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의 공감
겨울이 끝날 즈음이었다.
블랙야크 100대 명산 완주를 향해 용봉산을 오르던 날.
등산객은 드물었고, 정상은 조용했다.
산 아래는 아직 겨울이었지만,
정상엔 햇살이 미묘하게 봄의 냄새를 흘리고 있었다.
정상석 앞에서 인증 사진을 찍고
김밥을 꺼내 점심을 먹으려던 찰나,
어디선가 인기척이 느껴졌다.
주위를 돌아보니
고양이였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둘, 셋, 넷…
금세 스무 마리 가까운 고양이들이
내 주변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의지를 갖고 둘러쌌다.
처음엔 조금 긴장했다.
야옹 소리, 눈빛, 애교, 그리고 경계심까지
고양이마다 표현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나를 향해 어떤 기대를 보내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가방에 손만 올려도
가장 앞에 있던 녀석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람에게 익숙해진 눈빛.
먹이를 기대하는 태도.
이미 수많은 등산객들과의 교류 속에서
공감하는 법을 배운 듯했다.
나는 가방을 뒤적이다가
마땅한 게 없어 육포 하나를 꺼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가 툭툭 다가오더니
재빠르게 육포를 낚아챘다.
대빵 고양이.
크고 당당한 녀석이
사방을 훑으며 천천히 걷더니
육포를 독차지하고는 멀찍이 가서 씹기 시작했다.
주변의 다른 고양이들은
그저 서성이며 바라보기만 했다.
어쩐지 더 안쓰럽고,
더 슬퍼 보였다.
그때,
한 여자분이 내게 다가와
츄르 하나를 건넸다.
“이거 고양이들 주면 좋아해요.”
말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조심스럽게 뜯어
바닥에 짜주었다.
고양이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김밥 한 조각을 입에 넣고
그들 사이를 바라봤다.
고양이와 사람이
말도, 언어도 없는데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건 분명 공감이었다.
고양이들이 보인 ‘배고프다’는 의지에
내 마음이 반응했다.
나는 가방을 내리고
먹을 걸 꺼내고
위협이 아니라는 신호를 보냈고
그들은 다시
내 곁에 머무르며 반응했다.
그 짧은 순환 안에
말은 없었지만
존재감은 분명히 있었다.
십여 분간 이어진 그 교류 속에서
나는 이상하리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비록 그것이 스무 마리 고양이라 해도.
보통 동물과의 감정을 ‘교미’라 표현하지만,
그것도 넓게 보면 공감의 일부일 것이다.
의지 없이 다가오는 존재는 없고
반응 없는 존재는 잊히기 마련이다.
그날 용봉산 정상에서
스무 마리 고양이와 나눈 조용한 공감의 순환.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존재를 묘하게 강하게 해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