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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ryme Jan 09. 2016

세계 어디서나 배송료 무료인 잡지

종이 매체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모바일 매체는 각자 어떤 콘텐트를 소비하는지 알기 어렵다. 겉으로 알 수 있는 건 "아이패드프로를 쓰는군" "삼성 기어를 찼군" 같은 디바이스 뿐이다.

종이 매체는 때로 그 매체 자체가 소유자를 규정짓는다."00 일보를 구독하는 사람이라면 나와는 대화하기 힘들겠군" "하루키 에세이를 읽는 남자라면 섬세한 감성이겠군" 등. 선입견일 수도 있고, 짐작과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매체만의 성격이 있느냐 없느냐다.

나는 종이 매체는 성격이 분명할수록 가치가 높아진다고 믿는다. 런던에서 만난 독특한 잡지를 소개한다. 낱권으로 사는 것보다 정기구독료가 더 비싸면서, 정기구독자에겐 전 세계 어디나 배송료 없이 배달해준다. 잡지 이름과 같은 카페와 라디오 방송도 있다. 이 잡지의 전략과 매력은 무엇일까?

영국 런던 마릴본(Marylebone) 거리에 monocle이라는 카페가 있다. 모노클이란 다리 없이 안경렌즈만 있는, 동화 소공녀나 소설 셜록홈즈에 나올 것 같은 그 안경을 말한다.


카페 입구는 자그마한데 지하에도 좌석이 있어서 꽤 넓었다. 인테리어는 소파와 딱딱한 의자가 공존하는 편안한 분위기. 요즘 한국에서도 넘쳐나는 아기자기한 카페 인테리어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각자 작은 나무 트레이(라고 써야만 할 것 같은 쟁반)에 음료를 담아 카페 심볼이 새겨진 휴지, 초콜릿을 함께 준다. 손님은 다양하다. 혼자 오거나 서너 명이 서류를 놓고 대화하거나. 대신 노트북을 다다다 두드리며 일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카페 곳곳에는 모노클 이름을 단 잡지책도  여기저기 쌓여있다. 맞다. 모노클은 잡지다. 글로벌 핫 피플 들은 다 구독한다는 마성의 잡지라고 한다. 이 카페는 잡지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모노클 카페는 런던 외에도 도쿄, 홍콩 등 전 세계에 4~5군데 정도 있다.


영국 본사에서 매달 발행되는 모노클은 전 세계 비즈니스맨을 타깃으로 한다. 창립자는 타일러 브륄레(Tyler Brûlé). 그는 1996년 세계적 잡지 Wall paper를 만들기도 했다. 그 전 직업은 종군기자. 모노클은 2007년 만들었는데, 이미 종이매체 종말론이 무르익었을 때 새 잡지를 낸 셈이다.


창간 초기부터 핫했다는 이 잡지를 솔직히 나는 아주 최근에 알게 됐다. 지난해 런던 여행에서 참고한 유럽 가이드북(3일이면 충분해 유럽여행 베스트 코스북/정기범, 김숙현) 덕분이었다. 모노클 카페가 있는 런던 마릴본 쪽에 잡지를 만드는 미도리 하우스(잡지사)와 모노클 숍(모노클에서 만들거나 셀렉트 한 물건 판매하는 곳. 진짜 물건이 하나같이 모던한데 가격은 꽤 비싼 편)이 모여있다.

이 잡지는 좀 특이하다. 예를 들어 패션잡지 Ceci와 Vogue가 연령별로 구분되고, 여성중앙과 Cosmopolitan이 내용으로 구분된다면, 모노클은 레바논의 여성 대선 후보 인터뷰 뒷장에 알록달록한 전통 복장 사진이 담긴 한 뮌헨의 옥토버훼스트를 소개한다. 한국판이 별도로 나오지 않지만 한국 통일부 직원들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거나 이자스민 의원에 대한 짧은 인터뷰가 실린 적도 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같은 순위를 매긴 기사는 모노클의 히트작이다.


모노클은 별도의 외국어판이 없다. 매달 A(affairs) B(business) C(culture) D(design) E(edits)로 나눠서 세계 각지의 소식을 통일된 잡지 한 권에 담아낸다. 전 세계 사람들이 똑같은 잡지를 받아본다.


다루는 주제는 여행, 패션, 정치, 경제 등 다양하다. 모든 이야기를 한없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펴내는 게 모노클의 미덕이다. 원래 사람은 한 분야를 파고들면서도 다른 분야에 대해 알고 싶은 게 많기 마련이다. 인쇄매체의 생명인 레이아웃도 독특해서 "모노클스럽다"는 말을 듣는다.

잡지 monocle. 매달 특유의 레이아웃은 그대로다.

가격은 한 권에 7파운드(13000원) 정도. 정기 구독하면 1년 100파운드(18만 원). 권당 가격을 따져보면 매달 낱권을 구입하는 것보다 정기구독료가 오히려 비싸다. 계산이 잘못된 게 아니라 모노클만의 정책이다. 정기구독자에게는  잡지뿐 아니라 에코백을 선물로 주고, 각종 이벤트 참여 기회를 제공한다. 정기구독을 하면서 모노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전략이라고 한다.


나는 몇 달 전부터 모노클을 구독하고 있다. 1년간 100파운드. 매달 영국 로열메일(한국으로 치면 우체국 택배)로 받아보는데, 놀랍게도 배송료가 없다. 전 세계 어디에서 구독해도 1년 100파운드, 책값만 내면 된다. 구독 신청서에 배송료 조항 자체가 없다. 한국 안에서도 도서지역에는 배송료를 따로 매기곤 하는데 말이다. 사는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돈을 더 내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이 이유라고 한다.


사실 영문이라는 핑계로 사진만 보고 휙휙 넘기고 있긴 하다. 레이아웃이 너무 빡빡해서 읽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일본과 관계가 긴밀해서인지 일본 관련 내용이 많아 지겨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노클을 읽는다=쿨하다, 멋있다'라는 공식(?)을 만든 건 인정할 만하다.

자체 라디오방송을 들을 수 있는 monocle 앱

모노클은  잡지뿐 아니라 자체 앱을 만들어서 라디오 서비스도 한다. 모노클이라는 잡지의 지향점이 라디오와 비슷해서라고 한다. "모든 것을 꼼꼼히 듣진(보진) 않지만 관심 가는 분야는 주의 깊게 듣다(보다) 보면 결국 관심사가 라디오(잡지)의 다른 프로그램(기사)으로 넓어지는 것"


*한국 대형 서점에도 모노클을 판매한다. 가격은 권당 2만3000원. 구독신청은 모노클 공식 홈페이지(www.monocle.com)에서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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