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것보다 안하는 것을 해보자
어쩌다보니 자꾸 체험기 같은 내용을 쓰게 된다. 하지만 실제 음식 줄이기를 해보면서 겪은 일이라 체험기라는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제목 그대로다. 하루에 16시간을 굶고 8시간 동안 먹기를 해봤다. 5월 말부터 시도했으니 이제 두 달이 다 돼 간다. 중간에 이런 저런 이유로 달성하지 못한 날도 많다. 성공한 날을 모아보면 한 달 쯤 된다.
변화를 말하기 전에 음식 중독을 치료하게 된 상황부터 말해야겠다. (몸의 변화가 궁금하면 아래로 쭉 내리면 된다!) 우선 다이어트 목적은 아니었다. 물론 다이어트를 우선 해야할 정도로 살이 쪘지만 일단 다이어트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니었다.
5월말의 내 심리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업종과 업태 특성에 따라 회사는 오르락 내리락했다. 팀을 가리지 않고 직장동료 10여명이 퇴사했다. 당연하겠지만 좋게 관둔 경우는 없었다. 사람 때문이든 회사 사정 때문이든 아름답지 않은 이별이었다.
남은 우리는, 또 나는, 우리대로, 나대로 힘들었다. '나도 관둬야 하는 것 아닐까?' '괜히 가만히 있다가 돌이킬 수 없는 패배자가 되는 것 아닐까?' '이대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회사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하니 '카더라'를 듣고 서로 이야기를 맞춰볼 수 밖에 없었다. "언제 그만두실 거예요?"가 인사일 때도 있었다. 속상해서, 불안해서, 뭘 해야할지 몰라서 회사가 끝나고 삼삼오오 모였다.
우리는 "저녁 먹고 가자"는 말로 서로에게 기댔다. 어느 날은 수제 버거였고 어느 날은 치맥이었다. 훠궈 같은 특식도 있었다.
당연히 살이 쪘지만 사실 진짜 답답한 건 따로 있었다. 이 일의 원인과 문제는 내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란 것. 그때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뭔데?" 답은 하나였다. "응, 바로 나."
그래서 시작했다. 내가 가장 절제력이 없는 분야가 뭘까. 먹기와 운동이었다. 매 끼니 많이 먹는 게 식습관이었다. 운동은 잘 시작하지도 않았지만 어렵게 시작해도 며칠 못 갔고, 어떤 동작이든 선생님이 지시한 분량을 끝내본 적 없었다.
그렇게 시작한 운동은 발레였고, 음식분야에선 한 번에 먹는 식사량 줄이기였다.
16시간 굶고 8시간 먹기는 간헐적 단식의 한 종류다. 굳이 간헐적 단식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다만 원래 아침을 안 먹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간헐적 단식이 됐다.
간헐적 단식에 대한 전문가 의견은 제각각이다.
건강에 도움 된다
건강 해친다
내가 시도한 식단은 다양했다. 저탄수화물식, 채식, 고단백식 (ex-소지섭 스프, 돼지갈비 샐러드), 클렌즈주스 등 이것 저것 다 해봤다. 탄수화물이라고 딱히 안 먹지 않았다. 대신 고지방식은 피했다. 특정 방식을 정하기 보다는 양을 줄이는데 더 초점을 맞췄다. 따로 치팅데이를 두지도 않았다.
음식 조절하지 않던 때 하루 섭취 패턴
오전 10시 출근 → 직장 동료가 건네는 계란 2개 또는 편의점에서 사온 바나나 2개, 미리 사다놓은 젤리 1봉지, 커피 머신에서 뽑은 커피 2잔
오후 1시 점심시간 → 동료들과 점심. 메뉴는 주로 찌개, 제육볶음, 순댓국 등 한식 백반 메뉴
오후 2시 사무실 복귀 → 커피 1잔, 동료가 건네는 과자 한 줌, 내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젤리 1봉지
오후 4시 → 동료가 건네는 빵 1개, 커피 1잔
오후 7시 퇴근 → 동료와 저녁 또는 마트에 들린 후 (거의 매일 마트 갔음. 냉장고 꽉 차도 새로운 식재료 보면 신기해서 뭐라도 하나 사곤 했음.)
오후 8시 30분 귀가해 저녁 식사 (주로 밥, 고기 등을 함께 먹는 살짝 거한 식단)
오후 9시 과일 (참외면 참외 1개, 사과면 사과 1개, 방울토마토면 20~30개 등 과하게 먹음)
스스로 군것질은 많이 하지 않고 끼니 때만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적어놓고 보니 아니었다. 여기에서 직장 동료가 건네는 간식, 앞으로 사양하기로 했다. 미안해서 받아두면 버리기 아까워 꼭 먹곤 했다. 내가 사두던 간식도 끊었다. 점심 먹기 전까지는 물 외 음식물은 먹지 않기로 했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다녔다. 따로 계량한 건 아니고 음식 종류에 따라 크고 작은 밀폐용기에 담았다. 외식보다는 적은 양이었다. 저녁은 7시 이전에 먹기로 했다. 과일은 절대 식사 후에 먹지 않기로 했다.
앞에서 말한대로 갑작스런 약속이 생기거나 가끔 잡히는 회식 때문에 지키지 못한 날도 있었다. 구글 keep앱에 매일 먹은 음식을 쓰고, 16시간 금식을 지키지 못한 날은 메모지 색깔을 다르게 했다. 단순히 기록용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도구로 썼다. 다른 색깔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려는 심리가 내가 정한 룰을 지키는데 도움이 됐다.
16시간 굶고 8시간 먹으면서 생긴 변화
1. 살이 빠졌다.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었지만 외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체중 감량이다. 원래 체중을 재지 않는 편이고, 살 때문에 한 게 아니라 지금도 체중은 모른다. 다만 안 들어가던 옷이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보는 걸로 봐선 5kg 이상 빠진 것 같다. 특정 부위가 빠진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살이 빠졌다. (마침 16시간 금식 한달째 사진이 있어 편집했지만 남부끄러워서 사진은 올리지 못했다.)
2. 절제력이 커졌다. 보통 안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안하는 걸 해보고 나니 먹는 것 뿐 아니라 모든 일에 절제력이 생겼다. 사실 명상의 도움이 컸다. 제대로 명상을 한 건 아니지만 '지금 느끼는 감정을 알아채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향으로 바꿔나간다' 라는 기본 규칙이 정말로 도움이 됐다. 며칠 전 썼던 글에서 말한 EAT.Q 식사법도 이 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면 운동이 끝나고 치킨집을 지나치면 "와, 치킨 냄새 맛있게 나네. 치킨 먹고 싶다"라는 생각을 한다. 오히려 이런 생각을 일부러라도 한다. 그리고 나서 "근데 치킨 먹으면 또 후회할거고 그러면 우울할 거야. 뭘 사서 우울하냐. 아는 맛인데"라고 생각한 후 집에 가서 샤워하고 밀린 집안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잔다.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말한 다이어트 비법, "아는 맛이라서 안 먹어도 된다"라는 건 진리였다.
물론 절제를 뿌듯해하면 절제하지 못한 순간에 화가 난다거나 폭식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달성하지 못한 날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노력했다.
3. 우울함이 사라졌다. 깨달음이나 도를 터득한 건 아니다. 여전히 자잘구레한 스트레스는 받는다. 다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우울감을 떨쳐냈다. 그 에너지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게 됐다. 나도 믿기지 않지만 진짜로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2번에서 오는 자신감도 있었을 것이다.
4. 정신이 맑아졌다. 너무 허황된 얘기 같지만 사실이다. 일단 졸음이 적어졌다. 점심을 먹고 오면 항상 잠이 왔다. 음식을 소화하는데 에너지를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몸이 가벼워졌다. 그 기분이 정말 좋다. 배부르게 먹고 느낀 거북함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다.
대표적인 변화는 4가지지만 세세하게 따지면 더 많다.
1. 살이 빠지면서 못 입던 옷을 입게 돼 새옷을 안 사도 된다. 식비는 3분의 1 이하로 줄었다.
2. 절제력이 커지면서 운동 습관도 붙었다. 순간 순간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면 이번 동작 완성이야'라는 마음을 먹게 된다. 시작은 발레였지만 요즘엔 필라테스까지 하게 됐다.
3.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장기적인 불안감이 있더라도 단기적인 과제에 훨씬 쉽게 몰입한다. 예를 들어 "회사의 앞날은 내가 장담 못하지만 나한테 주어진 일을 잘 해내고 이걸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떻게 활용할 지 고민해보자"라는 태도가 생겼다.
4. 정신이 맑아지자 신기하게 시간 여유가 생겼다. 얼이 빠져 있는 시간이 생산적 활동을 하는 시간으로 바뀐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다.
아직까지 폭식한 적은 없다. 아니다, 딱 한 번 있었다. 회식에서 소고기 3인분을 먹고 난 후 이번엔 잠시 고기를 끊어보자고 다짐했다. 자꾸 리셋되긴 하지만 3주째 오락가락 채식을 하고 있다.
사실 간헐적 단식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많다. 건강을 해친다거나 몸이 오히려 지방을 축적하는 체질로 바뀐다거나…. 일단 다이어트 목적이 아니었기에 어느 정도 흘려 들었다. 또 이왕 하는 거 평생 음식 앞에서 절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이건 간헐적 단식에 대한 체험기라기 보다는 '무엇이든 안하는 걸 해보는 것'에 대한 체험기라고 봐야 한다. 때로는 안해서 얻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안하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대한 원동력을 얻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