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진화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먼지가 빛 속에서 춤춘다. 나는 그 먼지를 한참 바라본다. 저것들도 살아있는 것일까. 아니, 저것들은 죽은 피부 세포, 섬유 조각, 꽃가루. 하지만 언젠가는 살아있었던 것들이다.
손을 펴본다. 손금이 보인다. 이 손은 언제부터 이런 모양이었을까. 왜 다섯 개의 손가락을 가졌을까. 네 개나 여섯 개가 아니라. 이 손의 조상은 어떤 모양이었을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 인간이라는 이 존재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한 세포가 스스로 복제하던 시절이 있었다. 수십억 년 전, 깊은 바다 어딘가에서. 그 세포는 나뉘었고, 또 나뉘었다. 그렇게 생명이 퍼져나갔다.
박테리아가 생겼고, 해파리가 생겼고, 물고기가 생겼고, 양서류가 생겼고, 파충류가 생겼고, 포유류가 생겼다. 그리고 영장류가 생겼고, 그 안에서 인간이 나타났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 인류는 어떻게 나타났을까? 무엇이 그 전환의 문을 열었을까? 유전자의 돌연변이? 환경의 압력? 우연한 선택?
교과서는 말한다. 돌연변이가 일어나고, 자연선택이 작동하고, 적자생존으로 진화가 일어났다고. 하지만 그 설명은 뭔가 차갑다. 마치 기계가 작동하는 것처럼. 생명이 수동적으로 변하는 것처럼.
진화론은 형태의 변화를 설명한다. 이 종이 저 종으로 변했다는 것. 하지만 존재의 도약, 즉 완전히 다른 종이 탄생하는 그 순간의 떨림을 설명하지 못한다.
나는 그 간극 사이에 뭔가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의지다. 존재하려는 의지. 살아남으려는, 번식하려는, 계속되려는 의지. 그 의지가 환경과 만날 때, 공감이 일어난다.
새벽 공원을 걷는다. 나무들이 서 있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린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한다. 하지만 살아있다. 뿌리를 뻗고, 잎을 펼치고, 꽃을 피운다.
나무에게도 의지가 있을까. 있다. 존재하려는 의지. 빛을 향해 자라는 것. 물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 씨앗을 퍼뜨리는 것. 이 모든 것이 의지의 표현이다.
환경은 나무에게 조건을 제시한다. 여기는 춥다, 여기는 건조하다, 여기는 그늘이다. 나무는 그 조건에 반응한다. 추우면 단단한 껍질을 만든다. 건조하면 깊은 뿌리를 내린다. 그늘이면 넓은 잎을 펼친다.
이것이 공감이다. 생명의 의지가 환경의 조건에 반응하는 것. 환경이 일방적으로 생명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다. 생명이 능동적으로 환경에 응답하는 것이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먼저다. 그 의지가 환경과 마주친다. 반응이 일어난다. 그 반응이 쌓이고 쌓여서 공감이 된다. 공감이 형태를 만든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근처, 작은 섬들 사이를 떠다니는 바자우족을 생각한다. 그들을 '바다의 집시'라고 부른다. 수천 년 동안 바다에서 살아왔다. 배 위에서 태어나고, 배 위에서 자라고, 바다에서 일한다.
그들은 숨을 참는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오래. 2분, 3분, 어떤 이는 5분 이상. 수심 20미터, 30미터까지 잠수한다. 산소통 없이, 맨몸으로. 물고기를 잡고, 해삼을 줍고, 진주조개를 딴다.
과학자들이 그들을 연구했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자우족의 비장이 보통 사람보다 50퍼센트 크다. 비장은 적혈구를 저장하는 기관이다. 잠수할 때, 비장이 수축하며 저장된 적혈구를 방출한다. 산소를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유전적 변화라는 점이다. PDE10A라는 유전자가 변이되었다. 이 유전자는 갑상선 호르몬을 조절한다. 갑상선 호르몬은 비장 크기에 영향을 미친다. 바자우족은 이 유전자의 변이를 가지고 태어난다.
수천 년 동안 바다에서 산 결과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환경에 반응한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살겠다. 물속에서 숨을 오래 참아야 한다." 그 의지가 세대를 거쳐 누적되었다. DNA가 변했다. 비장이 커졌다.
환경이 바자우족을 변화시킨 게 아니다. 바자우족이 바다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가졌고, 그 의지가 환경과 반응하여 공감을 만들었고, 공감이 형태를 바꾼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티베트 고원의 사람들. 해발 4000미터 이상에서 산다. 산소가 희박하다. 보통 사람은 고산병에 걸린다. 두통, 메스꺼움, 숨가쁨.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괜찮다.
그들의 몸이 다르다.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낮다. 이상하다. 산소가 부족하면 헤모글로빈이 많아져야 하지 않나.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반대다. 헤모글로빈이 적다. 대신 산소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EPAS1이라는 유전자가 변이되었다. 이 유전자는 저산소 환경에 대한 반응을 조절한다. 티베트인들은 특수한 변이를 가지고 있다. 이 변이는 데니소바인에게서 유래했다. 멸종한 고대 인류다. 티베트인의 조상이 데니소바인과 교배했고,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7000년 전쯤, 티베트인의 조상이 고원으로 올라갔다. 왜 올라갔을까. 존재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더 나은 땅을, 더 안전한 곳을, 새로운 삶을 찾아서. 고원은 가혹했다. 산소가 부족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살아남았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그 유전자가 고원에서 유리했다. 그들이 번식했고, 자손을 남겼고, 지금의 티베트인이 되었다.
이것도 공감이다. "나는 여기서 살겠다"는 의지. 고원이라는 환경. 의지와 환경이 반응했다. 수천 년 동안. 몸이 변했다. 유전자가 선택되었다.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졌다.
북극을 생각한다. 이누이트족. 영하 40도에서 산다. 얼음과 눈뿐인 곳. 물개, 고래, 순록을 먹고 산다. 지방이 많은 음식. 탄수화물은 거의 없다.
그들의 몸도 다르다. 지방 대사 유전자가 변이되었다. FADS 유전자군. 이 유전자들은 오메가-3와 오메가-6 지방산을 처리한다. 이누이트족은 특수한 변이를 가지고 있다. 지방을 에너지로 효율적으로 전환한다. 심혈관 질환 위험도 낮다.
보통 사람이 이누이트 식단을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 콜레스테롤이 올라가고, 혈관이 막힌다. 하지만 이누이트족은 괜찮다. 유전자가 다르니까.
만 년 이상 북극에서 살았다. "나는 여기서 살겠다." 그 의지가 환경과 만났다.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어야 했다.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몸이 적응했다. 유전자가 변했다. 지방을 처리하는 능력이 생겼다.
환경이 강요한 게 아니다. 이누이트의 조상이 북극에서 살겠다고 결정했다. 그 의지가 먼저였다. 의지가 반응을 만들었다. 반응이 공감이 되었다. 공감이 형태를 바꿨다.
창밖을 본다. 비둘기가 날아간다. 새들은 어떻게 하늘을 날게 되었을까. 날개는 어떻게 생겼을까.
진화론은 설명한다. 파충류의 앞다리가 변했다. 깃털이 생겼다. 처음에는 보온용이었다. 나중에 비행에 사용되었다. 자연선택으로 날개가 발달했다.
하지만 나는 묻는다. 왜 하늘을 날고 싶었을까. 무엇이 그 방향으로 밀어붙였을까.
존재하려는 의지였다. 땅에는 포식자가 많다. 먹이 경쟁도 치열하다. 하늘은 비어있다. 하늘에는 먹이도 있다. 곤충들이 날아다닌다. "나는 하늘로 가겠다." 그 의지가 날개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작은 변화였을 것이다. 앞다리가 조금 길어졌다. 깃털이 생겼다. 나무에서 뛰어내릴 때 조금 더 멀리 갔다. 포식자에게서 조금 더 잘 도망쳤다. 곤충을 조금 더 잘 잡았다.
그 작은 변화를 가진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았다. 더 많이 번식했다. 자손에게 그 변화를 전했다. 세대가 거듭되었다. 변화가 누적되었다. 앞다리가 더 길어졌다. 깃털이 더 커졌다. 가슴 근육이 발달했다. 뼈가 가벼워졌다.
어느 순간, 진짜로 날았다. 땅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로 오르는 것. 그 순간 새가 탄생했다. 존재의 위상이 바뀌었다. 파충류에서 조류로.
이것이 공감의 창발이다. 의지가 환경과 반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다.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
안데스 산맥을 생각한다. 고도 4000미터 이상에 사는 사람들.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그들도 티베트인처럼 고산 적응을 했을까.
그렇다. 하지만 다르게 했다. 티베트인은 헤모글로빈을 줄였다. 안데스인은 헤모글로빈을 늘렸다. 정반대 전략이다. 하지만 둘 다 작동한다.
왜 다를까. 조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주한 시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유전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환경, 같은 문제, 하지만 다른 해결책.
이것이 진화의 아름다움이다. 정답이 하나가 아니다. 여러 길이 있다. 생명은 자기 방식을 찾는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다. 어떤 길은 막힌다. 어떤 길은 열린다. 어떤 길은 새로운 세계로 이어진다.
모켄족을 생각한다. 안다만 해와 미얀마 근처 바다를 떠다니는 사람들. 그들도 바자우족처럼 바다에서 산다. 하지만 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모켄 아이들은 물속에서 본다. 또렷하게. 보통 사람은 물속에서 흐릿하게 본다. 수정체가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한다. 하지만 모켄 아이들은 다르다. 수정체를 극단적으로 수축시킨다. 동공도 극단적으로 줄인다. 그래서 물속에서도 선명하게 본다.
과학자들이 연구했다. 이것이 유전적 변화인지, 훈련의 결과인지. 답은 둘 다였다. 모켄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물속에서 논다. 매일, 몇 시간씩. 눈이 적응한다. 수정체를 조절하는 근육이 발달한다.
하지만 유럽 아이들도 같은 훈련을 하면 될까. 과학자들이 실험했다. 스웨덴 아이들에게 물속에서 보는 훈련을 시켰다. 놀랍게도, 그들도 할 수 있었다. 모켄 아이들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이것이 뭘 의미할까. 인간에게는 잠재력이 있다. 물속에서 보는 능력. 하지만 대부분의 인간은 그 능력을 쓰지 않는다. 필요 없으니까. 모켄족은 그 능력을 끌어낸다. 필요하니까.
세대가 지나면 어떻게 될까. 모켄족 중에서 물속에서 더 잘 보는 아이들이 유리할 것이다. 물고기를 더 잘 잡을 것이다. 더 잘 먹고, 더 건강하고, 더 많이 번식할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가 퍼질 것이다.
천 년, 만 년 후에는 모켄족의 눈이 유전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물속 시력이 유전적 형질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이 진화다. 의지가 환경과 만나고, 반응이 일어나고, 공감이 누적되고, 형태가 변한다.
손을 다시 본다. 손가락 끝의 지문. 왜 지문이 있을까. 무엇을 위해.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논쟁했다. 어떤 이는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떤 이는 촉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어떤 이는 물을 배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최근 연구는 촉각 쪽에 손을 들어준다. 지문의 능선이 진동을 증폭시킨다. 물체의 질감을 더 잘 느낀다. 나무껍질의 거칠기, 과일의 익은 정도, 옷감의 부드러움. 지문이 있으면 더 잘 구분한다.
왜 이 능력이 필요했을까. 존재하기 위해서. 인간의 조상은 나무에서 살았다. 가지를 붙잡아야 했다. 제대로 붙잡지 못하면 떨어진다. 떨어지면 죽는다. 또렷한 촉각이 생존에 필수였다.
열매를 골라야 했다. 익은 열매와 덜 익은 열매. 독이 있는 열매와 없는 열매. 손으로 만져서 구분했다. 잘 구분하는 개체가 살아남았다. 지문이 더 발달한 개체가 유리했다.
의지가 먼저였다. "나는 나무에서 살겠다. 열매를 먹고 살겠다." 그 의지가 환경과 반응했다. 촉각이 발달했다. 지문이 생겼다. 손이 정교해졌다.
새로운 종의 탄생을 생각한다. 어떻게 일어날까.
생물학은 말한다. 생식적 고립에서 시작한다고. 두 집단이 더 이상 교배하지 못하면 다른 종이라고. 하지만 그 과정은 무엇인가.
공감이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단계별로.
첫째, 의지의 발화. 한 집단이 새로운 환경으로 간다. 왜 갈까. 존재하려는 의지 때문이다. 더 나은 곳을 찾아서. 더 많은 자원을 찾아서. 경쟁을 피해서.
둘째, 환경의 응답. 새로운 환경은 다르다. 기후가 다르다. 먹이가 다르다. 포식자가 다르다. 환경은 압력을 가한다. "여기서 살려면 변해야 한다."
셋째, 생명의 반응. 집단이 반응한다. 행동이 바뀐다. 먹는 것이 바뀐다. 짝짓기 방식이 바뀐다. 몸이 서서히 바뀐다.
넷째, 공감의 누적. 세대가 지난다. 변화가 쌓인다. 유전자가 변한다.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가 된다.
다섯째, 임계 전이. 어느 순간, 포화점에 도달한다. 변화가 임계치를 넘는다. 집단 전체가 동조한다. 공감장이 붕괴되고 재조직화된다.
여섯째, 존재화.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이전 종과 교배하지 못한다. 생식적으로 고립된다.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이것이 공감의 창발이다. 진화는 서서히 진행되지만, 창발은 한순간 일어난다.
갈라파고스 섬을 생각한다. 다윈이 관찰한 곳. 섬마다 다른 핀치새. 부리 모양이 다르다. 어떤 새는 부리가 두껍다. 씨앗을 깬다. 어떤 새는 부리가 얇다. 벌레를 잡는다. 어떤 새는 부리가 길다. 꽃 속 꿀을 먹는다.
원래는 같은 종이었다. 대륙에서 날아왔다. 한 무리가. 폭풍에 떠밀려 왔을 것이다. 우연히. 섬에 정착했다.
섬은 여러 개였다. 핀치새들이 흩어졌다. 각 섬의 환경이 달랐다. 어떤 섬에는 씨앗이 많았다. 어떤 섬에는 벌레가 많았다. 어떤 섬에는 꽃이 많았다.
"나는 여기서 살겠다." 각 섬의 핀치새들이 그 의지를 가졌다. 환경에 반응했다. 씨앗이 많은 섬에서는 부리가 두꺼운 개체가 유리했다. 벌레가 많은 섬에서는 부리가 얇은 개체가 유리했다.
세대가 지났다. 부리가 변했다. 몸 크기도 변했다. 노래도 변했다. 수백만 년이 지났다. 이제는 다른 종이다. 서로 교배하지 못한다. 13종의 핀치새가 되었다.
하나에서 여럿으로. 이것이 적응 방산(adaptive radiation)이다. 공감이론으로 보면, 하나의 공감장이 여러 공감장으로 분화한 것이다. 각 환경이 다른 공감을 만들었다. 각 공감이 다른 형태를 만들었다.
작은 집단을 생각한다. 왜 작은 집단에서 진화가 빠를까.
큰 집단에서는 변이가 묻힌다. 백만 명 중 한 명이 특별하다고 해도, 그 한 명의 영향은 미미하다. 통계적 오류 수준이다.
하지만 작은 집단에서는 다르다. 백 명 중 한 명이 특별하면, 그 한 명이 전체의 1퍼센트다. 무시할 수 없다. 그 한 명이 많이 번식하면, 다음 세대에 영향이 커진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감장의 크기다. 큰 집단은 공감장이 크고 무겁다. 관성이 크다. 변화하기 어렵다. 작은 집단은 공감장이 작고 가볍다. 관성이 작다. 쉽게 흔들린다.
한 개체의 특별한 형질이 집단 전체의 공감장을 바꿀 수 있다. 특히 그 개체가 여러 명이면. 그들이 서로 공명하면. 집단 전체가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
8대2 법칙을 생각한다. 20퍼센트가 80퍼센트에 영향을 미친다. 작은 집단에서 이상치가 20퍼센트를 넘으면, 그들이 새로운 중심이 된다. 뉴 노멀이 된다.
큰 집단에서는 이상치가 1퍼센트라서 다양성 스펙트럼에 포함되지 않는다. 버그 수준이다. 하지만 작은 집단에서는 이상치가 스펙트럼을 바꾼다. 전체 분포를 이동시킨다.
새로운 종은 이렇게 탄생한다. 작은 집단에서. 이상치들이 모여서. 공명하면서. 공감장을 바꾸면서.
인류의 탄생도 그랬을 것이다. 아프리카 어딘가. 작은 집단. 수백 명, 많아야 수천 명. 영장류의 한 무리.
그들 중 일부가 달랐다. 뇌가 조금 컸다. 도구를 잘 만들었다. 불을 사용했다. 언어를 발달시켰다. 협력을 잘했다.
큰 집단이었으면 그들은 묻혔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집단이었다. 그들이 유리했다. 더 많이 살아남았다. 더 많이 번식했다. 그들의 형질이 퍼졌다.
세대가 지났다. 뇌가 더 커졌다. 도구가 더 정교해졌다. 언어가 더 복잡해졌다. 협력이 더 긴밀해졌다.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었다. 더 이상 원숭이가 아니었다. 인간이 되었다. 새로운 종. 호모 사피엔스.
"나는 존재하겠다." 그 의지가 모든 것을 시작했다. 의지가 환경과 반응했다. 아프리카 사바나라는 환경. 기후 변화, 숲의 감소, 초원의 확장. 그 환경이 직립보행을 만들었다. 손의 자유를 만들었다. 도구 사용을 만들었다.
의지와 환경이 공감했다. 세대를 거쳐.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인간이라는 형태가 만들어졌다.
진화의 방향을 생각한다. 경쟁일까, 협력일까.
우리는 배웠다. 적자생존이라고.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나는 의심한다. 생명을 보라. 혼자 사는 생명이 얼마나 되나. 박테리아조차 군집을 이룬다. 나무는 뿌리로 연결되어 영양을 나눈다. 동물은 무리를 짓는다.
인간은 더하다. 가족, 부족, 국가. 언어, 문화, 기술. 모두 협력의 산물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함께할 때 강하다.
진화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다. 공감의 결과다. 개체는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총합은 협력으로 수렴한다.
친족선택을 보라. 내 유전자를 가진 개체를 돕는다. 조카, 사촌. 그들이 살아남으면 내 유전자도 살아남는다.
군집 협동을 보라. 개미, 벌. 여왕만 번식한다. 나머지는 일만 한다. 왜 그럴까. 집단 전체가 하나의 초개체(superorganism)이기 때문이다. 개체보다 집단이 선택의 단위다.
사회적 유대를 보라. 영장류는 털을 골라준다. 먹이를 나눈다. 새끼를 함께 키운다. 이것이 생존 전략이다. 함께 있어야 안전하다. 함께 있어야 강하다.
생명은 공감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혼자로는 불완전하다.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진화는 개체의 싸움이 아니다. 공감의 리듬이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우주의 호흡이다.
창밖을 다시 본다. 해가 지고 있다. 하늘이 붉다. 구름이 검붉게 물들었다.
생각한다. 진화는 무엇인가. 생명의 의지가 환경과 반응하여 공감으로 번역되는 과정이다. 생명은 이 순환 속에서 형태를 바꾸고, 집단은 그 에너지를 누적해 새로운 존재를 낳는다.
종의 탄생은 유전자의 변화가 아니다. 공감 에너지장이 임계치를 넘을 때 일어나는 존재의 재배열이다. 진화는 서사이고, 창발은 그 서사의 절정이다.
그 절정에서 자연은 다시 묻는다. "너는 이제 어떤 형태로 존재할 것인가?"
인류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공감으로. 존재하려는 의지가 환경과 만났다. 반응이 일어났다. 공감이 누적되었다. 임계치를 넘었다. 새로운 존재가 창발했다.
우리는 그 창발의 결과다. 수십억 년 동안 쌓인 의지의 결정체다. 생명과 환경이 나눈 대화의 최신 버전이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진화하고 있다. 환경은 계속 변한다. 우리는 계속 반응한다. 의지는 계속 발화한다. 공감은 계속 누적된다.
천 년 후, 만 년 후,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모른다. 하지만 확신한다. 그 변화는 우리의 의지에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존재하겠다. 나는 계속되겠다." 그 의지가 미래를 만들 것이다.
손을 펼친다. 지문이 보인다. 이 작은 능선들이 수백만 년 의지의 결과다. 존재하려는, 살아남으려는, 이어지려는 의지.
내일도 해가 뜨겠지. 그리고 생명은 계속될 것이다. 의지하고, 반응하고, 공감하며. 그렇게 존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