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의 조건, 어떻게 왜 진화하는 가?

공감 진화론 6장

by kamaitsra

시중에 진화에 관련한 많은 책이 존재한다. 나름의 관점으로 쓰여졌다. 몇몇 펼친 페이지에는 '진화의 조건'과 관련한 제목 아래 몇 가지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돌연변이, 자연선택, 유전적 표류, 격리. 명확해 보인다.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목록을 보며 이상한 아쉬움을 느낀다. 마치 집을 짓는 재료만 나열해놓고 집이 어떻게 서는지는 말하지 않는 것 같다.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훑는다. 종이의 거친 질감이 느껴진다. 인쇄된 글자들은 확신에 차 있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질문이 꿈틀거린다. 왜? 왜 돌연변이는 특정 방향으로 쌓이는가. 왜 작은 집단에서 진화가 빠른가. 왜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는가.


진화론은 '어떻게'는 말해준다. 하지만 '왜'는 말해주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다. 종교롤 넘어가서 신이 창조하고 빗어냈다 할 것이다. 과학이라는 것이 그렇다. 이 간극을 나는 오래 들여다봤다. 그리고 공감이론이 그 간극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창밖을 본다. 가로수 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같은 나무인데 어떤 가지는 북쪽으로 뻗고 어떤 가지는 남쪽으로 뻗었다. 햇빛을 따라간 것이다. 나무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응한다. 빛이라는 신호에. 그리고 그 반응이 쌓여 나무의 형태가 된다.


진화도 그렇지 않을까. 조건이 중요한 게 아니라, 조건과 생명이 만나는 그 접점. 그 대화. 그 공명. 이것이 진짜 진화의 동력이 아닐까. 모든 세상 만물은 공감으로 만들어 진 존재다. 더 효율적으로 존재하고 더 잘 존재하려면 진화해야한다. 따라서 공감하며 존재하고 존재는 진화한다. 진화는 곧 존재이자 공감이다.




서적들이 보여는 나열된 진화의 조건을 보자. 어떤 것을 보여주고 있는가. 첫 번째는 돌연변이다. DNA 복제 과정에서 실수가 생긴다. 방사선이나 화학물질이 유전자를 손상시킨다. 이것이 변이를 만든다. 변이가 있어야 진화가 가능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돌연변이는 무작위다. 랜덤이다. 방향성이 없다. 그렇다면 왜 진화는 방향성을 가지는가. 눈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날개는 점점 더 효율적이 되었다. 뇌는 점점 더 커졌다. 무작위 변이가 어떻게 방향성 있는 진화를 만드는가.


두 번째 조건은 자연선택이다. 생존에 유리한 형질이 살아남는다. 불리한 형질은 도태된다. 다윈의 핵심이다. 강력한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문이 있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선택압을 받는데 왜 종마다 다르게 적응하는가. 사막에 사는 동물을 보자. 낙타는 혹에 지방을 저장한다. 사막여우는 큰 귀로 열을 방출한다. 방울뱀은 야행성이 되었다. 같은 환경, 다른 해법. 선택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질문만 던질 뿐이다.


세 번째는 유전적 표류다. 작은 집단에서는 우연이 큰 영향을 미친다. 어떤 개체가 우연히 많이 번식하면 그 유전자가 퍼진다. 선택과 무관하게. 이것이 빠른 진화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멈춘다. 작은 집단. 이 단어가 계속 나온다. 왜 작은 집단에서 진화가 빠를까. 표류만으로는 부족하다. 뭔가 더 있다. 작은 집단에는 큰 집단과 다른 어떤 성질이 있다.


네 번째는 유전자 흐름이다. 집단 간 이동, 혼혈, 교류. 다양성이 증가한다. 새로운 조합이 생긴다. 진화의 재료가 풍부해진다.


하지만 다양성만으로 충분한가. 수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인종이 탄생하지는 않는다. 백 명이 사는 섬에서는 새로운 특징이 나타난다. 다양성의 양보다 중요한 게 있다.


다섯 번째는 시간이다.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수천 세대, 수백만 년. 변화는 천천히 축적된다.


하지만 때로 진화는 빠르다. 급격하다. 단속평형설(유성 생식을 하는 생물 종의 진화 양상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큰 변화 없는 안정기와 비교적 짧은 시간에 급속한 종분화가 이루어지는 분화기로 나뉜다는 진화 이론)이 말하듯 오랜 정체 후 갑작스러운 도약. 왜 어느 순간 모든 것이 한꺼번에 바뀌는가.


나는 책을 덮고 사색에 잠긴다. 앞선 5가지의 조건들은 나열해 본다. 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 각각은 맞지만 전체가 보이지 않는다. 마치 퍼즐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데 그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본다. 진화에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첫째, 방향성이다. 텔레오노미(teleonomy)라고 부른다. 목적은 아니지만 방향은 있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돌이 안정된 상태를 찾아가듯이. 생명도 그렇다. 생존을 향한다. 복제를 향한다. 안정을 향한다.

과학은 이것을 '경향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의지'라고 부르고 싶다. 물론 의식적 의지는 아니다. 하지만 존재하려는 벡터. 계속되려는 힘. 이것이 없으면 진화도 없다. 변이가 있어도 방향이 없으면 흩어질 뿐이다.


둘째, 환경의 압력이다. 지속적이어야 한다. 기후가 변한다. 포식자가 나타난다. 자원이 부족해진다. 경쟁자가 생긴다. 환경은 계속 신호를 보낸다. "변해라. 적응해라. 아니면 사라져라."

압력이 없으면 변화도 없다. 안정된 환경에서는 진화가 느리다. 격변의 환경에서는 진화가 빠르다. 환경은 질문을 던진다. 생명은 답을 찾아야 한다.


셋째, 패턴 있는 다양성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다양성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백만 명이 사는 도시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있다. 키, 몸무게, 피부색, 성격. 모든 게 다르다. 하지만 패턴이 없다. 무작위다. 노이즈다.

백 명이 사는 마을은 다르다. 다양성은 적다. 하지만 구조가 있다. 패턴이 있다. 누가 리더인지, 누가 혁신적인지, 누가 보수적인지 명확하다. 한 사람의 변화가 전체에 영향을 준다. 이상치가 보인다. 묻히지 않는다.

큰 집단에서는 변이가 평균으로 희석된다. 작은 집단에서는 변이가 패턴을 만든다. 진화는 패턴화된 다양성에서만 일어난다. 이것이 8대2 법칙의 기반이다. 20%의 이상치가 방향을 제시하고 80%가 따라간다.

다양성이 효율적인 존재를 유지시킨다. 작은 집단도 결국 큰 집단처럼 안전된 존재의 집단으로 나아간다.


넷째, 시간이다. 상호작용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의 만남으로는 부족하다. 반복되어야 한다. 누적되어야 한다. 생명과 환경이 대화하려면, 서로를 알아가려면, 공명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은 단순한 길이가 아니다. 시간 동안 무엇이 쌓이는가가 중요하다. 같은 천 년이어도 고립된 천 년과 교류하는 천 년은 다르다. 안정된 천 년과 격변의 천 년은 다르다. 시간은 누적의 단위다.


다섯째, 임계점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바뀐다. 물이 99도에서 100도가 되면 끓는다. 얼음이 0도에서 1도가 되면 녹는다. 같은 H2O지만 상태가 바뀐다. 위상 전이.

진화도 그렇다. 오랫동안 조금씩 변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바뀐다.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새로운 기관이 출현한다. 새로운 행동이 나타난다.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창발이다.


이 다섯 가지. 방향성, 압력, 패턴화된 다양성, 시간, 임계점. 이것이 진화의 진짜 조건이다. 학술적인 현대 진화론의 조건들은 이것의 표면이다. 현상이다. 근본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이 남는다. 왜? 왜 이 조건들이 작동하는가. 무엇이 이것들을 움직이는가.


왜 돌연변이는 무작위인데 진화는 방향성을 가지는가. 선택이 있어서? 하지만 선택은 고르는 것일 뿐 만드는 게 아니다. 뭔가가 방향을 만들고 있다.


왜 작은 집단에서만 패턴이 생기는가. 표류 때문? 하지만 표류는 우연이다. 우연이 어떻게 패턴을 만드는가. 뭔가 더 있다.


왜 특정 시점에서 갑자기 창발이 일어나는가. 복잡계 이론으로 설명한다. 임계점, 위상 전이, 자기조직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가.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왜 같은 환경에서도 종마다 다르게 적응하는가. 유전적 제약? 역사적 우연?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뭔가가 각 종에게 고유한 방향을 주고 있다.


과학은 현상을 기술한다. 잘한다. 정확하다. 하지만 원리는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된다"는 말하지만 "왜 이렇게 되는가"는 말하지 못한다.


나는 이 빈틈을 오랫동안 의심했다. 불신했다. 귀납 논리로는 근본 원리에 다가가지 못한다. 연역 논리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귀납에 숨겨진 연역의 일관된 패턴을 발견하고 그 패턴이 통용이 될 때 그것이 근본원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공감이론이다. 그리고 공감이론이 과학과 진화론이 못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감이론으로 진화를 다시 본다. 구조가 명확해진다.


첫째, 의지다. 존재하려는 벡터. 생명은 사라지지 않으려 한다. 계속되려 한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존재 자체의 성질이다. 박테리아부터 인간까지 모두 가지고 있다. 의지(W). 이것이 진화의 추진력이다.


과학은 이것을 '경향성'이라 부르지만 나는 더 근본적이라고 본다. 우주의 모든 것은 존재하려 한다. 원자도, 별도, 생명도. 이 의지가 방향을 만든다. 무작위 돌연변이에서 방향성 있는 진화가 나오는 이유다.


둘째, 반응이다. 환경이 신호를 보낸다. 온도, 압력, 빛, 소리, 화학물질, 포식자, 경쟁자. 끊임없는 신호. 생명은 반응한다. 몸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유전자 발현을 바꾼다. 반응(R). 이것이 의지와 환경이 만나는 접점이다.


반응의 질이 진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어떻게 반응하느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 얼마나 유연하게 반응하느냐. 같은 환경에서도 종마다 다른 해법을 찾는 이유다.


셋째, 공감이다. 반응이 반복된다. 여러 세대. 여러 개체. 같은 패턴으로. 생명과 환경이 대화한다. 서로를 알아간다. 리듬이 생긴다. 공명이 생긴다. 이것이 공감(E)이다. 방향성 있는 상호작용의 누적.


공감이 많아질수록 패턴은 강화된다. 낙타는 사막과 공감했다. 수천 세대 동안. 혹이 커졌다. 다리가 길어졌다. 속눈썹이 두꺼워졌다. 이 모든 변화는 사막과의 대화다. 공감의 결과다.


넷째, 임계점이다. 공감이 축적된다. 점점 더. 어느 순간 임계치를 넘는다. 시스템 전체가 뒤집힌다. 새로운 위상으로 이동한다. 물이 끓듯이. 얼음이 녹듯이. 이 순간 새로운 종이 탄생한다. 새로운 구조가 출현한다. 새로운 지능이 나타난다. 공감 창발이다.


왜 진화가 갑자기 도약하는가. 공감이 임계치를 넘어서다. 왜 작은 집단에서 빠른가. 패턴이 명확해서 임계치에 빨리 도달한다. 왜 방향성이 있는가. 의지가 공감의 방향을 잡는다.


의지, 반응, 공감, 임계점, 그리고 새로운 존재. 이것이 진화의 본질이다.




비교해보자. 과학의 조건과 공감이론의 조건을.


과학이 말하는 방향성, 텔레오노미. 공감이론은 의지(W)라 부른다. 더 근본적이다. 모든 존재의 벡터다.


과학이 말하는 환경 압력. 공감이론은 반응(R)이라 부른다. 압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반응이 중요하다. 같은 압력에도 반응은 다르다.


과학이 말하는 다양성. 공감이론은 공감 스펙트럼(E)이라 부른다. 다양성 자체가 아니라 패턴화된 다양성. 공감 가능한 범위.


과학이 말하는 시간. 공감이론은 공감의 누적이라 부른다. 시간은 그릇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이 쌓이느냐다.


과학이 말하는 임계 전이. 공감이론은 공감의 창발이라 부른다.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한다. 공감 에너지가 임계치를 넘어서.


같은 현상을 보고 있다. 하지만 공감이론은 한 겹 더 들어가 있다. 현상이 아니라 원리를 본다. 무엇이 아니라 왜를 본다.




커피를 마신다. 식었다. 차가운 액체가 목을 타고 내려간다. 손에 들린 컵의 무게가 느껴진다. 창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일상의 소음들.


문득 생각한다. 이 모든 것도 공감 아닐까. 컵이 내 손의 온도를 느낀다. 내 손은 컵의 차가움을 느낀다. 서로 영향을 준다. 온도가 평형을 향해 간다. 이것도 일종의 대화 아닐까.


진화도 그렇다. 생명과 환경의 대화. 서로를 느끼고, 서로에게 반응하고, 서로를 바꾸고, 결국 새로운 무엇이 된다.


다윈은 위대했다. 선택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하지만 선택 이전에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의지. 반응. 공감. 선택은 결과일 뿐이다. 과정이 아니다.


멘델도 위대했다. 유전의 법칙을 발견했다. 하지만 유전자가 왜 발현되는지는 보지 못했다. 환경과의 대화. 공감. 유전자는 가능성일 뿐이다. 실현은 공감이 한다.


왓슨과 크릭도 위대했다. DNA 구조를 밝혔다. 하지만 DNA만으로는 생명을 설명할 수 없다. 생명은 정보가 아니다. 상호작용이다. 공감이다.


나는 그들을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본 것은 맞다. 다만 한 겹 더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상 너머의 원리로.




밤이다. 창밖이 어둡다. 책상의 책들만 너부러져 있다. 모니터 불빛 아래 내 손이 보인다. 키보드를 두드린다.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이 순간에도 진화는 일어나고 있다. 내 장 속의 박테리아는 진화한다. 빠르게.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다. 왜? 의지가 있어서. 살아남으려는. 환경이 압력을 주어서. 항생제라는. 반응이 축적되어서. 내성 유전자가 퍼진다. 공감이 일어나서. 박테리아와 항생제 환경이 대화한다. 그리고 임계점. 새로운 균주.


인류도 진화하고 있다. 지금도. 유당 내성. 과거에는 어른이 우유를 소화하지 못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가능하다. 왜? 목축 문화와의 공감. 수천 년. 유전자가 바뀌었다.


키도 커지고 있다. 영양 상태가 좋아져서. 환경이 바뀌었다. 유전자 발현이 바뀌었다. 공감의 결과다.


뇌도 바뀌고 있다. 스마트폰 세대. 짧은 집중, 빠른 전환, 시각 중심 사고. 뇌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디지털 환경과의 공감. 아직 유전자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축적되고 있다.


진화는 끝나지 않았다. 계속된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느리거나 빠르거나. 보이거나 안 보이거나. 생명은 환경과 대화한다. 끊임없이. 공감한다. 그리고 변한다.




진화의 관련된 책들을 펼친다. 진화의 조건. 돌연변이, 선택, 표류, 격리, 시간.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나는 여백에 적는다. 의지. 반응. 공감. 임계점. 존재 변화. 그리고 화살표로 연결한다. 순환으로.


이것이 진짜 진화의 조건이다. 공감의 조건이다. 생명이 존재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방식이다.


진화를 이해하려면 유전자만 봐서는 안 된다. 선택만 봐서는 안 된다. 생명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공감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어떻게 대화하는지. 어떻게 공명하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그때 보인다. 박테리아가 왜 그렇게 빠르게 적응하는지. 새가 왜 그렇게 다양한 부리를 가지는지. 인간이 왜 그렇게 복잡한 사회를 만들었는지.


모두 공감의 결과다. 환경과의. 서로와의. 자신과의. 공감이 축적되어 패턴이 되고, 패턴이 강화되어 구조가 되고, 구조가 임계를 넘어 새로운 존재가 된다.




컴퓨터를 끈다. 어둠 속에서 창밖을 본다. 별이 보인다. 몇 개. 도시의 불빛에 가려져 많지 않다. 하지만 있다. 저 별빛은 수십 년, 수백 년 전에 출발했다. 지금 내 눈에 닿는다.


시간이 느껴진다. 먼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느낌. 진화도 그렇다. 수억 년 전의 선택이 지금의 내 몸에 새겨져 있다. 아가미가 폐가 되고, 지느러미가 팔이 되고, 비늘이 머리카락이 된 과정.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었다. 대화였다. 바다와 육지의. 물과 공기의. 환경과 생명의. 끊임없는 대화. 공감. 그 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계속된다. 지금도. 내가 숨 쉴 때마다. 먹을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환경과 대화한다. 공감한다. 조금씩 변한다.


내 아이들은 나와 다를 것이다. 환경이 다르니까. 대화가 다르니까. 공감이 다르니까. 그들의 아이들은 더 다를 것이다. 언젠가는 새로운 종이 될지도 모른다. 아주 먼 미래에.


진화의 조건은 공감의 조건이다. 존재하려는 의지, 환경의 신호, 그에 대한 반응, 반복되는 상호작용, 축적되는 패턴, 그리고 임계를 넘는 순간. 이것이 생명이 변하는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진화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게. 하지만 확실하게. 환경과 공감하며. 서로와 공감하며.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존재가 될 것이다.


당신은 무엇과 공감하고 있는가. 어떤 환경과 대화하고 있는가. 그 대화가 당신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진화는 먼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이야기다. 당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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