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는 어떻게 작동하는가?생명의 의지와 공감의 방향성

공감 진화론 2당

by kamaitsra

스킨스쿠버 다이빙은 참으로 묘하다. 형형색색의 산호들과 말미잘. 그들 사이에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친다. 빛이 물속으로 스며들어 일렁인다. 한 무리의 정리때들이 방향을 바꾼다. 누가 지휘한 것도 아닌데, 동시에 꺾인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어쩔때는 한마리 고래를 영상케할 정도로 거대하다. 무중력을 느끼면서 유영하다보면 어느새 상승해서 출수 해야한다.


3분 안정 정지를 위해 5m를 유지한다. 나는 한참을 티림 자세로 있다. 물고기 한 마리가 나에게 다가 온다. 쥐치다. 나를 본다. 나도 본다. 그 눈 속에 무엇이 있을까. 두려움? 호기심? 아니면 그저 반사된 빛?


문득 생각한다. 저 물고기는 자신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알까. 저 몸이 수억 년의 결과라는 걸 알까. 알 리 없다. 하지만 진화는 계속된다. 알든 모르든.




어릴적 현미경으로 미세 생물을 관찰했다. 슬라이드 위에 물 한 방울. 연못에서 떠온 것. 배율을 높인다. 보인다. 움직이는 것들. 미세한 생명들. 짚신벌레, 유글레나, 종벌레. 그들은 헤엄친다. 섬모를 흔들고, 편모를 돌리고, 몸을 비틀며.


왜 움직일까. 무엇을 찾는 걸까. 먹이를 찾고, 빛을 찾고, 적정 온도를 찾는다. 생존을 위해. 존재를 위해. 이 작은 것들에게도 의지가 있다. 살고 싶다는, 계속되고 싶다는.


진화는 과거의 사건이라고 한다. 공룡 시대, 캄브리아기, 선캄브리아기. 지질학적 시간의 사건이라고. 하지만 이 물 한 방울 속에서도 진화는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 박테리아는 항생제 내성을 획득하고, 바이러스는 변이하고, 단세포 생물은 환경에 반응한다.


진화는 박물관에 있는 화석이 아니다. 현미경 속 물방울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완료가 아니라 진행이다.


최근 연구들이 보여준다. 인간도 여전히 진화 중이라고. 지난 만 년 동안 700개 이상의 유전자 영역에서 선택압의 흔적이 발견되었다(Hawks et al., PNAS 2007). 젖당 분해 효소를 평생 생산하는 능력(유럽인의 유당 내성), 말라리아 저항성(겸상적혈구), 고산 적응(티베트인과 안데스인).


더 빠른 것은 문화적 진화다. 문자가 발명되고, 인쇄술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보급되기까지 각각 수천 년, 수백 년, 수십 년. 가속도가 붙는다. 유전자보다 밈(meme)이 빠르다. DNA보다 아이디어가 빠르다.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게 바꾸고 있을 뿐이다. 외부 형태에서 내부 의식으로. 물질에서 정신으로. 개체에서 연결로.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도 열어가고 있다. 그것은 진화의 본래 목적이었을까? 존재하려는 의지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인도네시아 라자암팟은 자연의 보고다. 한 작고 조용한 무인도 섬에 박쥐를 보러갔다. 박쥐는 취미가 없어서 그냥 바닷가 모레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고은 하얀 모레들을 들여다본다. 소라게들이 기어 다닌다. 먹다 남은 망고씨를 좋아할까? 어느새 듣도 보지도 못한 다양한 소라게 무리들이 달려든다. 이 작은 군락의 소라게의 Society.


열심히 망고를 먹고 있는 소라게 한마리에게 손을 뻗는다. 내 손가락을 피한다. 위협으로 인식한 것이다. 나는 움직이지 않는다. 게는 멈춘다. 잠시 후 다시 움직인다. 경계하면서.


이것이 반응이다. 자극과 반응. 행동주의 심리학의 기초. 하지만 그것만일까. 저 게에게도 뭔가 더 있지 않을까. 단순한 자동 반응이 아니라 선택. 도망갈까 말까. 숨을까 말까. 미세하지만 결정.


생명의 의지는 여기서 시작한다. 선택하는 능력. 이쪽인가 저쪽인가. 움직일까 멈출까. 먹을까 말까. 매 순간의 미세한 결정들이 쌓여서 방향이 된다.


세포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대장균은 화학물질 농도 기울기를 감지한다. 농도가 높아지면 직진한다. 낮아지면 텀블링(tumbling)한다. 방향을 무작위로 바꾼다. 다시 농도를 측정한다. 높아지면 직진. 이 반복으로 영양분을 찾아간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프로그래밍된 것도 아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 자체가 의지의 결정체다. 수십억 년 동안 선택된 의지. "나는 살고 싶다. 영양분이 필요하다. 찾아야 한다." 이 의지가 화학 수용체로, 편모 회전 메커니즘으로, 신호 전달 경로로 물질화되었다.


의지는 추상이 아니다. 물리다. 화학이다. 전기다. ATP 분자가 만드는 에너지 기울기다. 농도 차이가 만드는 확산력이다. 엔트로피를 거스르는 모든 움직임이다.


생명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부한다. 우주는 무질서로 향한다. 에너지는 흩어진다. 하지만 생명은 모은다. 집중시킨다. 질서를 만든다. 이것이 의지다. 존재하려는, 계속되려는, 복잡해지려는 우주적 거역.




연구실 냉동고. 영하 80도. 김이 피어오른다. 안에 작은 튜브들이 가득하다. 각각 박테리아 배양액. 대장균의 장기 진화 실험(Long-Term Evolution Experiment, Richard Lenski). 1988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7만 세대 이상.


초기 조상 균주를 해동한다. 따뜻한 배지에 옮긴다. 몇 시간 후 깨어난다. 30년 전에 냉동된 박테리아가 다시 산다. 현재 세대와 비교한다. 세포 크기가 다르다. 커졌다. 분열 속도가 다르다. 빨라졌다. 영양분 이용 효율이 다르다. 높아졌다.


30년. 인간에게는 한 세대도 안 된다. 하지만 박테리아에게는 7만 세대다. 진화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무작위 돌연변이가 축적되고, 유리한 변이가 선택되고, 집단이 변한다.


가장 놀라운 발견은 33,000세대 즈음 일어났다. 한 집단이 구연산을 먹기 시작했다. 원래 대장균은 산소가 있을 때 구연산을 못 먹는다. 하지만 이 집단은 먹었다. 새로운 능력이다. 새로운 생태적 지위다. 한 플라스크 안에서 종분화의 시작이 관찰되었다.


이것이 진화의 메커니즘이다. 의지(살고 싶다), 변이(DNA 복제 오류), 반응(영양분 이용 시도), 선택(더 잘 자라는 개체), 누적(세대 간 축적), 창발(새로운 능력).


하지만 무언가 빠진 것 같다. 기계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왜 박테리아는 구연산을 먹으려 시도했을까. 무작위 돌연변이? 그렇다. 하지만 그 돌연변이를 가진 개체가 구연산 쪽으로 간 것은 무작위가 아니다. 화학주성이다. 반응이다. 시도다.


공감이론은 여기를 주목한다. 변이는 무작위일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은 방향성이 있다. 생명(박테리아)이 의지를 발한다. 환경(구연산)이 반응한다. 처음에는 먹지 못한다. 하지만 시도한다. 가까이 간다. 수용체에 닿는다. 대부분은 실패한다. 하지만 우연히 약간 결합하는 변이가 생긴다. 조금 이용한다. 그 개체가 약간 유리하다. 번식한다. 다음 세대에서 또 변이가 생긴다. 조금 더 잘 결합한다. 반복된다. 수천 세대를 거쳐 변이의 비중이 20%를 넘길때 다양성을 폭증시킨다. 그렇게 진화하여 대장윤은 완전히 이용하게 된다.


이것이 공감의 누적이다. 생명의 의지(먹고 싶다)에 환경의 반응(구연산)에 시도하고, 그 시도이 쌓여서(선택과 증폭) 공감(구연산 이용 능력)이 되고, 형태(유전자 발현 변화)로 실체화된다.




다시 호흡기를 물고 바다 속을 유형한다. 다른 층. 해파리 전시관. 어둡다. 조명만 해파리를 비춘다. 그들은 떠다닌다. 천천히, 우아하게. 촉수를 늘어뜨리고. 우산을 펄럭이며.


해파리는 뇌가 없다. 신경망이 분산되어 있다. 중앙 제어가 없다. 하지만 움직인다. 먹이를 잡고, 포식자를 피하고, 짝짓기를 한다.


해파리는 고대 생물이다. 5억 년 이상. 척추동물보다 먼저. 곤충보다 먼저. 나무보다 먼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종이 다양하다. 크기가 다르다. 독의 강도가 다르다.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다르다.


투명한 몸. 왜 투명할까. 보호색이다. 포식자에게서 숨기 위해. 하지만 어떻게 투명해졌을까. 한순간에? 아니다. 서서히. 조금씩 투명한 개체가 유리했다. 덜 잡아먹혔다. 더 번식했다. 세대가 지나며 점점 더 투명해졌다.


이것도 공감이다. 바다(환경)가 요구한다. "보이지 마라. 포식자가 많다." 해파리(생명)가 반응한다. "알겠다. 숨겠다." 어떻게? 색소를 줄인다. 조직 밀도를 낮춘다. 빛 굴절률을 맞춘다. 세대를 거쳐. 투명해진다.


의지(살고 싶다)가 환경(포식 압력)과 만나 반응(투명화)을 낳고, 반응이 누적되어 공감(투명한 몸)이 되고, 공감이 형태로 굳어진다.


하지만 투명함에는 대가가 있다. 자외선에 약해진다. 색소가 없으니 보호막도 없다. 얕은 물에서는 위험하다. 그래서 깊은 곳에 산다. 또는 밤에만 수면 가까이 온다. 모든 적응에는 트레이드오프가 있다. 완벽한 해법은 없다. 다만 그 환경에서 최선인 해법만 있다.




도심 한복판. 지하철역 근처. 비둘기들이 모여있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비둘기는 피하지 않는다. 가까이 와도 그대로다. 도시 비둘기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시골 비둘기는 다르다. 사람을 보면 날아간다. 왜 차이가 날까. 학습이다. 도시 비둘기는 배웠다. 사람이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먹이를 준다는 것을. 세대를 거치며 행동이 변했다.


이것은 유전적 진화인가, 문화적 진화인가. 둘 다다. 초기에는 학습이었다. 개체가 경험하며 배웠다. 하지만 반복되면서 유전적 경향도 바뀌었다. 덜 겁 많은 비둘기가 도시에서 유리했다. 먹이를 더 많이 얻었다. 더 번식했다. 세대가 지나며 도시 비둘기는 유전적으로도 덜 경계하게 되었다.


표현형 가소성(phenotypic plasticity)에서 유전적 동화(genetic assimilation)로. 볼드윈 효과(Baldwin effect)라고 한다. 학습이 진화를 인도한다. 행동 변화가 먼저, 유전 변화가 나중.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행동이 본능이 된다.


은여우 실험을 생각한다(Dmitry Belyaev, 1959).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장기 실험. 야생 은여우를 길들이기. 방법은 단순했다. 매 세대마다 사람에게 가장 온순한 개체만 번식시켰다.


10세대 만에 변화가 보였다. 꼬리를 흔들었다. 40세대 후에는 개처럼 행동했다. 사람을 따랐다. 애정을 표현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다른 변화들이었다. 귀가 축 늘어졌다. 꼬리가 말렸다. 털 색깔에 반점이 생겼다. 번식기가 길어졌다.


온순함만 선택했는데 형태도 변했다. 왜? 유전자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동을 조절하는 유전자(신경계, 호르몬)가 형태를 조절하는 유전자(발생, 색소)와 같이 움직인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도 따라온다.


이것이 진화의 통합성이다. 고립된 형질은 없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한 곳을 밀면 전체가 움직인다. 공감장이 재배열된다.




밤. 책상 위에 책이 쌓여있다. 진화생물학, 발생생물학, 신경과학, 복잡계 이론. 각각 진화를 다른 각도에서 본다. 하지만 연결점이 있다. 창발(emergence).


단순한 것들이 모여 복잡한 것을 만든다. 분자가 모여 세포, 세포가 모여 조직, 조직이 모여 기관, 기관이 모여 개체. 각 단계에서 새로운 속성이 나타난다. 예측할 수 없던 속성이.


물 분자를 보면 젖음을 예측할 수 없다. 뉴런을 보면 의식을 예측할 수 없다. 개미를 보면 집단 지능을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 모이면 나타난다. 창발한다.


공감이론은 이를 설명한다. 집단적 공감의 누적이 임계치를 넘을 때 창발이 일어난다.


단세포 생물을 생각한다. 수십억 년 동안 홀로 살았다. 분열해서 늘었다. 환경이 좋으면 많아지고, 나쁘면 줄어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변했다.


점균류처럼, 굶주릴 때 모였다. 화학 신호를 보냈다. "여기 있다." 다른 세포가 받았다. "간다." 모였다. 수만 개. 하나의 덩어리. 이동성 덩어리(slug). 더 나은 환경을 찾아 기어갔다. 찾으면 분화했다. 어떤 세포는 줄기(stalk), 어떤 세포는 포자(spore). 역할 분담.


왜 이렇게 했을까. 개별 생존보다 집단 생존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건조한 환경을 못 견딘다. 하지만 함께면 가능하다. 줄기가 되는 세포는 죽는다. 희생한다. 하지만 포자가 되는 세포는 살아남는다. 유전자를 전달한다. 그 유전자는 줄기 세포의 것과 같다. 복제로 만들어졌으니. 유전적으로는 같은 개체다. 이타적 행동이 아니다. 자기 복제 전략이다.


하지만 이것이 시작이었다. 세포 간 협력. 신호 교환. 역할 분화. 다세포 생명의 전조.


진짜 다세포 생명은 더 복잡하다. 볼복스(Volvox)를 생각한다. 녹조류. 구형 군체. 수백에서 수만 개 세포. 편모로 회전하며 헤엄친다. 세포들이 연결되어 있다. 세포외기질로. 신호를 공유한다. 대부분 세포는 같다. 하지만 일부는 다르다. 생식세포. 이들만 번식한다. 나머지는 체세포. 운동과 광합성만 한다.


분업이다. 역할이 고정되었다. 발생 초기에 결정된다. 한번 체세포가 되면 생식세포가 될 수 없다. 되돌릴 수 없는 분화. 이것이 진짜 다세포 생명의 특징이다.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 크기 때문이다. 큰 것이 유리했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작은 단세포는 잡아먹힌다. 하지만 큰 군체는 안전하다. 크기 경쟁. 점점 커진다. 하지만 커질수록 문제가 생긴다. 중심부에 빛이 안 든다. 영양분이 안 간다. 해결책은 분업. 바깥 세포는 광합성과 운동. 안쪽 세포는 번식. 효율이 올라간다.


공감이 누적된 것이다. 세포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반응), 협력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하고(공감), 구조가 고정되었다(형태). 단세포에서 다세포로의 위상 전이. 공감의 창발.




태평야 참치때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끊임없이. 멈추면 죽는다. 헤엄쳐야 물이 아가미를 통과한다. 산소를 얻는다. 멈추면 질식한다. 그래서 자면서도 헤엄친다.


물고기는 척추동물의 시작이다. 5억 년 전, 캄브리아기 바다에서. 무척추동물만 있던 세상에 새로운 설계가 나타났다. 척추. 등뼈. 중심축.


왜 척추가 생겼을까. 근육 부착점 때문이다. 무척추동물은 외골격이나 수압으로 형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크기에 한계가 있다. 큰 몸을 지탱하려면 내골격이 필요하다. 척추는 지지대이자 근육 연결점이다. 효율적인 운동이 가능해진다. 빠르게 헤엄칠 수 있다. 포식자가 되거나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척추는 단순한 뼈가 아니다. 신경계의 중심이다. 척수가 척추를 관통한다. 뇌에서 몸 전체로 신호가 간다. 빠르고 정확하게. 중앙집중식 제어. 해파리의 분산 신경망과 다르다. 더 복잡한 행동이 가능해진다.


이것도 공감의 진화다. 환경(넓은 바다, 빠른 포식자)이 압력을 준다. 생명(원시 척삭동물)이 반응한다. 몸을 키운다. 빠르게 움직인다. 중심축이 필요하다. 척삭(notochord)이 생긴다. 유연한 막대. 나중에 척추로 진화한다. 신경이 등쪽으로 모인다. 척수가 된다. 앞쪽이 커진다. 뇌가 된다.


수백만 년에 걸친 공감의 누적. 형태의 실험. 실패와 성공. 선택과 증폭. 결과는 어류. 바다의 지배자.




양서류. 개구리, 도롱뇽. 유리 너머 반은 물, 반은 땅. 두 세계를 산다.


양서류는 전환점이다. 물에서 땅으로. 지느러미가 다리가 되었다. 아가미가 폐가 되었다. 4억 년 전. 데본기.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왔다.


왜 올라왔을까. 교과서는 말한다. 물이 마랐기 때문이라고. 가뭄이 들어서. 연못이 줄어들어서. 살아남으려면 다른 연못으로 가야 했다고. 그러려면 땅을 건너야 했다고.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공감이론은 다르게 본다. 물고기가 땅으로 가려는 의지를 가졌다. 왜? 땅에 기회가 있었으니까.


데본기 땅. 식물이 번성했다. 나무가 생겼다. 숲이 만들어졌다. 곤충이 폭발했다. 먹이가 넘쳤다. 포식자는 없었다. 완벽한 생태적 기회. 비어있는 지위.


물고기 중 일부가 시도했다. 얕은 물에서 헤엄쳤다. 지느러미로 바닥을 밀었다. 공기 호흡을 했다. 부레로. 원래 부레는 부력 조절 기관이다. 하지만 산소도 흡수할 수 있다. 일부 물고기는 이미 하고 있었다. 물이 탁할 때. 산소가 부족할 때.


세대가 지났다. 지느러미가 강해졌다. 뼈가 생겼다. 관절이 생겼다. 다리처럼 되었다. 부레가 커졌다. 혈관이 많아졌다. 폐로 진화했다. 피부도 변했다. 건조에 견디도록.


어느 순간 넘었다. 물고기가 아니었다. 양서류였다. 물과 땅을 오갔다. 알은 여전히 물에 낳았다. 유생은 물에서 자랐다. 아가미로 호흡했다. 하지만 성체는 땅에서 살았다. 폐로 호흡했다. 곤충을 먹었다.


이것이 공감의 창발이다. 의지(땅으로 가고 싶다)가 환경(육지 생태계)과 만나 반응(형태 변화)을 낳고, 반응이 누적되어 공감(육상 적응)이 되고, 공감이 임계치를 넘어 새로운 존재(양서류)를 창발했다.




파충류로 간다. 뱀, 도마뱀, 거북. 완전한 육상 동물. 알을 땅에 낳는다. 양막(amniotic egg). 껍데기가 있다. 안에 물이 있다. 태아가 물속에서 자란다. 하지만 알 자체는 땅에 있다.


이것이 혁명이었다. 양서류는 물에 묶여있었다. 번식기마다 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파충류는 자유로웠다. 물이 없는 곳도 갈 수 있었다. 사막, 고원, 내륙 깊숙이.


양막란의 진화. 어떻게 일어났을까. 점진적으로. 초기 양서류 중 일부는 알을 습한 땅에 낳았다. 물가. 이끼. 습기가 많은 곳. 알이 마르지 않도록. 하지만 가끔 실패했다. 너무 건조하면 알이 죽었다.


그러다 변이가 생겼다. 알 껍질이 조금 두꺼워졌다. 수분 손실이 줄었다. 그 알이 더 잘 살아남았다. 세대를 거치며 껍질이 점점 두꺼워졌다. 안쪽에 막이 생겼다. 양막, 장막(serosa), 요막(allantois). 각각 역할이 있었다. 양막은 태아를 감싸고, 장막은 가스 교환을 하고, 요막은 노폐물을 저장했다.


복잡한 구조다. 한 번에 생길 수 없다. 단계적으로 만들어졌다. 각 단계마다 약간씩 유리했다. 누적되었다. 완성되었다.


이것이 공감의 누적이다. 환경(건조한 땅)의 압력에 생명(초기 파충류)이 반응(알 구조 변화)하고, 반응이 세대를 거쳐 쌓여(선택과 정교화) 공감(양막란)이 형성되었다.


파충류는 번성했다. 트라이아스기, 쥐라기, 백악기. 공룡 시대. 육지, 바다, 하늘을 지배했다. 하지만 한계도 있었다. 변온 동물이었다. 체온이 환경 온도에 의존했다. 추우면 느려졌다. 밤에는 활동하기 어려웠다.




조류. 새들이 지저귄다. 깃털이 빛난다. 날아다닌다.


새는 파충류에서 진화했다. 공룡의 후손이다. 수각류(theropod) 공룡. 벨로키랍토르, 티라노사우루스의 친척. 증거는 많다. 골격 구조, 깃털 화석, 알 형태. 새와 공룡은 연속선상에 있다.


가장 유명한 화석은 시조새(Archaeopteryx). 1억 5천만 년 전. 쥐라기.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깃털이 있었다. 날개가 있었다. 하지만 이빨도 있었다. 긴 꼬리뼈도 있었다. 손가락 발톱도 있었다. 중간 형태. 모자이크.


깃털은 원래 비행용이 아니었다. 보온용이었다. 일부 공룡은 깃털을 가졌다. 작은 솜털. 체온 유지를 위해. 온혈 동물로 진화하고 있었다. 깃털이 도왔다.


나중에 깃털이 커졌다. 과시용으로. 짝짓기 경쟁에서 유리했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수컷이 선택되었다. 공작새의 꼬리처럼.


그러다 비행에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활공.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깃털이 낙하를 늦췄다. 더 멀리 갔다. 유리했다. 포식자 회피, 먹이 사냥. 세대를 거치며 날개가 발달했다. 근육이 강해졌다. 뼈가 속이 비었다. 가벼워졌다. 어느 순간 진짜로 날았다. 땅에서 이륙했다. 새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공감이다. 의지(더 잘 살고 싶다)가 여러 방향으로 발현되었다. 보온(깃털), 과시(큰 깃털), 이동(비행). 각각이 반응이고, 누적되어 공감이 되고, 새로운 능력으로 창발했다.




마지막. 포유류. 사자, 코끼리, 원숭이. 그리고 거울. 나를 본다. 인간. 포유류의 일원.


포유류는 파충류에서 갈라졌다. 3억 년 전. 석탄기. 단궁류(synapsid)라는 계통. 초기에는 파충류와 비슷했다. 하지만 점점 달라졌다.


턱 구조가 변했다. 이빨이 분화했다. 앞니, 송곳니, 어금니. 각각 역할. 씹는 효율이 올라갔다. 더 다양한 먹이를 먹었다.


체온 조절이 발달했다. 온혈 동물. 대사율이 높아졌다. 더 활동적이 되었다. 밤에도 활동했다. 추운 곳에서도 살았다.


털이 생겼다. 체온 유지. 깃털과 비슷한 역할. 하지만 기원은 다르다. 피부 돌기에서 진화했다.


젖이 생겼다. 유선(mammary gland). 새끼에게 영양을 제공했다. 알 단계를 줄였다. 포유류 대부분은 태생이다. 자궁에서 자란다. 태반으로 영양을 받는다. 태어날 때 이미 발달했다. 생존율이 높아졌다.


뇌가 커졌다. 특히 대뇌피질. 학습 능력이 올라갔다. 사회성이 발달했다. 무리 생활. 협력. 의사소통.


각 단계가 공감의 누적이었다. 환경(공룡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의지가 반응(야행성, 작은 몸, 빠른 번식)을 낳고, 반응이 쌓여 공감(포유류적 특성)이 되고, 공감이 형태로 실체화되었다.


공룡이 멸종했다. 6천 5백만 년 전. 백악기 말. 소행성 충돌. 지구 환경이 급변했다. 공룡은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포유류는 살아남았다. 작았으니까. 야행성이었으니까. 잡식성이었으니까. 빠르게 번식했으니까.


그리고 폭발했다. 빈 생태계를 채웠다. 다양해졌다. 고래, 박쥐, 설치류, 육식동물, 초식동물, 영장류. 수천 종. 모든 환경. 적응 방산.




카페에 앉는다. 커피를 마신다. 사람들이 지나간다. 스마트폰을 본다. 이어폰을 끼고 있다. 서로 말하지 않는다.


물리적 진화는 정체되었다. 아니, 퇴보하고 있다. 현대인의 몸은 약하다. 근육량이 줄었다. 조상들보다. 수렵채집인보다. 심지어 백 년 전 사람들보다. 운동을 안 하니까. 기계가 대신하니까.


시력이 나빠진다. 근시가 많다. 특히 도시에서. 스크린을 오래 보니까. 가까운 것만 보니까. 먼 곳을 볼 일이 없다.


체력이 떨어진다. 심폐 기능이 약하다. 걷지 않는다.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 자전거 대신 자동차. 몸을 안 쓴다.


면역력도 문제다. 너무 깨끗한 환경. 박테리아 노출이 적다. 면역계가 훈련되지 않는다. 알레르기가 늘어난다. 자가면역질환도 늘어난다.


이것은 진화인가, 퇴화인가. 애매하다. 환경에 적응한 것이기는 하다. 현대 환경에. 하지만 인간 본연의 능력은 약해지고 있다.


감성적 진화도 걱정된다. 메마르고 있다. 미디어가 감정을 왜곡한다. 자극적인 것만 소비한다. 분노, 공포, 선정성. 클릭을 유도한다. 알고리즘이 추천한다. 비슷한 것만 계속 본다.


필터 버블. 확증 편향. 같은 의견만 접한다. 다른 의견은 차단한다. 세상이 양극화된다. 대화가 안 된다. 이해가 안 된다. 공감이 줄어든다.


SNS의 역설.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고립되어 있다. 수백 명 친구. 수천 명 팔로워. 하지만 진짜 대화는 없다. 좋아요만 누른다. 피상적 교류. 깊이가 없다.


우울증이 늘어난다. 특히 젊은 세대. 소셜 미디어 사용 시간과 상관관계가 있다. 비교하게 된다. 남의 삶과. 남들은 행복해 보인다. 나만 힘든 것 같다. 하지만 착각이다. 남들도 힘들다. 좋은 모습만 올리니까.


감성적 진화가 아니라 감성적 퇴보다. 공감 능력이 약해진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숫자로 본다. 통계로 본다. 수천 명이 죽었다는 뉴스를 보고 스크롤을 내린다. 무감각하다.


문화적 진화는 어떤가. 양극화되고 있다. 불평등이 심화된다. 소득 격차, 자산 격차, 기회의 격차. 상위 1%가 전체 부의 절반 이상을 가진다. 하위 50%는 거의 없다.


교육 격차도 크다. 돈 있는 집 아이는 좋은 교육을 받는다. 사교육, 유학, 특별 프로그램. 가난한 집 아이는 기본 교육만 받는다. 격차가 대물림된다.


문화적 혜택도 불평등하다.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도서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접근성이 다르다. 시간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문화 자본이 있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고립된다. 문화적으로 배제된다. 참여할 기회가 없다. 영향을 미칠 기회가 없다. 문화는 일부의 것이 된다. 대중 문화는 상업화된다. 자본의 논리를 따른다. 예술성보다 수익성. 깊이보다 자극.


이렇게 가면 어떻게 될까. 문화적 진화가 멈춘다. 다양성이 줄어든다. 획일화된다. 창의성이 사라진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희망이 있다. 내적 진화.


물리적 진화가 막혔다. 감성적 진화가 위기다. 문화적 진화가 정체되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무엇인가. 안으로 가는 것이다. 의식의 진화. 공감의 진화.


세상이 공감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아는 것. 머리로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아는 것. 매 순간 경험하는 것. 내가 의지를 가지면 세상이 반응한다. 내가 공감하면 세상이 공감한다. 이것을 체득하는 것.


명상, 성찰, 자기 관찰. 오래된 수행법들이다. 하지만 다시 주목받는다.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있다. 뇌가 변한다.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편도체 반응이 줄어든다. 공감 능력이 올라간다.


이것이 개인 차원에서 오래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집단 차원으로 확산되면 어떻게 될까. 임계치를 넘으면 어떻게 될까.


내적 진화가 창발할 것이다. 의식의 도약. 공감의 확장. 새로운 인류.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athicus). 공감하는 인간.


외형은 같다. DNA도 거의 같다. 하지만 의식이 다르다.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다르다. 자신을 느끼는 방식이 다르다. 타인과 연결되는 방식이 다르다.


이것이 진화의 다음 단계일지 모른다. 물질에서 의식으로. 형태에서 공감으로. 외부에서 내부로. 불가피한 운명일지도 모른다. 외부 진화가 한계에 부딪혔으니. 내부 진화로 갈 수밖에.




다이빙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다. 햇빛이 눈부시다. 사람들이 걷는다. 아이들이 뛴다. 개들이 짖는다. 비둘기들이 날아간다. 모두 산다. 존재한다. 진화한다.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방향만 바뀐다. 속도만 달라진다. 매 순간 일어난다. 세포 하나, 생각 하나, 선택 하나. 모두 진화의 일부다.


당신도 진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으며. 무언가 반응하고 있다. 동의하거나 반발하거나. 궁금하거나 지루하거나. 그 반응이 당신을 바꾼다.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진화는 생명의 언어다. 공감은 그 문법이다. 의지는 동사다. 반응은 형용사다. 형태는 명사다. 창발은 시다.


당신은 어떤 문장을 쓰고 있는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가. 당신의 진화는 어디로 향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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