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OS vs. 이성OS
사람들은 말한다. 나를 알아야 한다고.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
그래서 노력한다. 생각한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무엇을 좋아하는가. 무엇을 싫어하는가.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느 정도는 안다. 내 생각의 패턴. 내 사고의 방식. 내 논리의 구조.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내향적이다.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다.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논리적이다. 나는 계획을 세우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것들.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들. 훈련하면 더 잘 보인다. 메타인지처럼. 나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을 이성OS라고 부르자. 운영체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스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뭔가 더 있다. 나를 움직이는 다른 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본능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무의식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냥 느낌. 기운. 흐름.
어떤 날은 기분이 좋다. 이유 없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좋다. 몸이 가볍다. 마음이 편하다.
어떤 날은 기분이 안 좋다. 이유 없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냥 안 좋다. 몸이 무겁다. 마음이 답답하다.
이성OS로는 설명이 안 된다. 왜 오늘은 좋고 어제는 안 좋았는지. 논리적으로 파악이 안 된다.
하지만 분명히 있다. 작동하고 있다. 나를 움직인다.
이것을 공감OS라고 부르자. 또 다른 운영체제. 느끼고 공명하고 반응하는 시스템.
공감OS는 보이지 않는다. 이성OS는 그래도 보인다. 생각을 추적할 수 있으니까.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설명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감OS는 설명이 안 된다. 왜 이 사람이 좋은지. 왜 이 장소가 편한지. 왜 이 음악이 마음에 드는지.
그냥 좋다. 그냥 편하다. 그냥 마음에 든다.
이유를 모른다. 알 수 없다. 심연이다. 무의식이다. 기운이다.
자연에 가깝다. 진리에 가깝다. 근본에 가깝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산에 간다. 나무가 있다. 바위가 있다. 계곡이 있다. 바람이 분다. 새가 운다.
자연이다.
자연은 이유를 묻지 않는다. 왜 나무는 자라는가. 왜 바위는 그 자리에 있는가. 왜 물은 흐르는가.
그냥 그렇다. 스스로 그러하다. 자연自然.
나무는 자라고 싶어서 자라지 않는다. 바위는 서 있고 싶어서 서 있지 않는다. 물은 흐르고 싶어서 흐르지 않는다.
그냥 그렇다. 본성이다. 자연이다.
공감OS도 그렇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작동한다. 나를 움직인다. 자연처럼.
바다를 본다. 넓다. 깊다. 파랗다. 파도가 친다.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반복된다.
바다는 바다다. 산은 산이 아니다. 들판은 들판이다. 사막은 사막이다.
각자 다르다. 특색이 있다. 개성이 있다.
바다에는 물고기가 산다. 산에는 나무가 자란다. 들판에는 풀이 자란다. 사막에는 선인장이 자란다.
각자 맞는 것이 있다. 어울리는 것이 있다.
사람도 그렇다. 각자 자연을 닮았다. 공감OS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바다를 닮았다. 어떤 사람은 산을 닮았다. 어떤 사람은 들판을 닮았다. 어떤 사람은 사막을 닮았다. 인간이 자연에서 나듯 인간도 자연인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 자기가 어떤 자연인지. 안 보이니까. 공감OS는 인지하기 어려우니까.
나는 어떤 자연일까. 생각해본다.
어렸을 때를 떠올린다. 놀이터에서 놀았다.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시끄러웠다. 즐거웠다.
하지만 금방 피곤해졌다. 집에 가고 싶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집에 가면 멍 때리면 사색했다. 조용했다. 편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대학 때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다.
사람들과 있으면 즐겁다. 하지만 오래는 못 견딘다. 혼자 있어야 회복된다.
나는 어떤 자연일까. 바다는 아닌 것 같다. 바다는 넓고 열려 있으니까. 나는 넓지 않다. 열려 있지 않다.
산일 수도 있다. 조용하고 깊은. 혼자 서 있는.
확신할 수 없다. 알기 어렵다. 공감OS는 보이지 않으니까.
사주팔자를 보면 자신의 공감OS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내 안의 자연을
자신의 일간을 중심으로 오행의 형국을 그려보면 자연이 나온다.
좁은 땅에 험준한 바위산을 솟아 있다. 바위 사이로 나무들이 빼곡하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큰 독채를 짓고 산다. 햇볕이 뜨는 포근하지만 외롭다.
온종일 화려한 조명아래 사람들이 춤추며 파티를 한다. 끊이지 않는 물과 음식,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한 여름과도 같다.
넓은 들판에 선을 긋고 나열된 논과도 같다. 항상 물이 고여있다. 흐르는 물이 필요하다.
이처럼 사람들을 하나의 형국으로 표현이 가능한다.
어떤 사람과는 안 맞는다. 만나면 피곤하다. 대화가 안 통한다. 같이 있으면 불편하다.
그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고 내가 나쁜 것도 아니다. 그냥 안 맞는 것이다.
어쩌면 자연이 다른 것이다. 공감OS가 다른 것이다.
뜨거운 사막과 차가운 빙하는 함께할 수 없다.
억지로 맞추려고 하면 힘들다. 상처받는다. 깨진다.
자연은 자연대로 있어야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하지만 자연은 존재하려는 의지는 인간에게 이성을 주었다. 인간은 완전히 자연에 맡기지 않는다. 개입한다. 변화시킨다. 진화시킨다.
이성OS를 가졌다.
인간은 적극적으로 공감하려는 의지를 가졌다. 그래서 진화했다. 도구를 만들었다. 기술을 개발했다. 문명을 건설했다.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개조했다. 활용했다. 발전시켰다.
험준한 돌산에 등산로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찾아왔다. 관광지가 되었다. 가치가 생겼다.
넘치는 강물에 댐을 세웠다. 그랬더니 전기가 생산되었다. 에너지가 되었다. 쓸모가 생겼다.
황무지에 씨를 뿌렸다. 그랬더니 곡식이 자랐다. 수확이 되었다. 풍요가 생겼다.
자연을 진화시킨 것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더 쓸모 있는 모습으로.
공감OS도 그렇다. 타고난 대로만 살 필요는 없다. 이성OS로 개입할 수 있다. 변화시킬 수 있다. 진화시킬 수 있다.
돌산을 닮았다. 무겁고 답답하고 막혀 있다. 타고난 성질이다.
하지만 그대로 둘 필요는 없다. 바꿀 수 있다. 발전시킬 수 있다.
무거운 흙에 씨를 뿌릴 수 있다. 그러면 무언가 자란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다.
막힌 땅에 길을 낼 수 있다. 그러면 사람이 다닌다. 연결된다. 소통된다.
답답한 땅을 파낼 수 있다. 그러면 우물이 생긴다. 물이 솟는다. 생명이 생긴다.
타고난 자연을 그대로 두지 않는 것이다. 나만의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쉽지 않다. 자연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 시간이 걸린다. 노력이 필요하다.
산을 깎는 것은 쉽지 않다. 강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 땅을 일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인간은 해왔다. 수천 년 동안. 계속.
자연을 개조하고 활용하고 발전시켜왔다. 그래서 지금의 문명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있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타고난 공감OS를 그대로 두지 않을 수 있다. 이성OS로 개입할 수 있다. 진화시킨 수 있다.
어떻게 할까. 방법을 생각한다.
첫째, 나의 자연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공감OS가 어떤 모습인지 파악해야 한다.
어렵다. 보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관찰하면 된다. 느낌을 추적하면 된다.
어떤 상황에서 편한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좋은가. 어떤 장소가 마음에 드는가. 어떤 활동이 즐거운가.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가.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힘든가. 어떤 장소가 싫은가. 어떤 활동이 피곤한가.
패턴을 찾는다. 반복되는 것을 본다. 그러면 윤곽이 드러난다. 나의 자연이 보인다.
둘째, 나의 자연에 맞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어떻게 진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험준한 돌산이라면 등산로를 만들 수도 있고 절벽을 활용해 암벽등반장을 만들 수도 있다. 돌을 캐서 건축 자재로 쓸 수도 있다.
넓은 평야라면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목장을 만들 수도 있다. 도시를 건설할 수도 있다.
깊은 바다라면 양식장을 만들 수도 있고 해저 터널을 뚫을 수도 있다. 해양 에너지를 개발할 수도 있다.
각자의 자연에 맞는 방향이 있다. 억지로 맞추면 안 된다. 돌산을 논으로 만들 수는 없다. 바다를 산으로 만들 수는 없다.
타고난 특성을 살려야 한다. 강점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진화다.
셋째, 실천해야 한다. 행동해야 한다. 변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흙을 닮았다. 무겁고 답답하다. 하지만 씨를 뿌리기로 했다. 무언가를 키우기로 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각을 기록했다. 말로 안 되는 것을 글로 표현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어색했다.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했다. 반복했다.
시간이 지나며 변했다. 글이 나아졌다. 생각이 정리됐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무거운 흙에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작은 변화였지만 분명한 변화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랬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 많은 곳이 불편하다.
하지만 완전히 혼자 살 수는 없다. 사람은 관계 속에 있으니까.
그래서 방법을 찾았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대신 적은 사람을 깊게 만나기로 했다. 넓게 퍼지는 대신 깊이 파기로 했다.
모임을 줄였다. 만남을 선택했다. 정말 필요한 사람만 만났다. 그렇게 하니 편했다. 덜 피곤했다. 관계가 나아졌다.
막힌 땅에 우물을 판 것이다. 넓은 호수는 아니지만 깊은 우물이 생긴 것이다.
사계절을 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은 변한다. 계속. 반복적으로.
봄에는 새싹이 돋는다. 여름에는 무성해진다.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다. 겨울에는 잠든다.
각 계절마다 다르다. 하지만 모두 필요하다. 봄만 있으면 안 된다. 여름만 있어도 안 된다. 가을과 겨울도 있어야 한다.
순환한다. 균형을 이룬다. 조화롭다.
공감OS와 이성OS도 그렇다. 서로 유기적으로 작동한다. 혼자만으로는 안 된다. 함께 작동해야 한다.
공감OS만 있으면 통제가 안 된다. 감정에 휩쓸린다. 흔들린다. 무너진다.
이성OS만 있으면 차갑다. 메마르다. 기계적이다. 살아있는 느낌이 없다.
둘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호흡이 맞아야 한다. 리듬이 맞아야 한다. 에너지가 잘 흘러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다. 그래야 균형 잡힌다. 그래야 제대로 된 자아가 생긴다.
겨울이다. 나무가 보인다. 잎이 다 떨어졌다. 가지만 남았다. 앙상하다.
하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잠든 것이다. 봄이 오면 다시 깨어날 것이다. 새싹이 돋을 것이다. 꽃이 필 것이다.
자연은 안다. 언제 자고 언제 깨어날지. 언제 피고 언제 질지. 스스로 조절한다. 자연自然스럽게.
나도 그래야 한다. 나의 자연을 알아야 한다. 언제 쉬어야 하고 언제 움직여야 하는지. 언제 열어야 하고 언제 닫아야 하는지.
타고난 리듬을 존중해야 한다.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면 안 된다.
하지만 동시에 개입할 수도 있다. 나무에 물을 줄 수 있다. 영양분을 줄 수 있다. 가지를 쳐줄 수 있다.
그러면 더 잘 자란다. 더 건강해진다. 더 아름다워진다.
타고난 자연을 존중하면서도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나만의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사막을 생각한다. 황량하다. 건조하다. 생명이 적다. 척박하다.
하지만 사막도 자연이다.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름의 가치가 있다.
모래 언덕의 곡선. 석양에 비치는 황금빛. 밤하늘의 별. 선인장의 꽃.
사막은 사막대로 존재한다. 억지로 숲을 만들 필요 없다. 억지로 호수를 만들 필요 없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만들 수 있다. 작은 샘을 찾아 키울 수 있다. 그늘을 만들 수 있다. 적응할 수 있는 식물을 심을 수 있다.
사막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사막 속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도 그렇다. 나의 자연을 없앨 필요 없다. 나의 특성을 지울 필요 없다.
다만 그 안에서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나만의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이다.
친구가 말했다. '너는 일방적이기도 하고 또 그것이 확고해서 변하지가 않는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더욱 객관적인 평가다.
그는 불편함을 호소하기 보다는 곁을 내어주길 바랬다.
이것도 대답하지 못했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돌아와 생각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타고난 것과 만들어가는 것. 주어진 것과 선택하는 것. 자연과 진화.
둘 다 중요하다. 둘 다 필요하다.
타고난 자연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어디로 갈지 알 수 있다.
동시에 진화시켜야 한다. 발전시켜야 한다.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나는 나를 잘 모르고 있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난다.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이 인간이고 인간이 자연이다.
하지만 인간은 특별하다. 자연을 넘어선다. 자연을 변화시킨다. 진화시킨다.
공감OS는 자연이다. 타고난 것이다. 심연이다. 무의식이다.
이성OS는 도구다. 만든 것이다. 의식이다. 의지다.
둘이 함께 작동할 때 인간이 된다. 제대로 된 인간이.
나는 나의 자연을 알고 싶다. 공감OS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만의 자연을 만들고 싶다. 타고난 것을 존중하면서도 발전시키고 싶다.
별을 본다. 수없이 많다. 각자 빛난다. 같은 별은 하나도 없다.
사람도 그렇다. 각자 다르다.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각자의 자연이 있다. 각자의 공감OS가 있다.
어떤 사람은 바다고 어떤 사람은 산이다. 어떤 사람은 들판이고 어떤 사람은 사막이다.
모두 다르지만 모두 아름답다. 모두 가치 있다. 모두 필요하다.
나만의 자연을 만들자. 타고난 것을 알고 발전시키자. 공감OS를 인지하고 이성OS로 진화시키자.
그것이 인간으로 사는 것이다. 제대로 존재하는 것이다.
내일은 어떤 날일까. 나의 자연은 어떻게 변해갈까.
기대된다.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나의 자연을 만들어갈 것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하지만 분명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