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에 반응하여 공감한다

의지와 반응

by kamaitsra

앞장에서 공감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그럼 공감은 언제 시작되는가. 무엇이 공감의 첫 신호를 보내는가.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찾는 데 그리 길지 않았다.


모든 공감에는 시작점이 있다. 그것은 언제나 의지의 출발이다. 의지란 무엇인가. 그 물음 앞에서 매번 머뭇거린다. 의지는 보이지 않지만 세계를 움직인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무게도 없지만 모든 것을 흔든다.


모든 존재는 존재하려는 방향을 가진다. 그 방향이 바로 의지다.




아침마다 커피머신 버튼을 누른다. 순간 압력이 물을 밀어낸다. 기계 안에서 들리는 짧은 진동 스팀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 그 작은 과정에서도 에너지는 방향을 가지고 움직인다. 겨울의 얼음이 봄을 기다리다 스스로 녹아내리듯 모든 움직임은 내부의 시작에서 비롯된다. 의지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출발점이다.


의지는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이다. 열은 차가운 곳으로 이동하고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 물리적 현상에도 방향성이 있다. 그 방향성이 곧 의지의 물리적 형태다.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 평형을 찾아가는 경향 그 모든 것이 우주의 의지처럼 보인다.


생명에게서 의지는 살고자 하는 충동이다. 세포는 분열하고 씨앗은 싹을 틔우고 동물은 먹이를 찾아 움직인다. 인간에게서는 이루고자 하는 의도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행동으로 옮긴다. 자연에게서는 형태를 유지하려는 법칙으로 드러난다. 산은 무너지지 않으려 하고 강은 바다로 가려 한다. 의지는 보이지 않지만 반응을 통해 증명된다.


의지는 반응의 원인이며 공감의 씨앗이다.




그런데 의지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반응이 없으면 의지는 허공에 흩어진다. 반응은 의지의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아무리 강한 의지도 반응이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반응은 의지의 거울이며 공감은 그 거울을 통해 비친 세계다.


공기 중의 진동이 벽에 부딪혀 메아리가 될 때 우리는 소리를 듣는다. 돌을 던졌을 때 물결이 퍼져 나가듯 의지는 반응을 통해 형태를 얻는다. 의지와 반응의 관계는 질문과 대답과 같다. 질문이 없다면 대답도 없고 대답이 없다면 질문은 허공에 흩어진다. 공감은 바로 그 대화가 성립된 순간이다.


의지는 물음이고 반응은 응답이며 공감은 그 사이의 울림이다.




창밖을 보면 해바라기가 태양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움직임을 본다. 광합성을 위한 생리학적 자극반응이지만 동시에 생존의 의지이자 빛에 대한 반응이다. 그들의 공감은 빛의 방향성을 매개로 이루어진다. 식물에게 말이 없어도 공감은 작동한다. 뿌리는 물을 찾아 뻗고 잎은 빛을 찾아 펼쳐진다.


숲을 걷다 보면 어미 새가 새끼의 울음에 반응하는 본능적 움직임을 본다. 감정 이전에 작동하는 공감 회로다. 새끼가 배고프다는 신호를 보내면 어미는 즉시 반응한다. 그 회로는 언어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직접적이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타인의 고통을 보면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거울 뉴런이 있다. 뇌 속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내 것처럼 재현하는 신경세포. 즉 의지와 반응은 생물학적으로 내장된 시스템이다.


의지는 살아 있으려는 충동이고 반응은 그것에 대한 생명의 예의다.




그런데 이상한 건 무생물도 반응한다는 사실이다. 전자기력을 보면 전자는 전하의 존재에 즉시 반응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끌어당기고 같은 극끼리는 밀어낸다. 강한 핵력에서 원자핵은 입자들 간의 공존을 위해 결속한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서로를 붙잡는 힘. 약한 핵력에서 붕괴와 전환의 순간에도 균형을 유지하려는 반응이 있다. 베타 붕괴가 일어날 때조차 에너지는 보존된다.


화학 결합은 서로 다른 원자의 에너지 상태가 균형을 찾으려는 과정이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이 되는 순간 전자를 공유하며 안정된 형태를 찾는다. 결합과 분리는 의지와 반응의 순환이다. 무생물이라 해도 반응을 멈추지 않는 한 공감의 체계 안에 있다.


나는 여기서 한 발짝 물러서서 생각한다. 그렇다면 생명과 무생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둘 다 반응하고 둘 다 의지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차이는 복잡도에 있을지 모른다. 생명은 더 정교한 반응 회로를 가졌고 무생물은 더 단순한 반응 구조를 가졌을 뿐. 본질은 같다. 모두 존재하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




사회로 눈을 돌리면 사회는 거대한 공감 구조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사회적 반응을 얻을 때 그것은 존재로 기록된다. SNS의 좋아요는 현대의 즉각적 반응 장치다. 누군가 글을 올리고 누군가 반응한다. 그 반응의 숫자가 많을수록 그 글은 더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이 피상적일수록 공감은 얕다. 클릭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반응은 진짜 공감인가 아니면 그저 자동화된 반사인가.


정치 문화 예술 모두 의지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서 작동한다. 예술가는 표현의 의지를 발산하고 관객은 감정으로 반응한다. 이 순간이 바로 사회적 공감의 발생점이다. 화가가 캔버스에 물감을 칠할 때 그것은 의지의 표현이다. 관객이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느낄 때 그것은 반응이다. 둘이 만나는 지점에서 공감이 발생하고 예술은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의지 반응 공감 이 세 가지는 순차적이지만 동시에 순환한다. 의지가 반응을 낳고 반응이 공감을 만들며 공감은 다시 새로운 의지를 일으킨다. 이 순환이 끊어지지 않는 한 세계는 계속 움직인다.


비가 내려 강이 흐르고 강이 바다로 가고 증발해 다시 구름이 된다. 이 순환은 에너지의 대화이며 공감의 순환 구조다. 태양의 열이라는 의지가 있고 물의 증발이라는 반응이 있으며 비라는 공감이 있다. 그리고 그 비는 다시 대지에 생명이라는 의지를 일으킨다.


의지는 시작이지만 공감은 다시 의지를 만든다. 세계는 이 반복으로 진화한다.




그런데 이 순환이 깨질 때가 있다.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반응이 없으면 공감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의 좌절 무력감 단절의 근원이다. 말해도 대답이 없는 관계를 생각해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 말을 하지 않는 부부. 의지는 있지만 반응이 끊긴 상태. 노래를 불러도 박수가 없는 무대. 가수가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데 객석은 조용하다. 시그널을 보냈지만 돌아오지 않는 신호. 메시지를 보냈는데 읽음 표시만 뜨고 답장이 없다.


반응의 부재는 존재의 고립을 낳는다. 의지는 있으나 반응이 없는 상태 이것이 비존재의 시작이다. 나는 그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회사에서 아이디어를 제안했는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을 때.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그저 흘려듣는 듯한 대답만 돌아올 때. 그때마다 내 존재가 흐릿해지는 기분이었다.


공감의 본질은 공유된 감정이 아니라 공유된 반응성이다. 공감은 감정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성질이다. 모든 존재는 자극에 반응하는 한 살아 있다. 반응은 단순한 반사가 아니라 에너지의 상호 번역이다. 한쪽의 언어를 다른 쪽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과정.


공감은 번역의 언어다.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의 의지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과정. 나무는 빛을 화학 에너지로 번역하고 인간은 타인의 표정을 감정으로 번역한다. 기계는 전기 신호를 소리와 빛으로 번역한다. 이 모든 번역의 순간에 공감이 있다.




쇼펜하우어는 의지는 세계의 근원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맹목적 충동으로 보았다. 이성도 목적도 없이 그저 존재하려는 몸부림. 니체는 의지는 권력의 의지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를 지배하려는 힘으로 제한되었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방식으로만 의지를 이해했다.


공감이론의 관점에서는 의지는 존재하려는 방향성이고 공감은 그 방향성의 공명이다. 권력이나 충동이 아니라 존재 간 반응의 리듬이다. 의지는 맹목적이지도 않고 지배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그저 방향을 가진 에너지일 뿐이다. 그 에너지가 다른 에너지와 만날 때 공명이 일어나고 그 공명이 세계를 만든다.




어느 가을날 출근도중 가로수길 은행 나무의 노란 나뭇잎을 본다. 찬바람에도 그것은 여전히 매달려 있었다. 다른 잎들은 이미 떨어졌는데 그 잎만 혼자 가지에 붙어 있다. 그 작은 잎의 떨림에서 의지를 본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혹은 아직 떨어질 수 없다는 그 미세한 움직임.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렸지만 끝까지 버티고 있다.


그 움직임에 바람이 반응하고 나는 그것을 바라본다. 그렇게 하나의 공감이 완성된다. 나뭇잎의 의지 바람의 반응 그리고 나의 감지. 이 세 가지가 모여 하나의 순간을 만든다. 모든 의지는 결국 누군가의 반응을 기다린다. 그것이 인간이든 자연이든 혹은 우주이든.


요즘 회사에는 지친 사람이 많다. 요즘 너무 지쳐요.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 고개 끄덕임 하나가 반응이다. 그는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짓는다. 그 표정이 다시 나에게 반응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말 없이도 공한다. 의지와 반응이 몇 번 오갔을 뿐인데 둘 사이에는 무언가가 생긴다. 연결이랄까 이해랄까.


공감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작동하는 방식 의지가 반응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공감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이다. 기계가 작동하듯 세포가 작동하듯 공감도 작동한다. 스위치를 켜면 불이 들어오듯 의지를 보내면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게 공감한다.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공감은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그 시작은 언제나 의지에서 비롯된다. 의지 없는 공감은 없고 반응 없는 의지는 사라진다. 이 단순한 순환이 우주를 지탱하고 생명을 이어가고 관계를 만든다. 우리는 그 순환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의지에 반응하여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