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프랑스에 살아보는 또 다른 방법
한때 유튜브의 성공 이유 중 하나는 how to 영상이었다. '~하는 법'을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형식은 동영상이었으니까.
지금은 일상을 담는 브이로그(vlog)의 시대다. 블로그(blog)만 해도 (텍스트가 중심이 되는) 전통적 의미의 일기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동영상으로 기록하는 거다. (브이로그의 매력과 유행 이유는 따로 쓸 예정!)
최근에 완전 빠져 있는 해외 일상 브이로그가 4개 있다. 등장 인물이 한국인인 경우도 있고, 외국인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국어를 능숙하게 잘해서 편하게 볼 수 있다. 한국어로 된 일상 영상을 찾으려면 '일상' '브이로그' '일상 00(지명)'을 검색하면 된다.
여행을 가면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을 때가 있다. 허둥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달까. 그렇지만 살면서 느끼는 희노애락을 직접 듣기는 어렵다. 정보와 감성이 담긴 일상 브이로그를 보면 현지에 사는 느낌, 여행하는 느낌 모두 누릴 수 있다. 요즘은 일상 같은 여행이나 한달 살아보기가 트렌드라 그런지 관련 영상이 제법 많았다.
1.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TV (오오사)
오사카에 있는 부동산 회사 '오너즈 부동산'의 한국사업부에서 만드는 계정. 오너즈부동산의 사장 오오카와씨와 마츠다 부장이 주인공이다. 일본 직장 문화 소개(명함 교환 예절), 관광객 추천 스팟이나 쇼핑 아이템 , 오너즈에서 보유한 부동산 매물이나 숙박 시설(내용이 웃기고 알차서 '광고지만 기분 좋다'는 평가가 많다)을 소개한다. 마츠다 부장은 반듯한 반장, 오오카와 사장은 무심한 듯 츤데레인 부회장 같은 느낌이다. 마츠다 별명은 (술을 잘)마시다상, 오오카와 별명은 오오카와이(오오카와+카와이-귀엽다-).
두 사람 모두 한국말을 진짜 잘한다. 특히 마츠다 부장은 일본어 특유의 억양이 전혀 없어 국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 구독자 10만명이 되면 한국어 비결을 알려주기로 했다. 처음엔 오사카 여행이나 월세 정보를 얻으려다가, 유창한 한국말에 놀라고, 나중에는 오너즈 부동산에서 함께 일하는 기분으로 보게 된다. 보다보면 "아니, 대체 이 아저씨들이 뭐라고 넋놓고 보게 있지?"라는 말이 나온다.
*최근에 차트보go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한다. 심지어 TV에서 하는 예능을 모르다니 이제 완전히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세계로 들어선 것 같다...
2. 물결 Angela
프랑스 파리에 사는 한국 중학생의 일상이 주제다. 미국에서 살다가 프랑스로 이민 간 한국인 물결님이 만드는 채널. 프랑스 중학교에서 쓰는 교과서와 학용품, 즐겨 입는 옷 브랜드, 자주 사먹는 과자 같은 소재부터 친구들과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는 영상도 있다. 프랑스어 빨리 배우는 방법도 소개한다.
실제 프랑스 교육과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수 있고, 기사나 책을 통한 간접 체험이 아니라 10대의 삶을 그대로 볼 수 있어 좋다. 영상 편집도 깔끔하고, 감성 돋는 필터를 쓰기 때문에 화면이 정말 예쁘다. 그야말로 '무심한 듯 시크한' 파리 시내를 볼 수 있어 여행하는 기분도 든다.
3. Tokyo 오딜 Odile
됴쿄에 사는 주부 오딜님이 만드는 일상 브이로그.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올라오는데, 이제 갓 초등학생이 된 아들 루카스와 함께 하는 모습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섞여 있어 인상적이다. 도쿄의 파인 레스토랑도 자주 방문하기 때문에 간접 경험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까지는 취향에 맞는 사람만 시청해서인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반응은 거의 없다. 한 번에 올리는 영상 길이는 15~20분 분량으로 꽤 긴 편이다. 유튜브에서는 짧은 영상만 '잘 팔린다'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일 뿐. 그냥 내 취향과 맞으면 길이는 상관없다.
일본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필요한 준비물편에서는 지진, 화산 폭발 등 자연재해가 잦은 일본의 방재 시스템을 엿볼 수 있었다. 솔직히 한국 언론사가 쏟아내는 '일본의 지진 대비법' 기사보다 훠~~~~~~~얼씬 자세하고 정확했다. 아래 영상 썸네일에 등장하는 어린이가 바로 루카스인데,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는 '보우사이즈킨'이라고 하는 방재모자라고 한다. 지진이나 화재가 났을 때 머리를 보호해주는 두건으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필수 준비물이라고 한다.
4. TV - Parisiang파리지앙
프랑스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알려주는 프랑스에 관한 채널. 프랑스 파리 지역별 여행 정보, 카페에서 현지인처럼 커피 마시기 등 잠깐 파리에 다녀가는 사람에게 유용한 콘텐츠가 많다. 물결님 영상처럼 파리 거리 모습을 볼 수 있어 여행하는 느낌도 난다. 관광지가 아닌 곳도 가기 때문에 내가 파리 근교에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사실 정보보다는 엄청 유쾌한 말투가 매력있다. 각종 예시 설명을 위해 1인다역을 하는 것도 재밌다.
의외로 프랑스어 관련 콘텐츠는 많지 않은데, 개인적으로 발음법을 알려주는 영상이 유익했다. 나는 예전에 프랑스어를 조금 배운 경험이 있는데, 특정 발음이 아니라 프랑스어 특유의 발성을 잘 따라하지 못했다. 내 발음과 다른 건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몰랐기 때문이다. 알고보니 발음을 날리지 말고, 땅으로 꺼트려야 하는 것. 그걸 정확히 설명해준 건 이 영상이 처음이었다.
올해 가장 잘한 소비 중 하나는 유튜브 프리미엄 (구 유튜브 레드) 구독이다. 한 달 무료 이후에 매달 8690원(7900원+부가세 790원)을 내면 ① 광고 없이 모든 유튜브 영상 시청 ② 유튜브뮤직(YT Music)앱 사용 ③ 유튜브 오리지널 콘텐츠 무료 시청을 할 수 있다.
나는 특히 1번과 2번을 즐겨 쓰는데, 광고 없이 영상을 본다는 건 정말 헤븐, 천국이다. 그래서 포털에 있는 영상을 안 보게 된다. 15초 광고의 압박. 심지어 볼만한 예능은 대부분 자체 페이스북 계정에 광고 없는 영상을 올려준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포털도 서서히 구독 모델을 테스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전 세계에서 만든 동영상이 모이는 유튜브도 유료 사용자는 아주 적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광고가 없어서인지 유튜브에 완전 중독돼 잠자기 전 새벽 시간이 정말 순(식간에)삭(제)이다. 그동안 관심사도 자주 바뀌었는데, 대략 먹방→명작극장 다시보기→1980~90년대 한국 거리 영상→영어공부→캠핑카→작은집 짓기→해외 일상 브이로그 순이다. 영어로 된 콘텐츠가 훨씬 많지만, 한국어로 된 영상이 보기 편한 건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