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에너지장
얼마 전, 일본 오키나와를 다녀온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떠난 여행이어서인지 그는 돌아오자마자 나를 붙잡고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공감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한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고, 그동안 벼르고 미루다 겨우 의견을 맞춰 다녀왔기에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아마 그 해방감이 여행 전반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오키나와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그야말로 완벽했다고 한다. “날씨가 사람 기분을 좋게 한다는 말이 딱이었어.”라며 하늘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솔직히 한국 하늘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그 하늘 아래 두 팔 벌리고 감상에 젖었을 친구 모습을 상상하니 그 순간의 하늘은 분명 특별해 보였다. 입국하자마자 힘들게 예약한 렌터카를 찾고, 커피를 뽑아 마시고, 인형뽑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매일 마시는 커피, 절대 하지 않는 인형뽑기였지만 다른 나라에서 하니 새로웠다며 설레어했다. 그 설렘이 여행의 공감에너지장을 이미 높이고 있었을 것이다.
숙소는 이름도 긴 ‘우미노 료테이 오키나와 나카마소’. 가족과 찍은 사진 속 어머니의 얼굴은 멀리서도 행복이 번져 보였다. 요즘 자식과 함께 먼 여행을 하는 부모가 드물다 보니, 그 자체가 큰 선물이었으리라. 사우나를 마친 후에는 료칸에서 제공하는 코스 요리를 먹었다고 했는데, 정신없이 들어서 메뉴와 맛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에서 비싼 오마카세 정도를 떠올리면 될 것 같았다. 잠들기 전에는 일본 편의점을 다녀왔다고 한다. 무슨 이벤트였는지 과자와 젤리를 한가득 사와서 내게 선물해 주었는데, 귤 젤리가 가장 맛있었다. 멀리 오키나와까지 가서 먹을 맛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웠다.
다음 날, 바다가 보이는 방에서 눈을 떴는데 아침 바다는 파도 없이 고요했다고 한다. 전날 밤, 모든 생명이 달빛 아래 잠을 청하듯 바다도 함께 잠들었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스킨스쿠버를 할 때면 아침바다와 일출에 넋을 잃곤 한다. 여행이란 건, 그렇게 익숙하지만 또 보고 싶은 장면 때문에 가는 게 아닐까.
그날은 추라우미 수족관을 방문했다. 입장권에 귀여운 고래상어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는데, 동그란 눈이 지금 이 친구의 반짝이는 눈과 닮아 있었다. 고래상어는 나도 좋아한다. 실제 바다 속에서 본 적이 있지만, 친구가 찍은 사진 속 고래상어는 더욱 거대하고 영롱했다. 줄지어 구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크기가 더 실감났다. 조금 부럽기 시작했다.
이후 일정은 돈키호테에서 쇼핑하고, 야경을 본 뒤 ‘지로쵸 스시’에서 저녁을 먹으며 마무리됐다. 그는 순간마다 탄성을 지르며 그 날의 공기와 감정을 그대로 꺼내 놓았다. 마치 나를 그 여행 속으로 데려가려는 듯이. 한국에 있었던 일본 같다고 말하면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온 친구에겐 섭섭할 것이다. 그는 그 여행을 몸과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이란 게 그렇다. 같은 산책이라도 나의 의지와 그곳의 공감에너지장이 다르면 경험은 완전히 달라진다. 나는 오늘도 공원에서 일상의 산책을 하지만, 그는 가족과 함께 두 번 다시 없을 오키나와에서 걸었다. 마음가짐, 그 의지에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은 반응한다. 그것이 나의 공감에너지장이다. 매일 대중교통 속에 끼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좁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는 그런 공감에너지장은 결코 좋을 수 없다. 한 번이라도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가는 건, 그 공감에너지장을 새롭게 채우는 최고의 방법이다. 아마 내가 친구의 여행 이야기를 고깝게 들은 건, 부러웠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