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도 공감을 통해 존재한다.
나는 안XX 브랜드를 좋아한다.
무난한 색, 단정한 디자인, 무엇보다 편안함이 좋았다.
한때는 지나칠 정도였다.
보이는 대로, 색깔별로 다 샀던 시절이 있었다.
안XX가 신발을 출시했을 때도 그랬다.
팬심이 발동해
색상별로 세 켤레를 샀다.
디자인도 만족스러웠고,
신었을 때 발을 감싸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그 후로 나는 그 신발들을 돌아가며 신고 다녔다.
시간이 꽤 흘렀다.
가죽은 약간 빛이 바랬지만,
아직도 쓸 만하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 편해졌다.
발에 피로감도 없고, 이상하게 튼튼하다.
그러다 어느 날,
신발장을 정리하다가
비슷한 시기에 샀던 아XXX 신발을 꺼냈다.
그 신발 역시 꽤 비쌌고,
그땐 꽤 마음에 들어 샀다.
그런데,
안쪽 안창이 삭아 주저앉아 있었다.
거의 신지도 않았는데,
형체가 무너져 있었다.
순간 속상했다.
비싼 돈을 주고 산 건데,
고작 몇 번 신었을 뿐인데 이렇게 되다니.
다시 시선을 돌렸다.
안XX 신발.
내 발에 맞춰진 듯 편안한,
아직도 멀쩡한 그 녀석.
왜 이렇게 차이가 날까.
생각해보면,
안XX 신발은 오랫동안 내 발과 함께했다.
수많은 길을 걸었고,
수많은 날씨를 함께 견뎌냈다.
내 움직임에 반응했고,
나는 그 반응을 느꼈다.
아XXX 신발은 달랐다.
몇 번 신었을 뿐,
그저 신발장에 갇혀 있었다.
결국 신발도 공감 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아무리 좋은 재료와 기술로 만들어졌다 해도,
주인과의 교감이 없다면
그건 여전히 그냥 ‘물질’일 뿐이다.
물건은 공감을 통해 형태를 유지한다.
내 발에 가장 잘 맞는 이유,
그건 시간이 만든, 공감의 흔적이다.
가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이상한 생각이 든다.
물질이 살아 있는 건 아닐까.
아니,
살아 있는 건 아니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살아 있게 만든 건
어쩌면 공감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내 발을 기억하는 그 신발을 꺼내 신는다.
걷는 동안,
나는 조금 더 편안해지고,
조금 더 존재하는 느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