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의지가 만들어낸 세상의 공감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원래는 로마에서만 시간을 보내려 했다.
하지만 일행 중 한 명의 추진력 덕분에
갑자기 렌트카를 빌려 북부 도시들을 훑듯 달리게 됐다.
쉼 없이. 계획도 없이.
그렇게 피렌체에 도착했다.
성당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중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다비드 상을 볼 수 있다는 정보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다비드.
나의 영어이름이기도 하고,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그 조각상을 처음 봤을 때부터
언젠가 꼭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미켈란젤로.
혼신을 다하는, 끝없는 고독과 예술의 상징 같은 사람.
그가 만든 조각 앞에 언젠가 서보고 싶었다.
하지만 일행은 모두 말렸다.
예약도 없고, 줄도 길고, 시간도 빠듯하다고 했다.
섭섭했지만, 이해는 됐다.
다만,
그게 나의 의지를 꺾을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다.
나는 말없이 아카데미아 미술관 입구까지 향했다.
일행도 말은 안 했지만 따라왔다.
줄은 생각보다 길었고,
그들은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햇빛은 강했고,
영어는 서툴렀고,
시끄러운 거리와 복잡한 상황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뭔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길가에 있던 관광 안내소로 들어갔다.
직원에게 입장 방법을 물어보려는 찰나,
그는 아무 말 없이 내게 티켓 하나를 건넸다.
“지금 바로 입장하면 됩니다.”
그 한 마디.
그리고는 뒤돌아서 가버렸다.
순간 멍했다.
농담인가 싶었다.
일행들과 함께 확인해봤다.
진짜였다.
줄도 필요 없고, 예약도 필요 없는,
바로 입장이 가능한 티켓이었다.
돈도 내지 않았다.
감사 인사를 할 틈도 없었다.
나는 그 티켓을 들고,
망설임 없이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은 응원했지만,
살짝 부러운 눈치였다.
그리고 나는,
다비드 상 앞에 섰다.
한 시간 넘게.
360도로 다비드상 주위를 천천히 걸으며,
그 조각을 바라봤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조용히 감탄하며.
그 순간 느꼈다.
이건 단순한 조각이 아니었다.
미켈란젤로의 의지.
그의 고통, 집중, 힘, 치열함.
수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흘린 감탄과 감정.
그 모든 것들이
조각 표면 위에 보이지 않게 새겨져 있었다.
500년의 시간이,
그 다비드 상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시간 안에 잠시 서 있었다.
아마도,
그때 내가 품은 작은 의지가
세상 어딘가를 건드렸던 건 아닐까.
나를 말리지 않고 따라와 준 일행.
말없이 티켓을 건네준 그 직원.
그들은,
내가 발신한 강한 ‘의지’에
반응해준 사람들이었다.
그게 공감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그들의 작은 반응 덕분에
나는 오랜 시간 동경해온 존재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날 피렌체의 오후,
나는 예술과, 시간과, 사람들과
하나의 조용한 공감 속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