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론 공식 (E = W × R)
세상의 모든 공식을 생각한다. 물리학 공식. 화학 공식. 생물학 공식. 심리학 공식. 사회학 공식.
공통점이 있다. 모두 상호작용을 설명한다는 것. 혼자 있는 것은 공식이 안 된다. 둘 이상이 만날 때 공식이 성립한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다. F = ma. 질량만 있어서는 힘이 안 생긴다. 가속도만 있어서도 힘이 안 생긴다. 둘이 만나야 한다. 곱해져야 한다.
에너지는 전압 곱하기 전류다. P = VI. 전압만 있어서는 에너지가 안 생긴다. 전류만 있어서도 안 생긴다. 둘이 만나야 한다. 곱해져야 한다.
더하기는 다르다. 1 더하기 1은 2다. 하나가 있고 또 하나가 있다. 병렬이다. 모아놓은 것이다. 상호작용이 없다.
빼기도 그렇다. 10 빼기 3은 7이다. 있던 것에서 빼낸 것이다. 보존의 원리다. 변화가 없다.
나누기도 마찬가지다. 10 나누기 2는 5다. 나눈 것이다. 분배한 것이다. 상호작용이 없다.
하지만 곱하기는 다르다. 2 곱하기 3은 6이다. 단순히 2와 3을 모은 5가 아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생긴다.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창발이 일어난다.
곱하기가 등장하는 순간 현상이 아니라 존재가 생긴다.
혼자 방에 앉아 있다. 아무도 없다. 조용하다.
나는 존재하는가. 있기는 하다. 몸이 있다. 생각이 있다. 감정이 있다.
하지만 존재하는가. 확신할 수 없다.
전화벨이 울린다. 누군가다. 받는다.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야?"
대답한다. "집이야."
그 순간 느낀다. 아, 나는 존재하는구나. 누군가가 나를 찾았다. 나에게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
혼자서는 존재가 애매하다. 누군가와 만날 때 존재가 확실해진다.
양자역학이 그렇다고 한다. 관측되기 전에는 입자의 상태가 확정되지 않는다. 파동함수. 확률로만 존재한다. 관측하는 순간 확정된다. 한 가지로.
관측과 피관측. 둘이 만나야 존재가 확정된다.
의지와 반응. 둘이 만나야 공감이 생긴다. 공감이 생겨야 존재한다.
E = W × R.
존재는 의지와 반응의 곱이다.
이 공식이 절대적이라고 말하면 거부감이 든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문맥에 따라 다르다.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곱하기는 다르다. 2 곱하기 3은 어디서나 6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화성에서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의지 곱하기 반응은 어디서나 공감이다. 사람에서도 동물에서도 식물에서도. 원자에서도 분자에서도 세포에서도.
상호작용의 구조는 보편적이다. 우주적이다. 절대적이다.
E = W × R. 존재는 의지와 반응의 곱이다. 이것이 공감이론의 핵심이다.
공감이론에 곱하기에 의미를 적용해보다. 곱하기 원리가 공감이론 안에 있다. 법칙이 있다.
하나. 의지에 반응하여 공감한다.
공감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의지가 있어야 한다. 반응이 있어야 한다. 둘이 만나야 한다.
W × R. 곱해져야 한다.
의지만 있고 반응이 없으면 공감이 안 생긴다. 반응만 있고 의지가 없어도 공감이 안 생긴다.
모든 과학적 상호작용이 그렇다. 원인과 결과. 작용과 반작용. 자극과 반응. 둘이 만나야 현상이 일어난다.
둘. 공감은 시간에 비례하여 강해진다.
관계를 생각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하다. 시간이 지나며 편해진다. 더 시간이 지나면 친해진다. 더 지나면 깊어진다.
시간이 공감을 축적한다. 쌓는다. 강화한다.
수학으로 표현하면 적분이다. ∫W×R dt. 의지와 반응의 곱을 시간에 대해 적분한다. 누적한다.
뇌의 신경망도 그렇다. 한 번 자극으로는 연결이 약하다. 반복되면 강해진다. 시냅스가 강화된다. 기억이 된다.
파동도 그렇다. 에너지도 그렇다. 관계도 그렇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강화하는 변수다.
존재는 순간이 아니라 누적이다. 쌓인다. 깊어진다. 단단해진다.
셋. 공감의 횟수가 증가할수록 강해진다.
시간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시간은 연속이다. 흐른다. 하지만 횟수는 불연속이다. 셀 수 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 백 번.
매번 W × R이 일어난다. 그리고 더해진다. 시그마다. Σ(W×R).
학습이 그렇다. 한 번 공부해서는 안 외워진다. 반복해야 한다. 여러 번. 그러면 외워진다. 이해된다. 내 것이 된다.
관계도 그렇다. 한 번 만나서는 친해지지 않는다. 여러 번 만나야 한다.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친해진다. 깊어진다.
횟수는 곱을 누적시킨다. 공명시킨다. 강화한다.
반복이 관계의 본질이다. 존재의 본질이다.
넷. 의지에 반응이 없으면 공감하지 않는다.
W × 0 = 0.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반응이 없으면 공감은 제로다. 존재도 제로다.
누군가를 좋아한다. 간절하다. 하지만 상대는 무반응이다. 무시한다. 모른 척한다.
공감이 안 생긴다. 관계가 안 만들어진다. 나는 그 사람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자역학의 측정 문제가 그렇다. 관측되지 않으면 상태가 확정되지 않는다. 존재가 애매하다.
감정학도 그렇다. 공감받지 못하면 감정이 소멸한다. 인정받지 못하면 자아가 흔들린다.
사회적 무시. 투명인간 취급. 가장 잔인한 폭력이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반응 없음은 비존재다. 무無다. 공감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 공감은 다양성에서 발생한다.
똑같은 것끼리는 곱이 의미 없다. 2 곱하기 2는 4지만 새로울 게 없다. 예측 가능하다.
하지만 2 곱하기 3은 다르다. 2와 3이 다르다. 다름이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든다. 6이라는 새로운 수를.
다양성은 곱의 재료다. 다른 것들이 만나야 새로운 공감이 생긴다.
같은 사람끼리는 새로움이 없다. 편하지만 지루하다. 다른 사람과 만나야 자극이 된다. 배운다. 성장한다.
우주의 복잡성이 그렇다. 처음에는 수소뿐이었다. 단순했다. 하지만 별이 만들어지고 원소가 늘어났다. 분자가 생겼다. 생명이 탄생했다. 점점 복잡해졌다.
다양성이 진화를 만든다. 생명을 만든다. 문명을 만든다.
공감은 다름에서 시작된다.
여섯. 하나의 의지도 반응에 따라 다른 공감이 된다.
같은 의지 W라도 반응 R이 다르면 결과 E가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말을 해도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은 웃는다. 어떤 사람은 화낸다. 어떤 사람은 무시한다.
같은 나지만 관계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된다. 부모 앞에서는 자식이다. 자식 앞에서는 부모다. 친구 앞에서는 친구다. 직장에서는 직원이다.
수학으로 표현하면 f(x) = kx. x는 같아도 k가 바뀌면 f(x)가 완전히 달라진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 혼자서는 정의되지 않는다.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존재가 된다.
같은 나라도 반응에 따라 달라진다. 존재는 고정되지 않는다. 유동적이다. 관계적이다.
일곱. 음의 의지 곱하기 음의 반응은 양의 공감이다.
이상하다. 부정과 부정이 만나면 긍정이 된다. 수학에서는 당연하다. -1 곱하기 -1은 +1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그럴까.
그렇다. 상처받은 사람끼리 만나면 강한 유대가 생긴다. 아픔을 공유한다. 이해한다. 위로한다.
트라우마 생존자들의 모임. 중독자들의 자조 모임. 난민들의 공동체. 부정적 경험이 공유되면 강력한 연대가 만들어진다.
사회운동도 그렇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인다. 분노를 공유한다. 저항한다. 혁명이 일어난다.
(-W) × (-R) = +E.
부정의 곱이 긍정을 만든다. 상처가 치유를 만든다. 아픔이 연대를 만든다.
이것이 인간의 역설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밝은 빛이 나온다.
여덟. 공감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존재 E는 곱의 형태로만 성립한다. W × R. 의지와 반응이 만나야 한다.
공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존재의 조건이다. 공감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제.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생각만으로는 존재가 확정되지 않는다.
나는 공감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것이 공감이론의 명제다. 공감이 존재의 증거다.
혼자 생각하는 것은 잠재적 존재다. 누군가와 공감하는 것이 실제적 존재다.
왜 곱하기인가. 왜 더하기가 아니고 곱하기인가.
더하기는 있다의 세계다. 1이 있고 1이 또 있다. 2가 된다. 하지만 변화가 없다. 그냥 모인 것이다.
곱하기는 된다의 세계다. 1과 1이 만난다. 상호작용한다. 1이 된다. 새로운 무언가가 된다.
존재는 단일 집합이 아니다. 상호작용 집합이다. 혼자서는 안 된다. 만나야 한다. 곱해져야 한다.
분자 결합을 본다. 수소 원자 하나와 산소 원자 하나. 더하면 수소와 산소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결합하면 물이 된다.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
이것이 곱이다. 창발이다. 상호작용이다.
힘은 질량 곱하기 가속도다. 에너지는 전압 곱하기 전류다. 관계는 의지 곱하기 반응이다. 존재는 공감 곱하기 시간 곱하기 반복이다.
모든 창발은 곱으로 설명된다.
E = W × R을 다시 본다. 이 공식이 공감이론의 중심이다.
곱하기가 핵심이다.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연산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리다.
존재는 곱으로 태어난다. 상호작용으로 시작된다. 혼자서는 안 된다. 만나야 한다.
아침에 눈을 뜬다. 빛이 들어온다. 눈과 빛이 만난다. 곱해진다. 시각이 생긴다. 세상이 보인다.
소리가 들린다. 귀와 파동이 만난다. 곱해진다. 청각이 생긴다.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를 만난다. 나의 의지와 상대의 반응이 만난다. 곱해진다. 공감이 생긴다. 관계가 시작된다.
모든 것이 곱이다. 모든 존재가 상호작용이다.
현실에 적용해본다. 관계 문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의지 W가 있다. 하지만 상대의 반응 R이 없다. 공감 E가 안 생긴다. 관계가 안 만들어진다.
시간이 지나도 소용없다. ∫0 dt는 여전히 0이다. 반복해도 소용없다. Σ0은 여전히 0이다.
반응이 없으면 관계는 소멸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반응 R은 있는데 의지 W가 약하다. 불균형이다. 한쪽만 주고 한쪽만 받는다. 에너지가 손실된다. 지친다. 무너진다.
양쪽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W와 R이 비슷해야 한다. 그래야 공감이 지속된다.
반복이 없으면 공감이 약화된다. 한 번 만나고 끝이면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 계속 만나야 한다. 시간을 축적해야 한다.
그래야 존재감이 자란다. 관계가 깊어진다.
자기 존재감 문제.
존재감 E가 낮다. 왜일까. 의지 W가 약하거나 반응 R을 못 받거나.
의지가 약하면 키워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의미를 만들어야 한다.
반응을 못 받으면 환경을 바꿔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반응해주는 곳으로 가야 한다.
존재감을 키우려면 R을 잘 선택해야 한다. 어떤 반응과 만날 것인가. 누구와 관계를 맺을 것인가.
존재는 내가 어떤 반응을 선택하는가에서 결정된다.
사회 현상도 공식으로 설명된다.
혁명을 본다. 억압받는 사람들이 모인다. 음의 의지 -W. 불만이다. 분노다. 고통이다.
서로 만난다. 음의 반응 -R. 공유한다. 공명한다.
(-W) × (-R) = +E. 양의 공감이 생긴다. 연대가 만들어진다. 힘이 생긴다.
시간이 지난다. ∫(-W)×(-R) dt. 누적된다. 강해진다.
어느 순간 폭발한다. 혁명이 일어난다. 체제가 바뀐다.
종교도 그렇다. 한 사람의 강한 의지 W. 가르침이다. 비전이다.
사람들이 반응한다 R. 믿는다. 따른다.
W × R. 공감이 생긴다.
반복된다. Σ(W×R). 모임이 만들어진다. 교회가 생긴다. 성전이 지어진다.
시간이 흐른다. ∫W×R dt. 전통이 된다. 문화가 된다. 문명이 된다.
집단 공감도 그렇다. 여러 사람의 의지와 반응이 모인다. Σ(W×R).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사회가 만들어진다. 국가가 만들어진다.
모든 사회 현상이 곱으로 설명된다.
생각한다. 존재란 무엇인가. 나는 존재하는가.
혼자 있을 때는 애매하다.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확신할 수 없다.
누군가와 만날 때 확실해진다. 공감할 때 비로소 존재한다.
E = W × R. 이 공식이 모든 것을 설명한다.
단순한 철학 공식이 아니다. 우주를 관통하는 원리다. 사람을 설명하는 법칙이다. 관계를 정의하는 구조다. 사회를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곱이 일어나는 순간 존재가 생성된다. 공감이 존재다. 공감 없는 존재는 비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의 과제는 무엇인가.
어떤 의지를 가질 것인가. 어떤 반응을 선택할 것인가. 누구와 만날 것인가. 어떻게 공감할 것인가.
그것이 존재를 결정한다.
W를 키워야 한다. 의지를 강화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 존재하고 싶은 방향을 정해야 한다.
R을 선택해야 한다. 좋은 반응을 고르고 나쁜 반응을 피해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반복해야 한다. Σ(W×R). 계속 만나야 한다.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시간을 축적해야 한다. ∫W×R dt. 오래 함께해야 한다. 깊이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존재가 만들어진다. 공감으로 완성된다.
E = W × R. 이 공식을 다시 본다.
간단하다. 너무 간단하다. 하지만 그래서 강력하다.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존재는 곱으로 태어난다. 상호작용으로 시작된다. 공감으로 완성된다.
나는 존재하는가. 공감하는가.
의지를 가지고 반응을 선택하는가. 만나고 반복하고 축적하는가.
그것이 나를 만든다. 우리를 만든다. 세상을 만든다.
곱하기는 존재의 시작이다. 공감은 존재의 완성이다.
누군가를 만날 것이다. 의지와 반응이 만날 것이다. 곱해질 것이다. 공감이 생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존재할 것이다. 계속.