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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ryme Sep 05. 2018

이탈리아에서 먹은 인생 샌드위치

기다리는 시간마저 행복한 가게

제목이 너무 거창해보이지만 진짜 꼭 한 번 먹어봐야 할, 아니 꼭 한 번 방문하길 추천하는 곳이다. 메뉴는 각종 치즈가 잔뜩 들어간 샌드위치. 일단 맛있고, 재료가 신선하고, 가격이 싸다는 장점은 기본이다. 행복하게 일하는 이곳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땡볕에서 1시간을 기다려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marryme

일단 궁금하면 아래 영상을 보자! 무려 8분 46초 동안 샌드위치 하나를 만든다. 물론 빵을 여러 개 펼쳐서 동시에 만들 때도 있다. 빵에 속을 채우다 말고 갑자기 치즈를 자르더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줄 서 있는 손님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지나가던 이웃들과도 수다를 떤다. 줄 서서 기다리던 관광객과는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렇게 말린 토마토, 생 토마토, 각종 채소, 치즈 3~4종류, 햄 2~3종류를 차곡 차곡 쌓고 나면 거대한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틈틈이 뿌린 올리브오일과 레몬즙은 이탈리아 (그리고 시칠리아)의 상징 같다. 30cm쯤 되는 바게뜨는 빵 속을 파내고도 높이가 5~6cm가 넘는다.

가격이 2015년에는 4유로(약 5200원) 정도였는데 요즘은 5유로(약 6500원) 정도. 여행정보를 공유하는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이 가게를 검색하면 4000개 후기 중 90%가 만점을 줬다. 사진은 전체 샌드위치를 절반으로 자른 것. 반만 먹어도 배가 터질 정도로 양이 많다. 치즈는 모두 가게에서 직접 만들었다.

@marryme
@Cacioficio Borderi

가게 위치는 이탈리아하고도 시칠리아하고도 시라쿠사(Siracusa). 시칠리아는 한국으로 치자면 제주도 같은 섬이다.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서 기차나 비행기로 가야 한다. 나는 나폴리에서 기차를 탔는데, 반도가 끝나는 지역에서 기차에 탄 채로 페리로 옮겨타 시칠리아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한 카타니아에서 버스를 타고 시라쿠사에 갔다.

시칠리아 여느 곳처럼 바다가 있고, 해가 쨍쩅한, 그래서 오히려 별스럽지 않던 시라쿠사. @marryme

시라쿠사에서 꼭 보고 싶었던 게 있었던 건 아니라 늘 그렇듯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다. 7월이라 진짜 너무 너무 너무 더웠다. 흔히 하는 재래시장 탐방에 나섰는데, 시장 끝에 줄을 선 집이 있어 가봤더니 바로 이곳이었다. 이름은 Caseificio Borderi.  

@marryme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Caseificio Borderi는 보데리(Borderi) 가족이 운영하는 유제품 가게다. 1930년 창업자 돈 파스칼레 보데리가 올리브 오일 생산으로 시작해 치즈 등 유제품으로 확장했다고 한다. 1970년대 아들 안드레아 보데리가 본격적으로 치즈를 만들면서 유명해졌다.

@marryme

왼쪽 하얀색 반팔 티셔츠를 입은 사람이 바로 안드레아 보데리. 사진에는 무뚝뚝하게 나왔지만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다. 줄 서 있는 모든 고객에게 말을 걸고 맛있는 치즈를 권한다. 1998년에 치즈 만드는 장인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아들, 며느리와 함께 가게를 운영한다. 가게에서 파는 모든 치즈는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해 직접 만든다고 한다. 갓 만든 따끈한 (순두부 같은) 치즈를 공짜로 줘서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다.

사진을 찍고 있으면 이렇게 포즈를 취해준다. 참 유쾌한 사람들이다. @marryme

치즈가 메인인 메뉴를 시켜 와인과 야외 테이블에서 먹을 수도 있다. 가게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치즈를 찾기 위해서 치즈에 와인이나 채소를 넣어보기도 하고, 모짜렐라 치즈를 구워보는 등 다양한 실험을 해본다고 한다. 이렇게 해보니 Borderi를 찾는 고객이 원하는 건 신선하고 가벼운 음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짜렐라에 채소를 넣은 제품을 개발했다고. 장인 정신에 감동했다.

@marryme

며느리 또는 딸로 추정되는데 안드레아씨와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고 갓 만든 치즈를 잘라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남편은 같은 가게에서 고기 제품을 담당한다.


샌드위치를 받아들기까지 기본 30분 정도는 기다리는데, 유쾌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들을 보면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과 즐거움이라는) 가치를 전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느끼게 된다. 물론 가족과 일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자영업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테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시칠리아 전통 치즈인 조롱박 모양 '까쵸까발로(Caciocavallo·이탈리아어를 풀면 말의 안장을 걸쳐놓은 모습이라고 한다)'가 걸려 있고, 줄 서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보데리 가족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한 컷에 담겼기 때문이다. 노란 치즈가 잔뜩 올라간 샌드위치와 신선한 채소도 잘 보인다.  


트립어드바이저를 보니 요즘은 안드레아씨가 안 보일 때도 있다고 한다. 재료나 정성이 덜할 리 없으나 안드레아씨가 없으니 서운해 하는 관광객도 있다. 이미 70대를 넘겼으니 체력이 떨어지셨을 수도 있겠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주면 좋겠다.


이 가게를 추천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끊임없이 치즈를 개발하려는 장인 정신, 손님을 즐겁게 만드는 유쾌함, 무엇보다 맛있는 음식.


주소: Via Emanuele de Benedictis 4, Mercato di Ortigia, 96100, Siracusa, Sicilia, Italia

웹사이트: http://www.caseificioborderi.eu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caseificioborderi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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