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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최은미)

by 카마

마주.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대해 정면으로 향하여.’, ‘서로 똑바로 향하여.’이다.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향하여) 마주하고, 타인과 (서로 똑바로 향하여) 마주하는 것에 대한 소설이다. 주인공 나리는 현재의 삶 속에서 이유가 명확해 보이지 않는 공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 공허감이 코로나19로 대표되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탓인지, 유년기의 어느 시점에 단절된 과거의 경험 탓인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수미와 서하 모녀 탓인지 명료하지 않다. 자신의 무력감과 공허감의 원인을 찾고 극복하려면, 현재의 나리가 애써 외면해 왔던 과거의 나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리는 만조 아줌마를 연결점으로 과거의 공간과 기억을 탐색하고 그동안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과 감정들을 떠올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다.

웃으면 눈꼬리가 처지는 반달눈에 강아지상을 지닌 나리.
안 웃으면 참해 보이고, 웃으면 참한 데다 귀엽기까지 한 얼굴을 지닌 주인공 ‘나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아지 가면을 쓰고 여성스럽고 귀엽고 예쁜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고, 강아지 가면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느낀다. 사회적 시선과 가면에 자신을 맞추고 가면 밖으로 삐죽하게 나오는 것들을 억누르고 억압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그녀에게 만조 아줌마는 가면 너머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고, 가면을 앞에 두고 힘겹게 사투하는 나리에게 힘을 북돋워 주는 정신적 멘토였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사회적 관습에 틈을 내어 나리가 숨을 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어머니는 그런 만조 아줌마를 나리와 분리하고 나리에게 강아지 가면을 씌우려고 했지만 끝내 성공하지는 못했다.

‘내가 온전히 감각해 본 순간을 거치고서야 수미의 신발에 발을 넣어볼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은 시간이 더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있는 그대로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외부로 시선을 돌려 타인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의 상황이 엉킨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나의 마음에 걸려 있는 건 무엇인지, 어느 기억의 잔상에 묶여 있는지, 마음이 향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렇게 자신을 감각하면, 내면 속의 투사, 회피, 자기 합리화 등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마음의 잔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지만, 모든 것은 외부와 연결되어 있고 타인과 맞물려 관계를 형성한다. 자신의 내면 속 삐걱거림을 바로잡고 나면 그제야 타인의 아픔이 보인다.

소설에서 작가는 인물들의 미묘한 감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인간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한 사람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내면 성찰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그 너머의 사회 공동체의 모습까지 확장해서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힘든 시기를 지내며 소상공인 및 소시민이 겪어야 했던 경제적 결핍, 사회적 고립의 모습이 소설 속에 투영되어 있으며, 딴산 마을을 통해 사회적 낙인을 짊어진 소외계층의 힘겨운 삶을 드러내고 있으며, 소수를 향한 다수의 횡포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이 소설은 코로나19 이후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개인의 삶과 타인과의 관계, 사회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줌과 동시에 깊은 내면적 울림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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