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 팀 막내였다.
작고 마른 체격에 말수도 적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
회의 중에도 꼭 필요한 말만 했고, 회식 때도 늘 조용히 앉아 있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운동 얘기엔 관심이 없었고, 정치나 연애 이야기에도 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쩐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냥 배경처럼 존재하는 사람.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런 사람 하나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MBTI는 INFP였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이는,
표현보다 상상에 익숙한 사람.
그가 음악을 한다는 사실은
어느 늦은 회식 자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누군가 장난처럼 “혹시 취미 있어요?”라고 물었고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음악 좀 만들어요.”
우리는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그는 잠시 후 휴대폰을 꺼내,
자신이 만든 곡 하나를 조용히 틀었다.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멜로디는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리듬은 강렬했고, 멜로디는 섬세했다.
가사는 없었지만, 감정이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계속 듣고 싶은 음악.
특히 의외였던 건, 그가 만드는 음악이 라틴 음악이라는 점이었다.
“라틴 음악?”
“응, 보사노바도 좋아하고 살사 리듬도 자주 써요.”
그렇게 말하던 그의 표정은,
그동안 내가 보아온 그 어떤 얼굴보다 생생했다.
“몇 곡이나 만들었어?”
“한… 150곡 넘게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렇게 많은 곡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그의 노트북 안에만 존재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순간, 아주 선명한 생각이 들었다.
공감 없이는, 존재도 없다.
아무리 강렬한 의지도
세상에 반응이 없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누군가 들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세상에 없는 음악이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한 곡만이라도 올려봐. 누군가 듣고, 누군가 반응하면, 그건 진짜 존재하게 되는 거야.”
며칠 뒤 그는
그 중 하나의 곡을 유튜브에 올렸다.
나는 그 영상의 첫 번째 '좋아요'와 첫 번째 댓글을 남겼다.
“이 곡, 참 좋네요. 자꾸 생각나요.”
그로부터 한 달쯤 후,
사무실 복도에서 그가 웃으며 말했다.
“요즘 하루에 세 번은 유튜브 들어가요.”
“왜?”
“조회수 올라가는 거 보는 재미에 빠졌어요.”
그의 음악은 드디어 세상에 반응을 얻기 시작했다.
작지만 분명한 공감이 시작된 것이다.
150개의 곡은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의지가 있었으나,
단지 반응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가 그 음악을 들려준 그 순간,
나는 그의 무대에 조용히 앉은 관객이 되었다.
우리는 그렇게
누군가의 숨겨진 마음에 반응하고,
그 반응 속에서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날 밤,
나는 아무도 보지 않던 무대에서
누군가의 존재가 처음으로 빛나는 걸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