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괜찮은 사람이 됐다
하루종일 여기저기서 간헐적단식에 대해 나왔다. 주말에 방송된 SBS스페셜 때문이다. 어쩌다 지난해 6월부터 간헐적 단식을 하고 있는데, 8개월째가 됐다.
작년 7월 브런치에 '간헐적 단식 1개월차 몸의 변화'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꽤 많은 분이 읽었고, 공유했고, 의견을 줬다. 그 중 SBS스페셜 작가님의 섭외 댓글도 있었다. (나는 간헐적 단식을 철저히 지키지 않는 편이라 거절했다.) 당시 댓글이나 주변 반응을 보면서 느낀 게 있다.
간헐적 단식은 단순히 살을 빼는 방법이 아니다.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건강해지려면 ① 먹는 양을 줄이고 ②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 다 충족해야지 한 가지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살을 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건강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간헐적 단식이 음식 섭취량을 조절하는 것이라면 운동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 운동을 안해도 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살을 빼는 것이 아니라 건강해지려면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는 게 맞다.
나는 식사량을 줄이는 간헐적 단식에 대해서만 말하려고 한다. 내게 간헐적 단식은 '하는 것보다 안하는 걸 해보는 과정'이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모두 변했다.
간헐적 단식 1개월을 하면서 느낀 변화는 네 가지였다.
1. 살이 빠졌다.
(→ 재보진 않았지만 10kg 정도 빠지고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2. 절제력이 커졌다.
3. 우울함이 사라졌다.
(→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단기 과제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4. 정신이 맑아졌다.
(→ 먹는 시간을 줄이자 피곤함이 줄었고, 좀 더 생산적으로 지내게 됐다.)
간헐적 단식 8개월째인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철저하게, 매일 매일 간헐적 단식을 지키고 있진 않다. 하루 24시간을 쪼개 16시간 금식, 8시간 음식 섭취를 지키진 않는다는 뜻이다.
대신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고 난 후 16시간을 공복으로 있으려고 한다. 16:8을 하루 시간에 맞춰 기계적으로 지키지 않고 식사 시간이 길어졌더라도 공복을 맞추는 방식으로 했다.
내게 있어 간헐적 단식을 두 가지 신화를 깨는 과정이었다.
1. 건강하려면 하루 세끼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
2. 매일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최대한 배가 고플 때 먹고, 음식물을 소화하기 위해 몸이 에너지를 쓰는 시간을 줄여주려고 했다.
간헐적 단식을 하기 전 음식물 섭취 패턴
오전 10시 출근 → 직장 동료가 건네는 계란 2개 또는 편의점에서 사온 바나나 2개, 미리 사다놓은 젤리 1봉지, 커피 머신에서 뽑은 커피 2잔
오후 1시 점심시간 → 동료들과 점심. 메뉴는 주로 찌개, 제육볶음, 순댓국 등 한식 백반 메뉴
오후 2시 사무실 복귀 → 커피 1잔, 동료가 건네는 과자 한 줌, 내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젤리 1봉지
오후 4시 → 동료가 건네는 빵 1개, 커피 1잔
오후 7시 퇴근 → 동료와 저녁 또는 마트에 들린 후 (거의 매일 마트 갔음. 냉장고 꽉 차도 새로운 식재료 보면신기해서 뭐라도 하나 사곤 했음.)
오후 8시 30분 귀가해 저녁 식사 (주로 밥, 고기 등을 함께 먹는 살짝 거한 식단)
오후 9시 과일 (참외면 참외 1개, 사과면 사과 1개, 방울토마토면 20~30개 등 과하게 먹음)
부끄럽지만 스스로 식사량이 많은 편이지만 간식은 먹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써놓고 보니 시도 때도 없이 먹고 있었다. 그게 식사든 간식이든 부피가 크든 작든.
간헐적 단식 8개월째
오전 10시 출근 → 물 한잔 또는 공복 시간이 16시간이 넘으면 동료가 건네는 샌드위치 한쪽
오후 1시 → 점심. 주로 외식. 샐러드, 단백질, 나물 등 반찬이 골고루 나오는 뷔페형 밥집
오후 2~3시 → 물 또는 홍차 한 잔.
오후 7~8시 → 저녁 식사. 약속 있으면 살짝 거한 식단. 8~9시 이후는 금식
엄격한 간헐적 단식을 하려면 금식 기간에는 커피와 차도 마시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데, 아주 철저히 지키진 못했다. 그래도 공복 기간에는 물을 마시려고 애썼고, 커피나 홍차는 식사 가능 시간에만 마시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커피 마시는 횟수가 줄었다. 티타임할 때도 병에 든 물을 마시는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한잔도 안 마시면 안될 정도로 커피를 좋아하진 않아서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커피(아메리카노), 차, 물 정도는 마음껏 마셔도 된다는 사람도 있다.
젤리, 과일 등 간식 섭취량이 현저히 줄었다. 주변에서 권하면 가끔, 먹고 싶을 때 가끔 사 먹는 정도. 나는 지금도 과일을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매일 저녁 식사 후 과일을 꼭 먹어야 했다. 그것도 꽤 많은 양.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별로 어렵지 않게 과일을 적게 먹게 됐다.
"과일을 끊어야지" 결심해서가 아니라 ① 입이 심심해서 먹지는 않게 됐고 ② 맛있다고 해서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진 않게 됐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할 수 있지만, 그냥 루틴이 된 것 같다. 강제적이라도 시간을 정해놓고 먹다보니 의외로 정해진 시간에 사람의 위장에 넣을 수 있는 음식물 양에는 한계가 있었다.
몇 시간 뒤 소화가 조금 됐다고 해서, 달리 말하면 배가 꺼졌다고 해서 ① 입이 심심한데 먹을까? ② 눈 앞에 귤이 맛있어 보이는데 먹을까? 하는 생각을 안하게 됐다. 배가 부르지 않을 때 상쾌함을 알게 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간헐적 단식 1~2개월때와 달라진 점
지금은 도시락을 싸지 않고 식사 일기도 쓰지 않는다. 식단조절이 조금 느슨해진 것일 수도 있는데, 살이 급격히 찌거나 -요요가 오거나- 폭식을 하진 않는다. 오히려 샐러드 위주로 먹던 것에 비해 외식을 하니 칼로리 섭취는 더 늘었을 것이다. 조금은 몸에 루틴이 생긴 거랄까.
회사 근처 뷔페식 밥집에서 꽤 자주 점심을 먹지만 의외로 과식을 하지 않는다. 배가 부르다는 느낌은 물론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적은 양을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걸 인지하고, 아예 뜰 때부터 먹을 만큼만 뜨게 된다.
다른 무한리필 식당이나 뷔페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① 어쨌거나 본전은 못 뽑는다 ② 먹고 싶은 걸 여러가지 먹는데 의의를 두자 라는 나만의 원칙이 생겼고 "돈 아까운데 먹자" 또는 "실컷 먹자" 같은 마음은 많이 사라졌다.
간헐적 단식 8개월째 몸의 변화는 무엇일까?
1. 살이 빠졌다.
2. 절제력이 커졌다.
3. 우울함이 사라졌다.
4. 정신이 맑아졌다.
+
5. 8개월째 변화한 몸상태를 유지하다보니 평정심이 생겼다.
6. 하루 16:8을 지키지 못해도 다음날 리셋할 수 있어 절망에서 빠져나와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는 회복탄력성 지수가 높아졌다.
간헐적 단식 초기 그대로다. 당시 내가 의도치 않게 간헐적 단식을 하게 된 건 다이어트 때문이 아니었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 스트레스가 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주변 상황 때문에 우울해하느니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게 간헐적 단식으로 이어졌다.
최근 몇 개월간 당시와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예전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적게 받고 내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하게 됐다.
특히 간헐적 단식을 (비교적) '오래' '유지'한다는 데서 오는 5, 6번 변화의 도움이 컸다. 시간의 힘이라고 할까.
8개월째 간헐적 단식을 하다보니 습관까진 아니어도 꽤 루틴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건네는 간식을 부드럽게 거절하고, 간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잘 안하게 됐다. 또 어쩌다 간식을 먹어도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해왔다는 자신감 같은 거다.
또 어떤 날은 16:8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새벽 2시에 먹고 잠들었어도 다음날 16시간 공복을 하면 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어졌다. 모든 게 무너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무뎌지는 게 아니라 이미 벌어진 일을 슬기롭게 수습하는 방법을 알게 된 거다.
간헐적 단식이 뭐가 대단하냐, 무리한 다이어트 방법이다, 속으로 병든다 등 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음식으로 더 이상 몸에 무리를 주지 않게 된 것, 진짜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 눈 앞에 있으니 먹는 행동(과 그로 인한 자괴감)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간헐적 단식을 하는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