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공감
일요일 새벽, 오랜만에 동네 호수공원에 나갔다.
낮에는 너무 더워서 나갈 엄두가 안 났지만,
새벽의 공기는 걷기 좋았다.
산책길은 무성한 잎으로 덮여 있었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생명의 숨소리가
한여름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려줬다.
몸이 조금 지칠 때쯤,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 순간 내 시야를 채운 건 개미였다.
검고 반짝이는 몸을 세 부분으로 나눈 작은 생명들.
앞의 개미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뒤에서 성실히 옮기고 있었다.
그 줄은 마치 군대 같았다.
질서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신호가 오가는 듯했다.
불평 한마디 없이 움직이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시선을 돌리자 발밑에 민달팽이가 있었다.
새벽이라서일까,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존재다.
어릴 적 시골에서나 보던 민달팽이를
성인이 되어 다시 보니 낯설고 조금은 징그럽다.
하지만 그 반짝이는 점액을 따라가다 보니
묘한 매력이 느껴졌다.
마치 “급할 것 없다”는 메시지를
천천히 남기고 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들자 참새 몇 마리가 잔디 위를 쪼고 있었다.
손을 뻗는 시늉만 해도 번쩍 날아올랐다가
다시 돌아와 아까 하던 일을 이어간다.
그 끈질김이 대단했다.
집으로 향하는 길, 화단에 앉은 나비가 눈에 띄었다.
날개를 접었다 펼칠 때마다
청색과 흰색 무늬가 햇빛에 반짝였다.
꽃 위에서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은
도무지 ‘곤충’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갑자기 더 많은 생명체들이 궁금해졌다.
호수 쪽을 보니, 수면 아래 물방개가 맴돌고 있었다.
작은 원을 그리며 재주를 부리듯 헤엄치던 모습은
이상하게 넋을 빼앗았다.
가끔은 낙엽을 밀어내는 동작이
묘하게 의도적인 듯 보였다.
멀리 나무 위에선 까치가 울고 있었다.
까만 깃털 끝이 햇빛에 푸르게 빛났다.
나는 까치를 늘 거친 녀석이라 생각했다.
다른 이의 시선을 개의치 않고
거침없이 자기 길을 가는 모습 때문이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구에 인간만 있었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우리는 늘 자연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들은
우주의 상상력이 만든 예술 작품 같다.
거대한 몸집으로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
꽃 속에서 생을 마치는 꿀벌,
밤하늘을 가르는 박쥐,
비 내리는 숲길을 미끄러지듯 흐르는 달팽이.
그들은 모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빛깔로 존재한다.
이 다양성이 없다면
자연은 무너지고, 우리의 삶도 빛을 잃는다.
생태계는 균형을 원한다.
그리고 그 균형은 다양성에서 온다.
같은 종만 가득하다면
그 세계는 단숨에 취약해진다.
나는 이 풍경 속에서 배운다.
다양함은 장식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라는 것을.
작은 곤충 하나에도
서로 다른 색깔과 무늬가 있는 이유,
그건 생명의 언어이자 자연의 지혜다.
나는 자연을 바라보며 공감한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의지를 드러내고,
반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내 마음은 질리지 않는 설렘으로 가득 찬다.
개미의 부지런함을,
민달팽이의 여유를,
참새의 집요함을,
나비의 우아함을,
물방개의 고집을,
까치의 거침없는 자유를.
오늘도 나는 충만하다.
이 다채로운 생명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