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과식을 할까?
한 달째 음식중독 치료를 하고 있다. 병원을 다니는 건 아니고 내 스스로. 1일1식, 채식, 운동, 명상 등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있다. 한 달 남짓이지만 놀라운 효과가 있었다. 몸무게를 재보진 않았지만 5kg 이상은 빠진 것 같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내가 표현한 음식중독은 공식적인 의미가 아니라 대략 '배가 고프지 않아도 먹고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는다' 정도였다.
최근 서점에 갔다가 내가 생각한 음식중독과 흡사한 내용을 발견했다. 일본 작가 세키구치 마사루의 '월요단식'이란 책에 나온 '과식 셀프 체크 시트'였다. 주1회 단식으로 스트레스 없이 쉽게 살을 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셀프 체크 리스트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하고 있어서 공감됐다.
1. 매끼 배가 가득 찰 때까지 먹는다. →YES를 100개 주고 싶다. 나는 간식을 많이 먹진 않지만 한끼를 거하게 먹는 편이다. 식당에 2명이 가면 3인분 시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나다. 그리고 남기는 걸 너무 싫어해서 배가 불러다 남김없이 다 먹는다. 혼자서 빈접시운동 이라는 프로젝트를 한 적도 있다.
2.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식사를 한다. → YES. 직장이든 학교든 대부분 점심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친구나 동료가 밥 먹자고 하는데 거절하면 야박한 것 같고. 왠지 식사때를 놓치면 기운이 없을 것 같기도 하고.
3. 매일 저녁으로 탄수화물(백미, 빵, 면류)을 먹는다. → YES. 저녁 뿐 아니라 점심에도 거의 대부분 탄수화물을 먹는다. 특히 나는 빵은 싫어하지만 밥은 좋아한다. 고기를 먹을 때도 밥이 있어야 맛있게 먹는 사람, 그게 나다. 빵이나 면 성애자가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인가 싶지만 백반집에서 공깃밥 2그릇 먹던 걸 생각하면 다행도 아니다.
4. 식간(아침 식사와 점심, 점심과 저녁 식사 사이)에 과자를 먹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 NO.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습과적으로 먹진 않는다. 대신 동료가 권하는데 거절하기가 뭣해서 자꾸 받아두고, 그러다보면 종종 먹게 된다. 한창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젤리를 심하게 먹은 적이 있긴 하다. 그럼 결국 YES인가.
5. 외식할 때 햄버거 세트(또는 돈가스 정식) 정도는 간단히 먹어 치운다. → YES를 역시나 100개 주고 싶다. 햄버거나 돈가스는 무조건 세트 시키는 거 아니었나요. 나는 정말 먹는 양이 많다. 남들한테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많이 먹을 수 있다. 아까 말했다시피 남기는 걸 너무 싫어한다.
6. 식사를 끝낸 후 2시간 안에 취침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 YES. 2번과도 연결되는데 끼니를 놓쳤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꼭 먹는 편이다. 7시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8시. 어영부영하다보면 9시가 된다. 이때 라면이든 뭐든 챙겨먹고 11~12시쯤 잠드는 일은 예사였다. 야근 많은 직장을 다닐 때는 더했고.
이 중 하나라도 체크가 되면 과식이라고 한다. 나 때문에 더더 음식중독이 된 -잘 먹는 사람과 함께 먹으면 더 많이 먹게 된다고 한다- 친구에게 보내주자 "하나도 해당 안되는 사람이 문제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니다, 친구야. 과식이 문제란다. 자가 음식중독 치료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