 흥미를 일으킨 경험이 없기에 관심조차 없고 이에 따라 글을 읽고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어려우니 흥미는 계속 줄어들어나간다. 글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성해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이미 시각적으로 모두 구현해 놓은 영상만을 보니 제대로 된 사고의 정립이 어렵다. TV는 바보상자라는 말이 지금에 와서야 새삼 무서운 말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른이라고 다른 건 없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여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고, 자신만의 세상 속 글을 써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다. 활자의 미래가 아주 불투명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작은 스마트폰 속의 영상으로 넘어가고 있고, 보다 심도 있는 생각을 요하는 것보다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내용으로 구성되어있는 자기 계발서 등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 판매량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요즘 삶이 힘들고 팍팍하여 위로가 필요한 사회적 분위기도 한 몫하는 것이겠지만, 책의 내용을 보면 '흠....' 하고 고민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활자와 영상의 기로에 서있는 우리. 

 이러다 진짜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게 되는 건 아닐까..?

 

 상대적으로 더 흥미가 있는 것에 끌리기 마련인 만큼 영상을 보는 것도 좋지만, 

 독서를 통해 영상을 읽어나갈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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