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길을 따라

공감의 창발, 진정한 존재의 의미

by kamaitsra

나는 처음부터 작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한 알갱이, 홀로 떠도는 분자였다.
나는 여전히 나였지만, 아무도 나를 물이라 부르지 않았다.

나에게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더 큰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그저 흩어진 기체로 남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가진, 살아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나는 비슷한 존재들을 찾아 움직였다.
서로 닿고, 부딪히고, 미세하게 당기고 밀치는 반복 속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결합이 시작됐다.

몇 개의 분자들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함께 뭉쳤다.
처음에는 느슨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결심했다.
우리의 힘을 합쳐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자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우리의 존재는 조금 더 확실해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우리가 모인다고 해도, 세상은 우리를 물이라 부르지 않았다.

그때 태양이 우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 빛과 열은 우리를 흔들었고,
우리는 뜨거워졌다.
몸이 가벼워져 하늘로 오르는 그 느낌—
처음에는 두려웠다.
그러나 이 변화는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우리는 더 높이, 더 멀리, 서로를 놓지 않은 채 떠올랐다.

그곳에서 더 많은 나를 만났다.
수많은 동료가 공중에서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군락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름이라고 불렀다.

구름이 된다는 건, 세상에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빛이 우리를 스칠 때, 우리는 하얗게 빛났다.
하늘을 유영하며 세상을 내려다볼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이제 우리가 조금은 의미 있는 존재가 된 거야.”

하지만 이마저도 끝이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갈증을 느꼈다.
더 확실하게, 더 단단하게 세상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몸이 떨렸고, 우리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서로의 손을 더 꽉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하얀 구름이던 우리가, 이제는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내리고 있었다.

떨어지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해방이었다.
중력이라는 힘이 우리를 부르듯 끌어당겼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길.
우리는 강이 되었고,
그 강은 다시 바다를 향해 달렸다.

바다가 되는 순간, 나는 압도됐다.
수없이 많은 나, 나와 닮은 존재들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몸 안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의심할 수 없는 하나의 실체였다.
세상은 우리를 ‘물’이라고 불렀다.

이제 우리는 생명의 품이 되었다.
씨앗을 틔우고, 숲을 살리고,
작은 벌레부터 거대한 고래까지,
모든 생명의 숨결을 이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가끔 우리는 다른 얼굴이 되기도 한다.
거센 바람과 손을 잡으면 폭풍이 되고,
분노를 품으면 쓰나미가 된다.
누군가는 우리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라진 세상을 상상해보라.
모든 생명이 목숨을 잃고,
땅은 갈라지고,
하늘은 텅 비게 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하다.
살리고, 이어주고, 순환하는 일.
때로는 파괴가 그 길의 한 부분일 뿐이다.

나는 다시 바다 위에서 하늘을 바라본다.
언젠가 또 태양이 나를 불러올 것이다.
그럼 나는 다시 증발해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강이 되어,
다시 돌아오리라.

이것이 나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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