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ryme Aug 23. 2018

페이스북 한달 안해보니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서 상쾌하다   

제목이 너무 부관참시(剖棺斬屍·시체를 파내 다시 목을 자른다는 뜻)인가? 아니면 뒷북인가? 페이스북 이용자가 빠지네, 주가가 떨어졌네 이런 분석 기사들이 나온지 한참 됐는데 무슨 뜬금포인가 싶기도 하다.

나는 1020이 아니지만 페이스북을 한달간 끊어봤다. 방법은 간단했다. ① 스마트폰에서 앱을 지웠다 ② PC 크롬 첫페이지에 나오는 페이스북 연결 썸네일을 지웠다 ③ 심심하면 인스타그램을 봤다 ④ 짜투리 시간에는 포털 뉴스나 유명한 인터넷 게시판-베스티즈, 클리앙, 82쿡 등-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면 진짜 상쾌했다. 사진 속 퇴사를 퇴페북이라고 바꾸면 딱 맞을 것 같다.

@인터넷 커뮤니티

업무상 페이스북을 봐야하기 때문에 다시 하고 있지만, 할 수만 있다면 영원히 페이스북을 안하고 싶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심신에 안정을 얻었다. 앞에 소개한 기사 제목처럼 페이스북이 더이상 쿨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광고성 피드가 늘어나서도 아니다. 사진이나 동영상이 좋아서도 아니다. 페이스북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마크 미안! 물론 마크 저커버그는 날 모르지만. @Mark Zuckerberg 페이스북

포털사이트 메인뉴스나 인스타그램, 인터넷 게시판과 다른 페이스북 특징 때문이다. 바로 이너서클과 네트워킹 지옥. 좀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의 생각을 내가 원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 않나"라는 우려 때문이다. 나에게 페이스북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 이제는 페이스북을 하고 싶지 않게 하는 이유가 됐다. 물론 이 모든 건 나 개인만의 이유다. 일반적인 페이스북 하락 관련 분석과는 다르다.


1. 일반인 중에 유명인  

2010년 초반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페이스북 사용 시기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지인과 순수하게 일상을 공유하고 싶어서 페이스북을 한 건 아니다. 연예인 정도로 유명하진 않지만 업계에서 이름 좀 알려진 사람들의 생각을 필터 없이 알 수 있어 좋았다. 허무맹랑한 성공담이 아니라 실무를 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생생함이 좋았다.


2. 나만의 세상

그래서 나는 친구보다 팔로우하는 사람 숫자가 더 많았다. 친구는 실제로 아는 사람하고만 소극적으로 맺었고, 팔로우 버튼은 타임라인에서 눈에 띄는 글이 보인다 싶으면 쉽게 눌렀다. 언론사 계정도 꽤 많이 팔로우했다. 새로 나온 서비스가 있으면 바로 팔로우했다. 친구가 좋아요를 누른 페이지도 쉽게 팔로우했다. 물론 마음에 드는 것만. 페이스북 안에 나만의 세상이 구축됐다. 그래서 내가 팔로우 하는 사람들은 서로 친구인 경우가 많았다. 


3. 똑똑해지는 기분

그들의 생각을 흡수하면서 똑똑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누군가 "한국은 정말 규제 천국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그렇지 않아요"라고 얘기하면 그게 맞는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분명 규제가 필요한 부분도 있지 않나?" "미국이나 중국은 무조건 좋은 건가?"라는 마음 속 소리는 평범하고 전문성 없는 나의 자격지심 같은 게 됐다.

보통 그 사람들 말이 고, 그들은 언제나 생산적인 토론을 환영할 것이다. 내가 팔로우했다는 건 (최소한 페이스북 세계에서만큼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거니까. 그러니 그 생각에 동의 못하는 걸 숨기는 건 내 자격지심이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소재는 끝도 없다. 어떤 서비스가 좋니, 무슨 책이 최고니, 업계 앞날은 이렇게 돼야 하니, 한국 윗대가리들은 바보들 밖에 없네, 앞으로 한국은 영원히 도태할 것이니…. 그게 처음엔 좋았다. 두고 읽으려고 '나만보기'로 공유도 많이 했다. 근데 나중엔 지쳤다.


4. 그 나물에 그 밥

그럼 반대 의견 가진 사람은 어디서 찾아야 해? 내 타임라인에는 온통 똑같은 얘기 하는 사람 밖에 없는데. 이게 필터버블(이용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해 필터링 된 정보만 이용자에게 도달하는 현상), 한마디로 내 뜻이랑 똑같은 사람만 보다보니 세상이 다 그런 줄 아는 현상인건가?


그러다보니 날 더 깝깝(갑갑보다 더더 내 감정을 담아봤다)하게 만든 건 이너서클이었다. 비슷한 업계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을 팔로우해서 그런가 어느날 패턴이 보였다.


갑자기 화제가 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그가 만든 (글이든 영상이든) 콘텐츠가 좋아서 공유가 많이 된거다. 근데 이런 사람의 근원을 올라가보면 뭔가 고리가 있었다. 결국 그 업계 사람이거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에서 업계 사람에게 자문했거나, 그 업계에서 투자한 회사 관계자거나 결국 네트워킹이더라.


근데 그게 너무 별로였다. 페이스북에서 화제되면, 누군가 기사화하고, 그 기사를 누군가 공유하고, 어떤 기관에서 강연자로 초청하고, 그 사람 개인 페이스북은 또 나 같은 애들이 팔로우하고, 그 사람들이 늘어놓는 의견을 보면 똑똑해지는 기분이 들고, 그 사람들이 책을 내고, 그럼 또 누가 기사화하고, 무슨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나오고, 어느새 업계에서만 유명한 거물이 되고… 이런 이너서클의 정말 끝없는 반복.


5. 빨간 약을 먹고 나니

그런데 페이스북 뒤에서 보니, 살짝 발을 담근 채 관찰해보니, 그 사람들이 훌륭하지만은 않더라. 당연히 훌륭한 사람도 있겠지만. 페이스북에선 죽고 못 살더니 자기들끼리 뒤에서 엄청 헐뜯고, 누구는 실력이 있네 없네 말도 진짜 많더라. 업계에서 알아준다는 쿨하고 커리어 덜덜한 사람이 실제로는 앉은 자리에서 1시간 동안 그 나물 그 밥 사람들 10명 험담하는거 보고 정나미 뚝 떨어진 적도 있다.


제발 그 사람들 이너서클에 끼고 싶은 마음 버리자. 그 이너서클에 안 낀다고 내 인생 절단 나는 거 아니다. 내가 그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든 세계에 갇히지 말자. 내가 발동동할만큼 대단한 사람들 아니더라.


그래도 어찌됐거나 대단한 사람도 있긴 하고, 이너서클 속에서 자기브랜딩도 할 수 있고, 내 가치를 탄탄히 쌓아갈 수 있다. 굳이 셀럽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진짜 모습은 뭔데? 라고 생각한다면 계속 그 길을 가도 괜찮다. 비꼬는 거 아니고 진심이다. 내가 처음에 페이스북에 중독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6. 인스타그램이 좋은 이유 

그럼 왜 페이스북 대신에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인터넷 게시판을 봤을까. 대체재라서? 역시 동영상이나 이미지 콘텐츠가 훨씬 강력한 시대라서?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좋아요를 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타임라인에 해당 콘텐츠가 즉각 표시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누군가의 좋아요가 즉각적으로 내 타임라인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내가 좋아요 한 콘텐츠를 남들이 알 수 있는 기능도 있고(인스타그램), 피드 알고리즘에 내 모든 행동이 반영되지만(유튜브), 어찌됐거나 뭔가 (이 사람들 이너서클에 끼고 싶다며) 안달하는 마음으로 피드 (또는 타임라인)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좋았다.


맞다. 이 모든 게 다 내 성격 때문일거다. 튀는 거 안 좋아하지만 그래도 내 관심사 속에서만은 뭔가 스마트한 사람이 되고 싶은 이중성. 똑똑한 사람을 선망하면서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이중성.


아직도 나는 페이스북을 기웃거린다. 어찌됐거나 일하는데 필요한 자료들이 아직은 페이스북을 떠다닌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도 그 사람 혹은 그 사람의 생각이 가치가 있기에 화제가 되는 거다. 그걸 무시할 순 없다.


그럼에도 딱 한 달 페이스북을 하지 않고서 깨달았다. 페이스북이 없어도 내 인생은 잘 돌아가는 구나.  한 달 안 보니 대단해보엮던 이너서클도 그저 그렇구나. 오히려 그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하지 못하는 생각이나 행동, 내가 옳다고 믿는 행동을 용기있게 꾸준히 하는 게 내 가치가 더 높아지는 길이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 대신 저녁에 머리감아 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