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 음식을 많이 먹을까?
나는 언제 음식을 많이 먹을까? 이유를 알면 음식중독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우울한 날? 기분 좋은 날? 슬픈 날? 많이 먹을 때의 공통 상황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항상 많이 먹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요리했건 아니건 많이 먹는 게 목표라기 보다는 남기지 않는 게 내 목표인 것 같다. 많이 먹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음식을 남기지 않으면 행복한 기분이 든다.
'환경 보호'는 꽤 오랫동안 나를 지배해왔다. 특별히 친환경적 생활을 하는 건 아니지만 늘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낙동강페놀 사건 등 산업화 이후 환경오염에 대해 심각한 문제가 제기 되던 때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이다.
그래서 남기는 게 싫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쓰레기가 되는 게 아깝다. 혼자 먹을 때는 괜찮다. 내게 주어진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면 되니까. 문제는 남들과 함께 먹을 때다.
보통 사람 숫자대로 식사를 시키되 함께 나눠 먹을 음식을 한두 종류 더 주문한다. 공유하는 음식의 마지막 부분을 먹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각자 다른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 음식은 결국 남고, 나처럼 남는 게 아까운 사람은 배가 불러도 입에 집어 넣는다.
음식이 남는 상황을 벗어나야했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다. 회사 동료들과 함께 나가서 먹는 대신 혼자(!) 먹는 거다. 한달 간 도시락을 싸다보니 요령이 생겼다.
1. 최소 2~3일치를 미리 싸둬라.
하루치를 계량해 만드는 게 쉽지 않다. 한꺼번에 많은 재료로 만들어 나눠 담아 보관하는 게 좋다. 다른 이유도 있다. 매일 도시락을 싸면 하루 종일 음식 생각을 하게 된다. "냉장고에 재료가 뭐 있더라?" "바나나랑 블루베리랑 토마토를 넣고 갈아볼까?"…. 음식 생각을 하다보면 배고프지 않더라도 뭔가 먹고 싶어진다.
2. 채식, 고단백식, 과일식, 주스 등 다양하게 시도해라.
첫 시작은 '소지섭 스프'였다. 토마토, 양파를 물없이 뭉근하게 끓이다가 소고기를 넣어 익혀 만든 요리다. 한솥 끓여서 도시락을 쌌다. 첫날에는 "아! 진짜 맛있다"였지만 이틀째부터 질렸다. 도시락에 흥미를 잃지 않도록 식재료나 조리방법을 달리하면 좋다. 식재료비가 많이 들 것 같지만 의외로 외식 비용의 딱 절반 이하 수준이다.
3. 간단한 식단 일기를 써라.
거창하게 쓰지 않아도 된다. 점심: 토마토 20개, 오이 1개, 두부볶음 (두부 반모, 파프리카 1개). 이 정도면 된다. 내가 먹는 양과 영양소를 체크할 수 있다. 목표(채식, 1일1식 등 뭐가 됐든) 달성을 확인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4. 도시락 먹기에 하루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마라.
사람 일은 참 모르는 거다.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갑자기 단체 점심 회식이 생긴다거나 직장 동료가 자꾸 외식하자고 채근할 수 있다. 솔직히 화나고 스트레스 받는다. "나 좀 냅두라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런데 하루 실패해도 된다. 대신 밖에 나가서 최대한 내가 생각했던 식단과 양만큼 먹을 수 있는데 생각을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심지어 실패도 아니다.
물론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건 단지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니다. 직장 동료와 점심을 먹으며 업무 시간에 하지 못했던 이야길 편하게 나눌 수 있다. 유행하는 음식을 먹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혼자 도시락을 먹겠다고 하면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걱정할 수도 있다.
책 '감정식사'에는 사교적 식사라는 표현이 나온다.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을 때 과식으로 이어지는 감정이 있는데 남을 기쁘게 하고픈 욕구, 분노, 외로움, 기쁨, 경쟁심이다.
음식을 대하는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선택에 흔들리지 않고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말한 EAT.Q 라는 식습관 개선 방법은 다음에 소개할 계획이다.)
저자는 스스로 공복감을 체크하고, 점심식사에 초대받았을 때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더 이상 변명을 덧붙이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으면 음식 대신 차를 주문하고, 다른 사람이 무엇을 주문하든 참견하거나 비난하지 않는 태도를 권했다.
나는 비교적 수평적인 문화에서 일하기 때문에 억지로 외식을 권하는 동료는 없다. 함께 먹지 못해 섭섭해하긴 해도 대놓고 싫은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대신 유리 밀폐용기를 들고 다니기 불편할 때가 있다. 저녁 약속이 있으면 그날 점심 도시락을 거르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락은 의지를 북돋아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도시락을 못 먹었다고 세상 무너진 듯한 기분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가 도시락을 싸도록 한 '음식에 대한 내 감정과 상황'을 잘 이해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게 핵심이다.
만약 나와 다른 이유로 음식중독에 빠진 사람은 어떻게 해야할까? 다음편에 'EAT.Q'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