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의 책은 처음부터 세상에 환영받지 못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그의 사유의 정점에 해당하지만, 당시 사회는 그를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에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다.
왜 그랬을까? 첫째, 그의 사상은 당대의 기독교적 도덕 체계를 정면으로 거부했다. 신을 향한 복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던 사회에서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충격이자 모욕처럼 들렸을 것이다. 둘째, 그의 문체와 사유는 너무 파격적이고 난해했다. 기존 철학자들처럼 논증의 틀을 따르지 않고, 우화와 노래, 은유로 가득한 언어로 철학을 펼쳤으니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셋째, 그의 삶 자체가 외로운 방랑자의 삶이었다. 제도권 학문, 교회, 사회와 거리를 두었기에 지지를 얻을 기반이 거의 없었다.
이처럼 사회적 반응은 점차 줄어들었고, 그의 책은 생전에는 거의 읽히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도 공감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의 힘의 의지는 꺼지지 않았다. 그 곁에는 여전히 그를 알아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음악의 거장 바그너, 그의 가족들, 그리고 때로는 연인과 친구들이 그를 지탱했다. 이들의 반응이야말로 니체의 의지가 이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는 공감이론이 말하는 원리를 보여주는 한 사례다. 의지와 반응이 만나 공감이 성립할 때 존재는 비로소 유지된다.
그의 인생을 니체 자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 어릴 적부터 천재로 불리며 일찍이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고전문헌학이 아니라 철학에 자신의 무게를 실었다. 그 결과 세상을 누구보다 깊이 통찰했고, 기존과는 전혀 다른 생각들을 펼쳐냈다. 그러나 그 깊고 복잡한 사유는 그 자신에게도 고통이었다. 기준이 될 등불을 찾기 어려웠고, 바그너와의 우정, 루 살로메와의 사랑도 끝내 그를 채워주지 못했다. 결국 외로움이 그를 잠식했지만, 그는 그것을 철학적 에너지로 승화시켰다.
끊임없는 두통, 시력 저하, 위장병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초인의 의지로 격상시켰다. 고독과 고통을 영원회귀라는 개념으로 긍정하며, 마치 사명을 지닌 자처럼 자신을 초인으로 동일시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주인공 차라투스트라는 곧 그의 또 다른 자아였다. 병상에 누운 인간 니체는 초인 차라투스트라와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자신이 발견한 세계관을 승화했다.
공감이론은 이 과정을 이렇게 본다. 니체가 초인으로 자신을 투영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타인의 공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생이 끝까지 곁을 지켰고, 어머니의 보살핌, 지인들의 도움은 모두 니체의 의지에 대한 반응이었다. 즉, 니체의 존재는 철저히 관계적 공감 속에서 유지되었다.
공감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초인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다. 초인은 공감의 창발이자, 공감 시스템의 진화적 산출물이다. 집단적 공감이 쌓이고, 그것이 임계치를 돌파할 때 초인은 비로소 드러난다. 차라투스트라도 마찬가지다. 그는 혼자만의 사유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공감할 때만 진정으로 초인이 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보여준 장면은 상징적이다. 태양은 자신을 비추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다른 존재를 밝힐 때 비로소 기쁨을 얻는다. 차라투스트라도 마찬가지로, 혼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공감할 때 초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초인은 공감할 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