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진화: 진화는 생명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공감 진화론 9장

by kamaitsra

새벽 세시 반. 잠이 깨었다.창밖이 아직 어둡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희미한 빛도 없다. 고요하다. 하지만 고요 속에서도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 심장이 뛴다. 피가 흐른다. 세포가 호흡한다. 멈추지 않는다. 잠든 사이에도 계속되었다. 존재하려는 의지.


일어나 창문으로 간다. 유리가 차갑다. 손바닥을 댄다. 냉기가 느껴진다. 밖을 본다. 가로등 불빛 아래 거리가 보인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텅 빈 것은 아니다. 바람이 분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공기가 움직인다. 보이지 않지만 거기 있다. 존재한다.


존재란 무엇일까. 그냥 있는 것일까. 아니다. 존재는 계속하려는 의지다. 멈추지 않으려는 힘이다. 바위도 부서지지 않으려 한다. 물도 흐르려 한다. 바람도 움직이려 한다. 모든 것이 존재하려 한다.


그렇다면 존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정체된 채로? 아니다. 변화하면서. 적응하면서. 진화하면서.


진화. 이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생물을 떠올린다. 물고기가 육지로 올라오고, 공룡이 새가 되고, 원숭이가 인간이 되는. 생명의 이야기. 하지만 나는 의심한다. 진화가 생명에만 있는 것일까. 생명 이전에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을까.




우주의 시작을 생각한다. 빅뱅. 137억 년 전.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질도, 빛도, 시간도, 공간도. 하지만 무(無)는 아니었다. 뭔가가 있었다. 존재하려는 의지. 방향성. 어디론가 향하려는 힘.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 물리학은 이렇게 부른다. 진공 속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쌍으로 생기고 사라진다. 무에서 유가 나타났다 소멸한다. 찰나의 존재. 하지만 그 찰나에도 의지가 있었다. 존재하려는. 계속되려는.


어느 순간 균형이 깨졌다. 입자가 반입자보다 조금 더 많이 남았다. 왜? 우연? 아니면 의지? 나는 의지라고 본다. 존재하려는 의지가 소멸을 이겼다. 그 순간 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에너지뿐이었다. 엄청난 온도. 형체가 없었다. 하지만 냉각되기 시작했다. 온도가 내려가자 에너지가 물질로 응축되었다. E=mc².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에너지와 물질은 같다. 형태만 다를 뿐.


처음 나타난 입자들. 쿼크, 전자, 중성미자. 이들이 결합하기 시작했다. 쿼크 셋이 모여 양성자가 되었다.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여 원자핵이 되었다.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원자가 탄생했다.


이것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다. 진화다. 더 안정된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 쿼크는 혼자보다 셋이 더 안정적이다. 강한 핵력이 묶어준다. 원자핵은 전자를 끌어당긴다. 전자기력으로. 안정을 향한 의지. 이것이 진화의 시작이다.




처음 만들어진 원소는 수소였다. 가장 단순하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 그다음은 헬륨. 양성자 둘과 중성자 둘.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우주는 더 복잡한 원소를 필요로 했다. 어떻게?


별이 탄생했다. 수소가 모였다. 중력으로. 질량이 커지자 압력과 온도가 올라갔다. 임계점을 넘었다. 핵융합이 시작되었다. 수소가 헬륨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별이 빛나기 시작했다.


별의 중심에서 핵융합은 계속되었다. 헬륨이 탄소가 되었다. 탄소가 산소가 되었다. 산소가 네온이 되었다. 점점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졌다. 철까지. 하지만 철 너머는? 핵융합으로는 불가능했다. 에너지를 흡수하니까.


별이 늙었다. 연료가 떨어졌다. 중력이 이겼다. 별이 수축했다. 급격하게. 중심부의 밀도가 극한에 달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폭발했다. 초신성(supernova).


폭발의 에너지로 철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구리, 은, 금, 우라늄. 별의 죽음이 새로운 원소를 낳았다. 이 원소들이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새로운 별의 재료가 되었다. 행성의 재료가 되었다. 생명의 재료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화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불안정한 것에서 안정된 것으로. 고립된 것에서 결합된 것으로. 우주는 태어난 순간부터 진화하고 있었다.




지구를 생각한다. 46억 년 전 형성되었다. 처음에는 뜨거운 용암 덩어리였다. 하지만 식었다. 표면이 굳어졌다. 대기가 형성되었다. 수증기가 응축되었다. 비가 내렸다. 오랜 시간. 바다가 만들어졌다.


바다 속 깊은 곳. 열수 분출공(hydrothermal vent). 뜨거운 물이 분출된다. 미네랄이 풍부하다. 에너지가 있다.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단순한 분자들이 복잡한 분자로 결합한다. 아미노산이 만들어진다. 핵산이 만들어진다.


이것도 진화다. 화학 진화. 무기물이 유기물로. 단순 분자가 복잡 분자로. 생명 이전의 진화. 밀러-유리 실험(Miller-Urey experiment)이 이것을 보여줬다. 원시 대기를 재현하고 전기 방전을 일으키자 아미노산이 생성되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어느 순간 분자들이 자기 복제를 시작했다. RNA가 나타났다. 스스로를 복사할 수 있는 분자. 실수도 했다. 복사 오류. 하지만 그것이 다양성을 만들었다. 환경에 맞는 것이 살아남았다. 맞지 않는 것은 분해되었다. 선택. 진화.


RNA에서 DNA로. DNA에서 단백질로. 단백질이 막을 만들었다. 세포가 탄생했다. 최초의 생명. 하지만 이것은 갑작스러운 창조가 아니었다. 오랜 진화의 결과였다. 우주가 시작된 순간부터 계속되어온 진화의 연장이었다.




나는 커피를 마신다. 뜨겁다. 혀끝이 데인다. 잔을 내려놓는다. 김이 올라온다. 열이 이동한다.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자연스럽다. 저항하지 않는다.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열역학 제2법칙.


하지만 생명은 다르다. 생명은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질서를 만든다. 무질서에 저항한다. 어떻게?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외부에서 에너지를 가져와 내부 질서를 유지한다. 밥을 먹는다. 숨을 쉰다. 에너지를 얻는다. 그 에너지로 몸을 유지한다. 성장한다. 번식한다.


이것도 진화의 연장이다. 우주가 별을 만들 듯이 생명은 세포를 만든다. 별이 무거운 원소를 만들 듯이 생명은 복잡한 구조를 만든다. 같은 원리다. 존재하려는 의지. 계속되려는 힘. 진화.


창밖을 다시 본다. 하늘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동쪽이 붉다. 해가 뜨려 한다. 매일 같은 일이다. 하지만 매번 새롭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다르다. 태양도 변한다. 수소를 태운다. 헬륨이 쌓인다. 50억 년 후에는 적색거성이 될 것이다. 결국 폭발할 것이다. 태양도 진화한다.




오행을 생각한다. 물, 불, 나무, 흙, 금속. 동양 철학의 다섯 원소. 서양의 사원소(흙, 물, 불, 공기)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오행은 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동적인 과정이다. 상생과 상극. 서로 낳고 서로 억제한다.


물은 나무를 키운다. 나무는 불을 만든다. 불은 흙을 만든다(재). 흙은 금속을 품는다. 금속은 물을 만든다(응축). 순환. 하지만 동시에 물은 불을 끈다. 불은 금속을 녹인다. 금속은 나무를 자른다. 나무는 흙을 뚫는다(뿌리). 흙은 물을 막는다. 균형.


이것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자연의 작동 원리다. 자연은 이 다섯 가지 과정을 통해 진화한다. 물은 흐르며 지형을 바꾼다. 불은 태우며 숲을 갱신한다. 나무는 자라며 산소를 만든다. 흙은 쌓이며 지층을 만든다. 금속은 굳으며 구조를 만든다.


모두 진화의 형태다. 자연의 진화. 생명 이전의 진화. 생명과 함께하는 진화. 생명 이후에도 계속될 진화.




양자를 다시 생각한다. 불확정성. 입자인 동시에 파동. 관찰되기 전에는 확률로만 존재한다. 관찰하는 순간 하나로 결정된다. 파동함수의 붕괴.


이것은 의식의 문제처럼 보인다. 관찰자가 있어야 존재가 확정된다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 관찰은 상호작용이다. 의식 있는 존재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서로 관찰한다. 상호작용한다.


양자가 다른 양자와 만난다. 상호작용한다. 그 순간 둘 다 확정된다. 파동에서 입자로. 확률에서 실재로. 이것이 공감이다. 서로 반응하며 서로를 존재하게 만든다.


의지가 있다. 반응이 일어난다. 공감이 형성된다. 존재가 확정된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누적된다. 패턴이 생긴다. 구조가 만들어진다. 물질이 탄생한다. 이것이 진화다. 양자 수준의 진화.


물질이 모인다. 원자가 된다. 원자가 모인다. 분자가 된다. 분자가 모인다. 결정이 된다. 다이아몬드를 생각한다. 탄소 원자들이 엄청난 압력 속에서 배열된 것. 가장 안정된 구조. 가장 단단한 물질. 진화의 결과다. 탄소의 진화.


모든 광물이 그렇다. 석영, 장석, 운모. 각자의 구조. 각자의 안정성. 환경의 압력에 반응한 결과. 진화.




은하를 생각한다. 수천억 개의 별이 모여 있다. 회전한다. 나선 팔을 만든다.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도 우연이 아니다. 진화의 결과다.


처음에는 불규칙했다. 가스 구름이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중력이 작용했다. 밀도가 높은 곳으로 물질이 모였다. 회전하기 시작했다. 각운동량 보존. 평평해졌다. 원반 구조. 별들이 생겨났다. 궤도를 돌기 시작했다. 패턴이 생겼다. 나선 팔.


은하도 진화한다. 충돌한다. 합쳐진다. 새로운 형태가 된다. 타원 은하, 불규칙 은하. 모두 진화의 단계다. 정체되지 않는다. 계속 변한다.


우리 은하도 진화하고 있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충돌할 것이다. 40억 년 후. 두 은하가 하나가 될 것이다. 새로운 은하. 새로운 구조. 새로운 존재. 진화.




다시 지구로 온다. 대기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산화탄소와 질소뿐이었다. 산소가 없었다. 하지만 남세균(cyanobacteria)이 나타났다. 광합성을 시작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했다. 25억 년 전. 대산화 사건(Great Oxidation Event).


대기가 바뀌었다. 산소가 증가했다. 많은 생물이 멸종했다. 산소는 독이었으니까. 하지만 일부는 적응했다. 산소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호기성 호흡. 훨씬 효율적이었다.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복잡한 생명이 가능해졌다.


대기의 진화가 생명의 진화를 만들었다. 생명의 진화가 대기의 진화를 만들었다. 순환. 공감. 서로가 서로를 진화시켰다.


토양도 진화한다. 처음에는 암석의 부스러기였다. 하지만 생명이 들어왔다. 균류, 박테리아, 지렁이. 유기물이 섞였다. 부식토가 만들어졌다. 토양이 풍부해졌다. 식물이 자랐다. 식물이 더 많은 유기물을 만들었다. 토양이 더 깊어졌다. 진화.


물의 순환도 진화다. 증발, 응축, 강수. 반복. 하지만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지형을 바꾼다. 계곡을 만든다. 강을 만든다. 호수를 만든다. 삼각주를 만든다. 변화. 진화.


자연 전체가 진화한다. 생명만이 아니다.




공감이론으로 보면 명확하다. 진화는 공감의 결과다.


의지(W)가 있다. 존재하려는. 반응(R)이 일어난다. 환경과. 공감(E)이 형성된다. 반복되는 상호작용. 이것이 누적된다. 패턴이 생긴다. 구조가 만들어진다. 임계점을 넘는다. 창발한다. 새로운 존재가 된다.


이 과정은 보편적이다. 양자에도 적용된다. 원자에도. 분자에도. 광물에도. 행성에도. 별에도. 은하에도. 그리고 생명에도.


생명은 특별하지 않다. 더 빠를 뿐이다. 더 복잡할 뿐이다. 하지만 원리는 같다. 진화. 공감의 누적. 존재의 최적화.


모든 존재는 진화의 산물이다. 우주가 태어난 순간부터. 빅뱅 이후 최초의 입자부터. 진화는 멈춘 적이 없다.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아침 해가 떠올랐다. 빛이 창문으로 들어온다. 따뜻하다. 손등에 닿는다. 빛은 태양에서 왔다. 8분 전에 출발했다. 핵융합의 에너지. 수소가 헬륨이 되며 방출한. 태양의 진화가 만든 빛.


이 빛이 내 피부에 닿는다. 비타민D가 합성된다.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기분이 좋아진다. 빛과 내 몸이 상호작용한다. 공감한다. 나도 진화한다. 매 순간.


진화는 과거가 아니다. 지금이다. 당신이다. 나다. 이 순간 숨 쉬는 것도 진화다. 심장이 뛰는 것도 진화다. 생각하는 것도 진화다.


우주 전체가 진화한다. 별도, 행성도, 바람도, 물도, 돌도, 나무도, 그리고 당신도.


존재한다는 것은 진화한다는 것이다. 진화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계속 존재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생명만의 것이 아니라 존재 전체의 것.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될. 진화.


당신은 무엇과 공감하고 있는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137억 년의 진화가 당신 안에 담겨 있다. 별의 폭발이, 원소의 탄생이, 지구의 형성이, 생명의 출현이. 모두 당신 안에. 계속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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