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진화론 7장
가을 풍경, 공원 길가에 줄서 있는 은행 나무. 초록했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늦깎이 여름 덕분이다. 언제쯤 단풍이 드려나했지만 어느 순간 하나씩 옷을 갈아입는다. 듬성 듬성 노란 빛을 낸다. 그러다 일순간 한꺼번에 모두 물들고 세상은 노란빛으로 가득해졌다.
은행 나무는 언제 어떻게 노랗게 변할까? 기온? 습도? 풍랑? 여러 조건이 임계점을 넘을 때 변할 것이다. 나무는 저마다 나름의 임계점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쉬운 방법이 있지 않을까? 바로 옆에 있는 은행나무가 변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 변하지 않을까? 증명은 하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더워진다. 옷을 벗는다. 저마다 다른 기준이 있다. 열이 많은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참기 어려울 정도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다 벗는다. 하지만 때로는 주변 사람들이 옷을 벗으면 따라서 벗을 때도 있다. 이것이 더 효율적이다. 이것은 공감이다. 스스로 판단하면 복잡하지만 남을 따라하면 쉬워진다.
진화도 그렇지 않을까. 개체에 변이가 생기고, 자연선택을 받고, 세대를 거쳐 누적되고, 결국 종이 바뀐다고. 천천히. 점진적으로. 하나씩.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자연을 보면 그렇지 않다. 변화는 항상 집단 단위로 온다.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마치 성에처럼. 하나가 변화하면 둘 셋은 따라서 변한다. 진화도 따라서 진화하지 않을까.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박테리아 군집에 대한. 페트리 접시 안의 수백만 마리. 처음에는 무질서하게 움직인다. 각자 방향으로. 제멋대로.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마치 지휘자의 신호를 받은 것처럼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생물막을 만든다. 항생제에 저항한다. 집단으로.
연구자들은 이것을 쿼럼 센싱(quorum sensing)이라 부른다. 신호 물질의 농도가 특정 임계치를 넘으면 전체가 행동을 바꾼다. 그 임계치는 대략 20%다. 전체의 20%가 신호를 보내기 시작하면, 나머지 80%가 따라온다.
20%. 파레토 법칙. 8대2. 어디서나 나타나는 이 비율. 우연일까.
새 떼를 생각한다. 수천 마리가 하늘을 난다. 방향을 바꾼다. 동시에.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 결정한다. 물고기 떼도 그렇다. 개미 군집도 그렇다. 하나하나는 단순하다. 하지만 모이면 복잡해진다. 지능이 생긴다. 집단 지능.
인간도 다르지 않다. 유행이 퍼진다. 아이디어가 전파된다. 혁명이 일어난다. 모두 집단 현상이다. 개인이 시작하지만 집단이 완성한다. 20%가 바뀌면 80%가 따라온다. 그리고 전체가 바뀐다.
진화도 그렇지 않을까. 개체의 변이가 아니라 집단의 패턴 변화. 이것이 진짜 진화 아닐까.
물리학 책을 뒤적인다. 위상 전이(phase transition)라는 장. 물이 얼음이 되는 순간. 물이 수증기가 되는 순간. 액체에서 고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분자 하나하나가 천천히 바뀌는 게 아니다. 온도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전체가 한꺼번에 바뀐다.
자석도 그렇다. 큐리 온도. 그 온도를 넘으면 자성을 잃는다. 아래로 내려오면 다시 자성을 얻는다. 전환. 갑작스러운.
복잡계 이론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시스템이 임계점에 도달하면 작은 변화가 전체를 뒤집는다. 나비 효과. 티핑 포인트. 모래 더미에 모래알 하나를 더 얹는 순간 전체가 무너진다.
생명도 복잡계다. 당연히 같은 법칙을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진화도 임계점이 있을 것이다. 서서히 쌓이다가 어느 순간 폭발한다. 캄브리아기 대폭발처럼. 5억 년 동안 단순한 생명만 있다가 갑자기 모든 동물 문(phylum)이 나타났다. 왜? 임계점을 넘어서.
하지만 무엇이 쌓이는가. 무엇이 임계점을 만드는가. 돌연변이? 아니다. 돌연변이는 무작위다.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이.
공감이다. 생명과 환경의 상호작용. 반복. 누적. 패턴. 이것이 쌓인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으면 전체가 바뀐다.
진화에는 두 가지 힘이 있다. 보존하려는 힘과 변화하려는 힘. 물리학의 언어를 빌리면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
강한 핵력은 원자핵을 붙들어 맨다. 양성자와 중성자를 하나로. 엄청난 힘이다. 쪼개려면 핵폭탄이 필요하다. 생명에도 강한 핵력이 있다. DNA 구조를 보존하는 힘. 종의 정체성을 지키는 힘. 개와 고양이가 교배되지 않는 이유. 인간과 침팬지가 섞이지 않는 이유. 강한 핵력이 막는다.
약한 핵력은 다르다. 방사성 붕괴를 일으킨다. 원자를 바꾼다. 천천히.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생명에도 약한 핵력이 있다. 유전자 발현을 바꾸는 힘. 후성유전학적 스위치. 신경 가소성. 면역 시스템의 재조정. 행동 패턴의 변화. 약한 핵력은 변화를 허용한다.
진화는 이 둘의 긴장이다. 강한 핵력은 "그대로 있어라"고 말한다. 약한 핵력은 "바뀌어라"고 속삭인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강한 핵력이 이긴다. 종은 유지된다. 하지만 환경이 급변하면 약한 핵력이 누적된다. 점점 더.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는다. 그리고 강한 핵력도 굴복한다. 종 전체가 바뀐다.
개체 수준에서는 강한 핵력이 우세하다. 한 개체가 바뀌어도 종은 안 바뀐다. 하지만 집단 수준에서는 다르다. 약한 핵력이 확대된다. 20%가 바뀌면 공명이 시작된다. 80%가 따라온다. 전체가 바뀐다. 유전의 복잡계가 공감의 힘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따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진화한다.
이것이 집단적 후천 진화다.
과정을 상상해본다. 단계별로.
먼저 환경이 바뀐다. 기후가 달라진다. 새로운 포식자가 나타난다. 식량이 부족해진다. 질병이 퍼진다. 환경이 신호를 보낸다. "적응해라. 아니면 죽어라."
대부분은 견딘다. 기존 방식대로. 하지만 일부는 다르다. 민감한 개체들. 이상치(outlier). 약한 핵력에 반응하는 존재들. 이들이 먼저 바뀐다. 행동을 바꾼다. 식습관을 바꾼다. 면역 반응을 바꾼다. 대사를 바꾼다. 뇌 회로를 재조정한다.
처음에는 소수다. 5%. 10%. 무시된다. 이상한 놈들. 하지만 계속 늘어난다. 환경이 계속 압력을 주니까. 15%. 18%. 20%.
임계점이다.
20%를 넘는 순간 무언가가 바뀐다. 공감장이 공명하기 시작한다. 소수의 변화가 다수에게 전파된다. 직접적으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페로몬처럼. 신호처럼. 분위기처럼. 집단 전체의 패턴이 재정렬된다.
나머지 80%도 바뀐다. 강제로. 환경이 더 이상 기존 방식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이미 20%가 길을 닦아놨다.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빠르다. 효율적이다. 동시다발적이다.
이것이 집단적 후천 진화다. 개체가 먼저 바뀌는 게 아니라 패턴이 먼저 바뀐다. 그리고 개체들이 그 패턴을 따른다.
세대가 지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후천적 변화가 유전적 기억으로 바뀐다.
과학은 이것을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라 부른다. DNA 서열은 안 바뀐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가 켜지고 어떤 유전자가 꺼지는지, 그 패턴이 바뀐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패턴이 자식에게 전달된다.
네덜란드 기근 연구가 이것을 보여줬다. 1944년 겨울. 독일군의 봉쇄로 네덜란드에 기근이 왔다. 임신부들이 굶었다. 아이들이 태어났다. 성인이 되었을 때 비만과 당뇨 발생률이 높았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태아 시절 영양 부족이 대사에 영향을 줬다고.
하지만 손자 세대도 같은 패턴을 보였다. 손자들은 기근을 겪지 않았다. 충분히 먹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경험이 유전자 발현 패턴으로 전달되었다. 두 세대를 건너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연구도 비슷했다. 생존자의 자녀들은 PTSD 발생률이 높았다.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비정상이었다. 부모의 트라우마가 유전자 스위치를 바꿨고, 그것이 자식에게 전달되었다.
메커니즘은 명확하다. 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염색질 구조 변화. miRNA의 생식세포 전이. 환경이 만든 변화가 세포 기억으로 저장되고, 생식세포를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
처음에는 약한 핵력이다. 발현 패턴의 변화. 하지만 세대를 거치면서 강한 핵력으로 굳어진다. 유전자 수준의 변화로. 새로운 표준이 된다.
이것이 진화의 실제 프로세스다. 후천이 선천이 된다. 집단의 경험이 종의 유전자가 된다.
실제 사례를 보자. 유당 분해 효소. 대부분의 포유류는 젖을 뗀 후 유당을 소화하지 못한다. 인간도 마찬가지였다. 아기 때는 가능하지만 어른이 되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1만 년 전 유럽 일부 지역에서 목축이 시작되었다. 소, 양, 염소를 길렀다. 우유를 마셨다. 처음에는 소수만 소화할 수 있었다. 우연히 그 유전자 변이를 가진 사람들. 하지만 이들이 생존에 유리했다. 영양이 풍부했으니까. 번식에 성공했다.
20%를 넘었다. 그 순간 전체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유를 마시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 집단 패턴이 되었다. 수천 년이 지나자 북유럽 인구의 대부분이 유당 분해 효소를 가지게 되었다. 후천적 식습관이 유전적 형질로 굳어진 것이다.
티베트 고산 적응도 그렇다. 3만 년 전 일부 집단이 히말라야 고원에 정착했다. 산소가 부족했다. 대부분 사람은 고산병에 걸린다. 하지만 일부는 적응했다. EPAS1 유전자 변이. 적혈구 과다 생산을 억제하여 혈액이 끈적해지는 것을 막는다.
처음에는 소수였다. 하지만 고산 환경에서 이들이 유리했다. 번식에 성공했다. 20%를 넘었다. 패턴이 바뀌었다. 지금은 티베트인의 대부분이 이 변이를 가진다. 집단적 후천 진화의 결과다.
이누이트의 지방 대사도 비슷하다. 극한의 추위. 탄수화물 부족. 생선과 바다표범 고기 중심 식단. 일부가 먼저 적응했다. 인슐린 조절, 지질 대사 패턴이 바뀌었다. 임계점을 넘었다. 전체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이누이트만의 독특한 대사 패턴이 되었다.
모든 사례가 같은 패턴을 따른다. 환경 변화, 소수의 적응, 20% 임계, 집단 전환, 세대 누적, 유전적 고착. 집단적 후천 진화.
해당 유전적 요소의 번식만으로 집단 전체를 지배하기는 어렵다. 그 유전자를 가지지 않는 개체들 모두 전멸하지 않는 이상 번식하여 후대 전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고 해당 유전자를 가졌을까. 그 답이 집단적 후천 진화다.
현대를 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집단적 후천 진화가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 환경. 스마트폰 세대. 태어날 때부터 스크린을 본다. 손가락으로 스와이프한다. 짧은 영상을 본다. 빠르게 전환한다. 멀티태스킹한다. 이것이 뇌를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소수였다. 얼리어답터. 기술 친화적 인간. 하지만 빠르게 늘었다. 스마트폰 보급률. 2007년 아이폰 출시. 2025년 현재 전 세계 수십억 명. 20%를 넘은 지 오래다. 이제는 80%, 90%.
집단 패턴이 바뀌었다. 주의력 구조가 달라졌다. 짧고 강렬한 자극에 최적화되었다. 시각 중심 사고가 강화되었다. 텍스트보다 이미지. 논리보다 감각.
이것은 후성유전학적 변화다. 아직 DNA 서열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유전자 발현 패턴은 바뀌고 있다. 뇌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신경 가소성. 그리고 이것이 다음 세대로 전달될 것이다. 후천이 선천이 될 것이다.
디지털 진화형 인간. 새로운 발현 패턴. 같은 호모 사피엔스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 조선 시대 한국인과 현대 한국인의 차이만큼이나 큰. DNA는 같다. 하지만 발현이 다르다. 사는 방식이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이것이 집단적 후천 진화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도 어느새 유투브, SNS 환경에 적응해 있다. 물론 많이 접해서 그럴 수 도 있다. 하지만 집단적 변화에 동조하고 공감했기 때문에 쉽게 적응이 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나. 어떤 패턴을 따르고 있나. 20%에 속하나, 80%에 속하나.
아마 80%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먼저 바꾼 사람들이 있었다. 디지털을 받아들인. 인터넷을 사용한. SNS를 시작한. 나는 따라갔다. 늦게. 하지만 결국 따라갔다. 지금은 당연하게 쓴다. 스마트폰을. 이메일을. 메신저를.
어린 친구들은 다를 것이다. 그들은 20%가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을 먼저 받아들이는. AI와 대화하는. 가상현실에서 사는.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그들의 뇌는 나와 다르게 발달할 것이다. 유전자 발현이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더 다를 것이다. 세대를 거치면서 그 차이가 유전적 기억으로 굳어질 것이다.
세대간 차이도 변화 속에서 집단의 후천적 진화를 유도한다. 이성적으로 배워서가 아니다. 집단적 공감의 영향이다. 앞으로의 신 세대들의 의해 지금의 우리도 또 진화할 수 있다. 공감의 문만 열고 있으면.
진화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안에서. 우리 아이들 안에서. 집단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다시 노란잎이 떨어지고 있는 은행 나무를 본다. 가을이라는 환경에 공감하여 변하고 진화하고 있다. 집단적으로 효율적으로 공감의 문은 열여있다.
진화도 그렇다. 개체가 아니라 집단이. 천천히가 아니라 갑자기. 돌연변이가 아니라 공감장의 공명이.
강한 핵력이 존재를 붙든다. 약한 핵력이 변화를 속삭인다. 20%가 임계점을 만든다. 80%가 따라온다. 후천이 선천이 된다. 경험이 유전자가 된다.
이것이 진화의 실체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하지만 자연이 보여주는.
우리도 진화하고 있다. 우리가 속한 집단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20%인가, 80%인가. 변화를 만드는 쪽인가, 따라가는 쪽인가.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집단적으로. 그리고 그 변화가 축적되어 언젠가 새로운 종이 될 것이라는 것.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계속된다. 우리 안에서. 공감장의 흐름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